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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영화 ‘기생충’ 속 의상, “조여정 사모님 룩이 가장 어려웠다”

by중앙일보

비스포크 양복점 ‘테일러블’ 곽호빈 대표

"옷이 혼자 튀지 않도록 차분하게, 자연스럽게 극 중 인물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려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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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한 장면. 조여정의 카키색 상의가 영화를 위해 테일러블 곽호빈 대표가 제작한 옷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7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기생충’의 의상을 만든 사람, 수제 맞춤 양복점 ‘테일러블’ 곽호빈 대표의 말이다. 그는 최세연 의상감독의 컨셉트와 디자인을 기본으로 영화 속 인물들의 옷을 만들어냈다. 동익(박사장) 역의 이선균이 입은 슈트와 아내 연교 역의 조여정이 입은 슈트와 원피스 등 총 10여 벌의 의상을 제작했다.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입은 턱시도도 그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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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의상을 제작한 맞춤 양복점 테일러블의 곽호빈 대표. 장진영 기자

곽 대표는 2007년 한남동의 제일기획 뒤쪽 한적한 골목에 오래된 방앗간 한쪽을 빌려 슈트 전문점을 낸 뒤 지금까지 맞춤 양복을 만들고 있다. 10대 시절 장롱 안에 여러 종류의 재킷이 가득 차 있을 만큼 멋쟁이였던 아버지와 양복이 너무나도 멋있게 잘 어울렸던 영화 ‘007’의 피어스 브로스넌을 보고 슈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제대로 슈트를 배우고 싶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바로 유럽으로 날아가 남성 슈트로 유명한 런던·피렌체 등 도시에 머물며 맞춤 양복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돈으로 다시 장인을 찾아가 양복을 맞추며 옷 공부를 했다.


그렇게 4년. 나름의 공부를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낸 가게가 바로 맞춤 양복점 테일러블이다. 그의 양복은 곧 입소문을 탔고 박서준·윤계상·조승우·장근석 등 남자 연예인들이 단골이 됐다. 봉 감독의 전작 ‘옥자’에 출연했던 배우 변희봉씨도 2017년 이곳의 턱시도 슈트를 입고 칸 영화제에 참석했다.


-어떻게 '기생충' 의상을 제작하게 됐나.


“봉 감독님과의 작업은 처음이지만, 최세연 의상감독과는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년) 때부터 봉 감독님의 팬이었다. 최 감독이 영화의상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고민 없이 단번에 수락한 이유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옷은 그 사람의 성격과 이미지를 결정하는 물건이다. 영화 속에선 옷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극 중 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이선균씨는 극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인물이다. 그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어떤 옷이 가장 적합할 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최 감독과 의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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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이선균은 성공한 CEO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고급 소재로 만든 어두운 색 재킷을 캐주얼한 바지와 티셔츠 위에 걸쳐 입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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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상을 위해 수없이 들쳐본 원단 샘플들. [사진 테일러블]

그의 말처럼 영화 속 의상은 배우들의 성격과 위치를 보여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성공한 IT 회사 CEO인 동익의 슈트는 한눈에 봐도 '고급'임을 알 수 있는 원단을 사용했다. 하지만 과도하게 멋부린 느낌 없이, 여유를 준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너무 날렵하지 않은 재킷을 만들어 일에 빠져있는 IT 회사 대표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짙은 색 재킷이나 스포츠 코트에 바지를 매치한 세퍼레이트 룩(다른 분위기의 재킷·바지를 함께 입는 연출법) 등이다.


-가장 어려웠던 의상은.


“모든 배우의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가장 어려웠던 건 조여정씨의 의상이었던 것 같다. 여배우인 데다 옷을 통해 상류층의 우아한 여성이면서 고독한 아내라는 점이 드러나길 바랐다. 그가 가진 기존의 쾌활하거나 관능적인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해 더 고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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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 입은 조여정의 바지 정장. 체크 무늬가 들어간 아이보리색 재킷은 허리를 최대한 잡아 여성스러움을 부각시켰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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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체크 무늬 재킷.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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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정의 영화 의상들. [사진 테일러블]

-조여정 의상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화려한 ‘사모님’의 모습과는 다르게 조금 힘을 뺀 간결한 모습의 디자인을 요청 받았다. 조여정씨 역시 몇 번이고 매장에 직접 찾아와 의견을 내고 옷의 여러 부분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예컨대 과외 면접을 볼 때를 포함해 집 안에선 실크 소재 옷을 주로 입었는데, 실크의 화려함을 드러내기보다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 라인과 볼륨에 신경을 써 고급스럽고 단정한 모습을 강조했다. 아들 생일파티를 위해 마트에 갔을 때 입은 재킷과 바지, 포스터에서 입었던 검정 원피스 등도 너무 튀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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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사진 AP]

-칸 영화제의 턱시도도 제작했다고 들었다.


“봉 감독님의 턱시도를 만들었다. 봉 감독님의 경우 평소 캐주얼을 즐겨 입지만, 이때 만큼은 자리에 맞는 턱시도를 입어야 해서 새로 맞췄다. 180cm가 넘는 키에 체격이 상당히 큰 편이고, 최근 체중이 많이 늘어 배가 안 나와 보이도록 신경 썼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