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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부처님오신날 특집

월주 스님 "적폐청산 넘어서는 큰 정치 하라"

by중앙일보

부처님오신날(12일)을 앞두고 서울 광진구 아차산 자락에 깃든 영화사에서 6일 월주(84) 스님을 만났다. 월주 스님은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조계종단의 큰 어른이다. 국제구호를 위한 NGO활동에도 일생을 바쳤다. 월주 스님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사회적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다. 영화사 염화실에서 만난 그는 붓다의 법, 붓다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의 불통(不通)과 혼란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월주 스님은 먼저 법치(法治)와 덕치(德治)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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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은 "소통이 막힌 건 여야를 막론하고 책임이 있다.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다. 상대를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정동 기자

Q : 법치와 덕치, 무엇이 우선인가.

A : “공자님은 인치(仁治)를 강조했다. 어진 정치다. 맹자님은 ‘의치(義治)’를 주창했다. 옳은 정치다. 이 둘을 묶어서 ‘덕치(德治)’라고 부른다. 반면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법가(法家)에서는 법치(法治)를 내세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법치(法治)를 내세운다. 문재인 정부도 그렇다.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법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법치만 고집할 때는 결국 한계를 맞게 된다.”


Q : 어떤 한계인가.

A : “10일로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어느 정부든 2년까지는 법치를 앞세운다. 그런데 2년이 지나서도 그것만 계속 고집하면 사람들의 피로도가 올라간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적폐청산도 마찬가지다. 출범 2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제는 지루하다’‘너무 피로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법치만 고집하다가는 큰 그림을 놓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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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아차산 영화사의 대웅전 앞뜰에 걸린 등의 오색이 아름답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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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대웅전 앞에 걸린 등의 그림자가 마당에 비치고 있다. 월주 스님은 "이 자리에서 욕심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내면 곧 바로 부처"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Q : 놓칠 수 있다는 큰 그림이 뭔가.

A : “우리 사회를 둘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는 일이다. 한 마디로 사회 통합과 국민 통합이다. 그게 큰 그림이다. 공자님은 무력을 통해 제자를 하나로 묶지 않았다. 덕(德)을 통해 하나로 묶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마음으로 따랐다. 그런 게 ‘큰 정치’다. 물론 법치를 통한 일벌백계(一罰百戒ㆍ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필요하다. 범법을 한 사람을 법으로 다스리고, 사람들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경종도 울려야 한다. 그렇지만 과오를 범한 자들이 처벌을 받고 일정 기간 복역한 후 개전(改悛)의 정이 있으면 사면절차를 밟아서 석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기회를 다시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끝에 월주 스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정치적 조작과 탄압이란 배경이 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사면이 됐다. 그런 다음에 우리 사회를 위해 크게 공헌하지 않았나. 그 이후에도 전직 대통령들이 군사반란과 내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형과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한 바 있다. 그들도 나중에는 사면이 됐다. 정치범 문제는 사회 통합과 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다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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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와 자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고 설명했다. 최정동 기자

월주 스님은 석가모니 붓다 당시에 인도 북부에서 일어났던 분쟁 일화를 꺼냈다. 사카(석가)족과 꼴리야족은 서로 사돈 관계였다. 두 부족의 땅 사이에는 ‘로히니’라는 작은 강이 흘렀다. 그해 여름에 가뭄이 닥치자 분쟁이 생겼다. 강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강이 작아서 두 부족이 모두 농사를 짓기에는 부족한 수량이었다. 결국 양쪽 농민들 사이에 주먹 다툼이 오갔다. 비난이 오가고, 싸움은 점점 커져서 급기야 두 부족의 군대가 전쟁 직전까지 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붓다는 홀로 분쟁 지역의 한가운데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옛날 히말라야에 폭풍이 불어와 사라숲을 덮쳤다. 숲속의 나무와 잡초와 덤불은 서로 엉켜 붙어 의지하고 있었기에 어느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반면 들판에 홀로 있던 큰 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친족들끼리 화목하지 않으면 어떠한 적도 막아낼 수 없다. 두 부족이 하나가 되어 화목할 때 평화를 이루고 번영할 수 있다. 짐승과 나무들도 서로 미워하면 결국 상처를 주고 받는다.” 이 말을 듣고서 사카족과 꼴리야족은 싸움을 멈추었다. 월주 스님은 “부처님은 강물보다 더 중요한 걸 일깨워주셨다. 그게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행복이다. 정치인들도 이걸 깊이 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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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대웅전 처마에 걸린 풍경. 바람이 불 때마다 '댕그렁'하는 소리가 산사를 적셨다. 최정동 기자

Q : 최근 여당과 야당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식물국회’‘동물국회’ 심지어 ‘짐승국회’라는 말까지 나온다. 소통의 부재다. 무엇이 문제인가.

