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선 ‘공룡 다리’ 뜯고 ‘통술집’ 상차림에 입이 쩍

[푸드]by 중앙일보


일일오끼 - 경남 창원시 마산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마산시는 없다. 2010년 마산시와 창원시가 합쳐지면서 옛 마산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나뉘었다. 하여 마산의 맛은 창원의 맛이다. 아직 입에 붙지 않았을 따름이다.


마산에는 골목이 많다. 아구찜 골목과 복요리 골목은 물론이고 ‘홍콩빠’ ‘오동동빠’ 같은 수상한 골목도 있다. 통술집 모인 거리도 있고, 옛 창동 번화가를 가로지르는 ‘상상길’도 있고, 250년 묵었다는 문화재급 골목도 있다. 항구 도시 마산은 1760년 조창(漕倉)이 설치되면서 본격화했다. 세(稅)로 거둔 곡물을 모아두는 창고를 지었다는 것은, 그 시절에 이미 경남권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뜻이다.


좁고 낡은 골목이 많다는 건, 도시가 오래 묵었다는 뜻이다. 도시의 서글픈 내력이 골목에, 골목을 지키는 늙은 가게에, 그 가게에 평생을 바친 ‘마산 아지매’의 거친 손에 꾹꾹 쟁여 있다. 마산의 맛은 강했다. 그래서였을 테다. 음식을 삼키다 몇 번을 울컥했다.



마산의 소울푸드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 ‘아구’라는 생선은 없다. 아귀는 있다. 더 이상한 건 아구찜은 흔한데 아귀찜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흉측한 몰골의 어물을 마산에서 처음 쪄 먹었다. 마산 사람이 아귀를 아구라고 한다. 마산아구찜. 옛 마산시가 등록을 마친 상표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동동에 아구찜 골목이 있다. 아구 요리 전문 식당 여남은 개가 모여 있다. 골목 안의 ‘진짜초가집’이 원조라고 하는데, 요즘엔 ‘오동동아구할매집’이 더 북적인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도 이 집에서 아귀 요리를 먹었다. 1960년대 초 식당을 하던 혹부리 할머니가 아귀에 된장·고추장·콩나물 등을 넣고 찐 게 아구찜의 시초라고 한다. 그맘때 아구찜 식당이 속속 들어섰다. 오동동아구할매집도 3대째 내려온다.


아귀는 원래 안 먹는 어물이었다. 어부가 재수 없다고 버리면, 농부가 주워서 밭에 거름 삼아 뿌렸다. 한국전쟁 직후, 그렇지 않아도 복작거리던 마산항에 피란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시절 내다 버리던 어물을 사람이 먹기 시작했다. 아구찜에는 마산의 고단한 삶이 배어 있다.


마산아구찜은 말린 아귀를 쓴다. 겨울 해풍에 말린 아귀다. 서울 아구찜과 맛과 모양이 아주 다르다. 식감은 북어찜과 비슷하고 국물이 바특하다. 조리 방법도 찜이라기보다 볶음에 가깝다. 말린 아귀를 써 서울 아구찜보다 볼품이 없다. 대신 맵다. 매운데, 씩씩거리며 덤비게 된다. 건아구찜 2인 2만5000원.



통술집의 추억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항구는 술꾼의 터전이다. 예나 지금이나 험한 뱃일을 달랠 수 있는 건 술뿐이다. 항구마다 나름의 음주 문화가 내려온다. 통영에 다찌가 있다면, 마산엔 통술집이 있다. 오동동 아구찜 골목 옆에 20여 개 통술집이 몰려 있다.


애초의 통영 다찌가 술을 주문하는 대로 안주가 따라 나왔다면, 마산 통술집은 한 상 차림이 기본이다. 술을 통째로 꺼내 먹는 데서 통술집이 비롯됐다고 알려졌으나, 사실과 다르다. 술상을 통에 올려놔서 붙은 이름이다. 물론 지금도 술은 양동이째 나온다. 얼음 꽉 채운 빨간 양동이에 소주병과 맥주병이 꽃처럼 꽂혀 있다. 술상 하나에 보통 20개가 넘는 안주가 나온다. 모두 제철 해물과 채소를 쓴 안주다. 철마다 안주가 다른 까닭이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동동 통술집 대부분이 30∼40년 이력을 자랑한다. 개중에서 ‘강림통술’에 들어갔다. 이 집도 35년쯤 묵은 집이다. 문어·전복·장어·가자미·병어·소라·갈치·미더덕 등 아침마다 마산어시장에서 받아오는 해물이 술상의 주인공이다. 어머니 김신기(75)씨가 딸 배은승(48)·상명(45)씨와 함께 운영한다. 4인 한 상 7만원. 소주·맥주 각 5000원. 안주가 떨어지면 공짜로 채워준다. 술은 아니다.



복어 수족관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술꾼의 고장 마산에는 해장 문화도 발달했다. 전국에서 유일한 복요리 거리가 마산에 있다. 마산어시장 맞은편에 복집 간판을 내건 식당 20여 개가 모여 있다. 골목 초입에 마산복국 원조집이라는 ‘남성복집’도 있다.


