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사라진 CCTV 영상···어린이집 원장들의 노림수

[이슈]by 중앙일보

어린이집 CCTV 의무화 4년

부모가 영상 요구하면 “고장·분실”

제재는 과태료 최고 300만원뿐

원장들 “잠재적 범죄자 취급 안 돼”


19개월 아이의 엄마 A씨는 지난 4월부터 서울 강남구 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A씨는 아이를 등원시킨 뒤 어린이집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보육교사의 고함과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아동학대를 의심, 어린이집에 CCTV 열람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측은 “CCTV가 녹화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찰을 대동해 즉시 열람을 시도했지만, 어린이집 측은 다시 “영상이 저장된 외장하드가 손상돼 복구업체에 보냈다”고 대응했다.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외장하드를 확보한 A씨는 사설업체에 이를 보냈지만 업체에서는 ‘물리적 손상으로 복구할 수 없다’고 했다. A씨 등 학부모들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해당 어린이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확보한 외장하드 및 영상자료를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보내 복구를 위한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같은 일은 최근 서울 관악구에서도 발생했다. B씨는 관악구 조원동의 한 어린이집에 2살과 3살 난 자녀 두 명을 보냈다. 두 아이의 몸에서 타박상 등 상처가 계속 발견되자 지난달 23일 해당 어린이집을 관악구청에 신고했다. 이에 관악구청은 신고 4일 뒤인 지난달 27일 해당 어린이집을 방문해 현장점검에 나섰지만 어린이집 측은 “23일 당일 CCTV 영상 저장장치가 고장 나 밖에 버렸더니 누군가 가져갔다”며 “녹화된 영상을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관청이 해당 어린이집에 내릴 수 있는 조치는 CCTV 관리 부실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전부다. 관악구청의 경우 위반과정과 정황을 참작해 7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부모들의 신고를 받은 관악경찰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해당 어린이집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015년 9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시행된 뒤 4년이 지났다. 이후 CCTV 녹화 영상은 의사 표현과 진술에 서툰 어린아이에 대한 보육교사의 아동학대를 입증하는데 주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또 수사 과정에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각종 학대 영상이 대중에 공개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낳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아동학대 의심 정황이 발생하면 어린이집에서는 "CCTV 녹화가 안 됐다"라고 말하거나 "손상됐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학대 의심 상황에서 CCTV를 확보하려는 학부모들과 CCTV를 지키려는 어린이집과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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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지난 2018년 9월 7살 난 원아가 손가락 마디에 인대 상처를 입는 일이 있었다. 이에 아이의 학부모가 CCTV 열람을 요청했지만, 어린이집 측에서는 “기계조작이 미숙해 영상 저장 기간이 짧게 설정된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며 영상이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이 학부모는 어린이집 측이 학대 정황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CCTV 영상을 삭제했다며 안동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자신의 아동학대 정황이 담긴 CCTV 영상을 삭제한 혐의로 보육교사가 처벌받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미복 판사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보육교사 서모(41)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만 1세 반을 담당하는 보육교사 서씨는 2016년 10월 자신이 맡은 아동을 일부러 재우지 않거나 밥을 먹이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서씨는 자신의 학대행위가 담긴 CCTV 영상을 어린이집 송년회가 있는 틈을 타 몰래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자는 영상정보가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되지 않도록 내부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접속기록 보관 등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 관리적, 물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어기고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 또는 훼손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문제는 고의성 입증이다. CCTV 영상을 고의로 삭제하거나 훼손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에 그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1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동학대가 드러나게 되면 양벌규정에 의해 보육교사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원장도 처벌을 받게 된다”며 “이 때문에 원장 입장에서 학대를 인정하느니 CCTV를 지우고 과태료를 낸다는 식으로 법을 악용하는 어린이집이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곽문혁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CCTV를 수시로 열람하게 된다면 어린이집과 보육교사는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며 "문제가 있는 부분은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처벌하면 된다"고 밝혔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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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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