[부활절 기획] 고진하 목사 "잡초비빔밥에 광야와 십자가, 부활 있다"

[컬처]by 중앙일보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명봉산 기슭의 마을에는 오래된 한옥이 한 채 있다. 이름이 ‘불편당(不便堂)’이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야 삶이 건강해진다”는 철학으로 붙인 당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당에 잡초가 가득했다. 토끼풀과 민들레, 그밖에 이름 모를 풀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10일 이곳에서 고진하(66) 목사와 권포근(60) 여사 부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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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마당 가득한 잡초는 잡초가 아니었다. 귀하디 귀한 요리의 재료였다. 농약도 치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고, 김도 매지 않고서, 야생의 숨결대로 날아와 자라는 ‘100% 자연산’ 나물이었다. 마침 부활절이 코앞이었다. 고 목사 부부는 잡초를 통해서 깨우친 그리스도교 영성을 하나씩 풀어 놓았다.




Q : 처음에 어떻게 잡초를 먹게 됐나.



A :

권포근 여사는 “마당에 있는 잡초를 뜯어서 살짝 데쳤다. 고추장에 묻혀서 남편에게 줬다. 먹었는데 멀쩡하더라. (웃으며) 그래서 나도 먹기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경계를 하면서 먹었다. 한두 번 먹어보니까 배도 안 아프고, 죽지도 않더라. 오히려 속이 참 편하더라”고 ‘잡초 첫경험’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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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잡초에 독성은 없나. 독초도 있지 않나.



A :


Q : 잡초를 먹었더니 어땠나. 어떤 변화가 생겼나.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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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은 체했을 때도 딱이라고 했다. “딸 아이가 체증이 있었다. 토끼풀로 샐러드를 해줬다. 먹더니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잡초 요리를 안 먹더니, 그 다음부터 딸도 풀을 먹기 시작했다. 남편은 잡초 요리를 보름 정도 먹으니까 얼굴이 맑아지더라. 귀 아래 부분에 주름이 잡혀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까 주름이 펴져 있었다.” 이밖에도 잡초의 효능은 풀마다 다양하다.


그래도 날 것(샐러드)으로 먹을 수 있는 잡초는 몇 안 된다. 가령 민들레가 몸에 좋다는 건 알지만 특유의 ‘쓴 맛’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권 여사는 숱하게 시험한 끝에 ‘민들레 쓴 맛’을 완전히 잡아내는 토종 양념을 찾아냈다. 다름 아닌 들깨 가루다. 이런 식으로 잡초마다 어울리는 요리법을 하나씩 개발해냈다. 그걸 모아서 『잡초 치유 밥상』(마음의 숲)이란 책도 냈다. 요즘은 ‘권포근의 건강요리’라는 유투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촬영은 딸이, 편집은 아들이 한다. 동영상으로 잡초마다 다양한 요리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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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목사는 ‘잡초의 영성’을 풀었다. 그는 오전에 주로 집안일을 하거나 밭일을 한다. 들판에 나가서 말 없는 식물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다. “말 없는 식물이 시(詩)의 어머니다. 말씀이 어디에서 나오겠나. 침묵에서 나온다. 그러니 침묵이 말씀의 어머니다. 예수님이 광야에 가서 40일간 단식하며 무슨 말을 들었겠나. ‘침묵’을 들은 거다. 아버지, 그건 예수가 만난 침묵의 다른 이름이다.”




Q : 예수는 광야에서 만난 침묵을 향해 왜 ‘아버지!’라고 불렀나.



A :

그런 침묵을 향해 나아가는 삶, 고 목사는 그걸 ‘순례’라고 불렀다. “나는 잡초를 볼 때마다 ‘식물성의 순례’를 배운다. 순례가 뭔가. 자신의 근원과 접촉하면서,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사람은 어떤 말을 통해서 깨우치게 해줘야 자기 존재의 근원을 희미하게 알아차린다. 식물은 다르다. 말을 통해서가 아니고, 누가 뭘 전해줘서가 아니라 그냥 안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자기 존재의 근원과 본래 하나라는 걸 몸 속 깊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근원을 향한 순례’의 측면에서 잡초는 인간보다 더 원초적이고, 동시에 더 진화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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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잡초는 그냥 쓸데없는 풀인 줄 알았다. 잡초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성을 말할 줄은 몰랐다.



A :


Q : 잡초가 왜 그리스도와 닮았나.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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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예수는 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고 했나.



A :

고 목사는 자칭 “잡초 중독자”다. 그가 가장 즐기는 메뉴는 ‘잡초 비빔면’이다. 마당에서 잡초를 뜯어다 살짝 데친 뒤, 물기를 꾹 짜서 고추장과 매실추출물로 버무린다. 면 사리에 버무린 잡초를 얹어서 비비면 완성이다. 고 목사네 마당에서 자라는 잡초만 무려 80여 종이다. 다들 어딘가에서 날아와 남 모르게 뿌리를 내렸다. 그 풀들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다. 우리가 이름을 몰라 ‘잡초’라고 뭉뚱그려 부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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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목사는 “나의 광야는 들판이다. 거기서 잡초를 채취하다 보면,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닫는다. 나 역시 잡초와 같은, 잡초의 일부라는 겸허에 이르게 된다. 그게 또한 나의 수도”라며 “잡초는 우리에게 ‘야생의 회복’을 일깨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의 회복이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능력, 험난한 인생을 헤쳐가는 능력. 그것을 회복하라고 잡초는 속삭인다.”


원주=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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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비빔밥


고진하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고진하=195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신학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목사이면서 시인이자 영성가다. 인도를 순례하기도 했고, 우파니샤드와 노장 사상을 파고들기도 했다. 원주 시골에 있는 한옥에서 목회를 하다가, 요즘은 동네 카페를 빌려서 목회를 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해 남달리 깊은 시선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영적인 통찰과 서정적 감수성이 오롯이흐른다.


1987년『세계의 문학』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거룩한 낭비』 등 지금껏 시집 9권을 출간했다.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쿵쿵』 등 산문집도 냈다. 김달진 문학상과 강원 작가상,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요즘은 잡초에 담긴 영성을 주제로 종종 강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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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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