아구찜처럼 복국도 마산의 소울푸드다. 아귀가 징그러워 안 먹는 어물이었으면, 복어는 무서워서 못 먹는 어물이었다. 두 어물 모두 애초엔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었다. 마산아구찜처럼 마산복국도 항구의 치열한 삶에서 기원했다. 차이점도 있다. 복요리는 아구찜과 달리 고급 요리다. 아귀처럼 흔하지 않을뿐더러 손질이 까다로워서다. 복요리 자격증 시험은 요즘도 80%가 떨어진단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산 복어가 각별한 건 복어 활어를 맛볼 수 있어서다. 요즘 복집은 대부분 냉동 복어를 쓰거나 중국산을 쓴다. ‘쌍용복집’에서 참복 활어를 맛봤다. 여름은 까치복이 제철인데, 신자인(71) 대표가 마침 거제도에서 받아온 것이 있다고 했다. 참복이 조금 더 비싸다. 매운탕 국물이 시원한데도 달았다. 그러고 보니 마산 음식은 대체로 달고 맵고 짜고 강했다. 참복 활어 매운탕 1인 3만5000원.



연중무휴 야구장 펍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창원은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다. 광역시는 아니다. 광역시는 아니어도 연고 프로야구팀은 있다. NC 다이노스. ‘마산 아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NC 다이노스 홈구장이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개장했다. 이 야구장에 이색 메뉴가 있다. 마산 소울푸드 아귀를 쓴 아귀강정과 아귀쫄면(각 1만5000원)이다. 아귀강정은 매운 간장 소스로 양념했고, 아귀쫄면은 아귀 튀김에 쫄면을 더했다. 창원NC 다이노스몰 2층의 펍 ‘달&아자부’에서만 판매한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달&아자부’는 칠면조 다리 구이 ‘다이노스 레그(1만5000원)’와 엄청난 크기의 ‘공룡알 주먹밥(4000원)’도 판다. 두 메뉴 모두 NC 다이노스를 상징한다. NC가 공룡을 마스코트로 쓴 건 창원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서다.


이색 메뉴 모두 기대 이상으로 맛있다. 비결을 묻자 구단 관계자가 “홍보용 메뉴여서 이윤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달&아자부’는 국내 야구장 펍 최초로 연중 영업한다. 월요일만 쉰다. 야구 시즌과 무관하게 창원의 젊은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공단 여공의 눈물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창원시 산업관광 해설사 김숙(51)씨. 그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84년 1월 고향을 떠나 마산으로 왔다.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자은도. 지금은 육지와 이어졌지만, 김씨가 섬을 떠날 때는 목포까지 배로 3시간이 걸렸다. 목포에서 마산까지는 기차로 7시간 30분. 그렇게 열다섯 살 섬 소녀는 생면부지 마산에 뿌리를 내렸다.


딱한 생각도 들지만, 그때만 해도 혜택을 입은 셈이었다. 당시 마산공단의 한일합섬은 전국에서 여공을 선발했다. 학교장 추천을 받아야 했으며, 키와 몸무게 제한이 있었다. 김씨는 “키는 160㎝ 이상 몸무게는 50㎏ 이상이어야 했다”고 기억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마산의 소녀들은 늘 배가 고팠다. 그들이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곳이 창동예술촌과 부림시장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 명소가 ‘6·25떡볶이’다. 6·25떡볶이는 가게 이름이자 가게 대표 메뉴다. 국물 떡볶이랄 수 있는데, ‘떡을 첨가한 매운 어묵탕’에 더 가깝다. 떡볶이 건더기의 약 80%를 어묵이 차지한다. 물론 육수도 어묵이 좌우한다. 별 이유 없다. 어묵이 떡보다 흔했다. 마산어시장이 지척이다. 국물이 많아서 떡볶이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3000원).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이 화분 받침대다. 플라스틱 화분 받침대에 떡볶이 접시를 올려서 준다. 손님이 쪼그려 앉아서 떡볶이를 먹던 시절, 자주 국물을 쏟았단다. 궁리 끝에 찾아낸 묘수가 화분 받침대다. 지금은 다들 의자에 앉아서 먹지만, 화분 받침대는 여전히 따라 나온다.


6·25를 앞세웠으나 한국전쟁하고는 상관없다. 70∼80년대 좌판에서 장사하던 시절, 화덕 앞에 놓인 목욕탕 의자에 손님이 쪼그려 앉았었다. 그 모습이 전쟁 피란민처럼 보인다고 해 6·25떡볶이가 됐다. 마산어시장 주변의 ‘홍콩빠’와 ‘오동동빠’도 그 시대가 낳은 골목이다. 변변한 식당이 없어 마산 아재는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술을 마셨고, 마산 소녀는 쪼그려 앉아 떡볶이를 먹었다. 그때는 다 그렇게 먹고 살았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밥집도 있다. 마산에선 김밥을 시키면 된장과 풋고추가 같이 나온다. 그 전통을 지키는 집이 창동예술촌 구석에 숨은 ‘안집 김밥’이다. 매운맛 밝히는 소녀 취향이 반영된 것인지, 자극적인 맛을 찾는 마산 사람의 기질 때문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전통김밥 1인분(2줄) 4000원.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59년 풀빵 집에서 시작한 마산의 제과 명가 ‘고려당’도 그 시절 소녀들의 아지트였다. 특히 미팅 장소로 유명했다. 팥빵(1800원)과 버터크림빵(1300원)이 지금도 제일 잘 나간단다. 단맛이 강한 빵보다 빵집 직원의 유니폼에 박힌 ‘지켜줘서 고맙습니다’는 글귀가 더 인상에 남는다.


창원=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중앙일보

그래픽=주이안 디자이너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