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 폭행' 반전…아내는 왜 3일만에 비난대상 됐나

[트렌드]by 중앙일보

“일부러 한국말 못 하는 척 화를 돋워서 맞은 다음 영상을 찍었겠지. 계획적인 쇼다”


“피해자도 이혼하고 난 뒤 베트남으로 다시 추방시켜라.”


베트남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을 두고 관련 온라인 기사들에 피해 여성을 비방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베트남 여성 폭행 사건의 피해자에게 한국 국적을 주지 말라’는 청원글도 올라왔다.


사건 초기만 해도 남편에 대한 공분과 더불어 ‘매맞는 이주 여성들’이 주된 문제로 환기됐다. 불과 며칠만에 여론의 초점이 옮겨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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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뒤덮은 ‘불륜’ 보도…가려진 폭행 본질


발단은 남편 김모(36)씨가 피해자 A씨와 내연 관계였다는 보도가 나온면서다. 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김씨는 A씨와 결혼이 세 번째였다. 두 사람은 5년 전 만나 교제를 시작했는데, 아직 김씨는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을 김씨의 전 부인이라 지칭한 여성이 A씨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며 파장은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사생활 이슈로 사건의 본질이 가려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어린아이가 보는 앞에서 무자비하게 아내를 폭행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때린 남편의 폭력은 어느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게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과거가 좋지 않은 사람은 맞아도 된다는 식의 논리가 본질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이현서 변호사는 “확인되지 않은 글로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비난이 가해지는 상황”이라며 “백번 양보해 불륜이 맞다고 할지라도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 노렸다?…현실은 쫓겨날까 이혼 못해


해당 여성이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계획적으로 폭력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근거 없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이는 A씨를 넘어 베트남 여성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지에는 ‘베트남 여자들은 시집오면 몇 년 살다가 국적 취득해주면 동거하고 바람난다’며 이주 여성 전체를 폄하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남편에게 폭력을 유도해 계획적으로 이혼한 뒤 국적을 취득하는 게 용이할까. 전문가들은 “실상은 정 반대”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결혼이주여성 중 42%가 가정폭력을 경험했고, 이 중 31%가량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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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남편의 도움 없이는 체류가 연장되거나 귀화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1년 결혼여성의 체류기간 연장 때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를 폐지했다. 이주 여성들이 남편에게 종속되면서 폭행을 참고 사는 상황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후 문서 제출은 없어졌어도, 여전히 남편이 동행하지 않거나 등본이 없으면 체류 연장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현서 변호사는 “많은 사건을 다뤄보면 대다수의 이주 여성들이 악의적으로 사건을 기획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며 “오히려 가정폭력 피해를 입어도 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도망간 신부…위장결혼 그늘도 존재하는 건 사실"


물론 이주 여성이 항상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국제 결혼의 이면에는 피해를 당한 한국인 남편들도 존재한다. 중개업체를 통해 수천만원을 들여 결혼을 했는데 몇 달만에 신부가 도망가버린 사례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고 이주 여성 전체를 매도하는 형태의 비난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회 대표는 “베트남 등 해외 이주 여성들이 실상을 모르고 결혼했다가 가정 폭력을 겪고 놀라서 서둘러 이혼하거나, 한국의 법을 잘 몰라 급하게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관계자는 “이혼에는 다양한 사유가 존재하기 마련”이라며 “특정 국가 이주민들에게만 이혼을 했다고 꽃뱀이라는 식의 손가락질이나 낙인을 찍는 건 그 자체가 편견이며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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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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