A : “여ㆍ야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여당은 야당이 사사건건 반대한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현 집권당도 야당 시절에는 똑같았다. 사사건건 반대했다. 상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게 강물 싸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 심각한 건 일종의 흑백논리가 양당을 지배하고 있다.”




Q : 어떤 식의 흑백논리인가.

A : “‘양보=굴종’이라고 믿는 시각이다. 양보할 경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흑과 백을 도식적이고 경직되게 가른다. 이게 큰 병폐다. 그런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 의회 정치에 양보와 포용과 타협이 있을 수가 있겠나.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할 때 소통이 가능하다. 여당이 하나를 줄 때 야당도 하나를 주는 거다. 또 야당이 하나를 줄 때 여당도 하나를 주는 거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서로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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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은 "모든 생명은 자기 안에 불성을 가지고 있다.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부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살필 때 우리는 영원한 안락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월주 스님은 “불국토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부처님은 이상세계를 따로 설정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욕심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내면 곧바로 부처이며, 낱낱의 부처가 어울려 살아가는 그 땅이 불국토”라고 덧붙였다.


Q : 현실 속의 불국토. 그걸 위해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A : “‘화쟁(和諍)’이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우겨도 남이 옳다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틀린 생각일 뿐이다. 나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옳으면 다른 사람도 옳고, 다른 사람이 틀리면 나도 틀렸다는 성찰이 화쟁의 참된 의미다. 그런 화쟁이 한국 사회에 절실히 요구된다.”


‘화쟁(和諍)’은 삼국통일 후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던 시기에 신라의 원효가 주창한 불교사상이다. 서로 대립하는 의견이나 사상이 만나서 한 차원 더 높은 사상으로 태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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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은 "부자에는 청부가 있고, 또 탁부도 있다. 부자라고 무조건 미워하는 사회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최정동 기자

월주 스님은 “갈수록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진다.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부자를 향해 적개심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부자라고 다 같은 부자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Q : 다 같은 부자가 아니라면.

A : “부자에도 두 부류가 있다. 얼마 전 경주 최부자 고택에 다녀왔다. 옛날에 가뭄이 들면 곡식이 떨어지고, 논과 밭이 헐값에 나왔다. 돈 있는 사람은 가뭄을 재산 증식의 기회로 삼았다. 그런데 최부자는 달랐다. 가뭄 때 논ㆍ밭을 사지 않았다. 오히려 창고를 열고 식량을 내주었다. 최부자 집에서 백 리 안에는 굶주린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부자라도 ‘청부(淸富)’다. 깨끗하고 맑은 부자다. 반면 ‘탁부(濁富)’도 있다. 흐리고 탁한 부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사람을 무시하고, 갑질을 일삼는다. 오늘날에도 청부는 있다. 그들은 장학사업이나 문화사업, 복지사업 등으로 자신이 가진 부를 사회와 나눈다. 우리가 탁부를 향해선 손가락질하더라도 청부까지 미워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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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월주 스님은 지혜와 자비를 강조했다. 그걸 깨우치면 우리가 모두 부처라고 했다. 그래서 불국토라고 했다. 최정동 기자

마지막으로 월주 스님은 ‘개시오입(開示悟入)’ 네 글자를 말했다. “이게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다. 눈을 열도록 하고, 지견(知見)을 보이고, 깨닫도록 하고, 그 경지에 들어가게 한다. 다시 말해 중생이 지혜와 자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게 지혜요, 내가 부처인 만큼 남도 부처이니 남을 돕고 섬기는 게 자비다.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깨우치면 너와 나, 우리가 모두 부처다. 거기가 불국토다.”

월주 스님, 전두환 군부 지지 성명 거부한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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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 스님은 1980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제17대, 제28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특히 1980년은 신군부가 집권하던 해였다. 당시 총무원장이던 월주 스님은 전두환 지지 성명 요구를 거부하고 민주화 운동을 후원했다. 서슬 퍼런 시절에도 그의 행보는 당찼다. 조계종단 민주화를 위해서도 앞장섰다. 총무원장 3선 금지를 제도를 마련해 독재와 장기 집권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웃종교를 넘나들며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는 김수환 추기경ㆍ강원용 목사와 함께 실업극복국민재단을 설립했다. 지금도 함께일하는재단(구 실업극복국민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청년 일자리와 각 분야별 고용 창출에 힘쓰고 있다. 오갈 곳 없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 '복지법인 나눔의집'을 설립했다. 28년째 나눔의집 이사장을 맡아 일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틀을 바꾸는데 크게 공헌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겸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구호NGO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네팔과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15개국의 산악지대와 오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학교를 짓고, 우물 파기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