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 폰딧불이 아재‧관크 여사…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매너

[컬처]by 중앙일보

[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관람객 문화 어떻게 바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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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개봉해 예술 다큐로는 드물게 관객 2만명을 돌파한 ‘마리아 칼라스:세기의 디바’. 영화는 20세기 최고의 오페라 소프라노로 명성을 떨친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삶을 충실한 영상 자료로 복원해 낸다. 클래식 팬이라면 칼라스가 귀기 어린 목청으로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 등을 부르는 장면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질 것이다.


그런데 1965년 3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 도입부는 좀 특이하다. 객석 발코니석에서 찍은 듯 멀리서 측면으로 잡힌 데다 주변 소음도 그대로 담겼다. 이후에도 종종 흔들린 채 찍힌 공연 화면, 커튼콜 장면이 등장한다. 고정 카메라로 촬영하고 현장 잡음을 배제한 공식 기록 영상과는 확 차이가 난다.


톰 볼프 감독은 이 다큐를 만들 때 수년 간 칼라스 지인은 물론, 팬이 소장한 자료, 파파라치 컷까지 샅샅이 수배해 활용했다고 한다. ‘사소한 발견’이 포착한 ‘튀는 화면’이 어느 열성 오페라팬의 ‘몰래 촬영’이었을 수 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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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중 촬영에 흡연도 하던 때가…


칼라스가 주로 활동했던 1950~60년대 공연장 환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영화관은 더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천국’(1988)에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작은 마을의 극장 풍경이 담겨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고 심지어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한국도 1970년대 초 극장 객석 내 흡연을 금지했지만 80년대까지도 버젓이 담배를 무는 이가 적지 않았다.


요즘은 어림 없다. 국민건강증진법 9조 4항 ‘금연구역’ 규정에 따르면 공연법에 따른 공연장으로 객석 300석 이상인 곳은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객석 내부는 물론이고 건물 내부 전체에서 흡연이 금지된단 얘기다.


영화관‧공연장에서 사전 협의되지 않은 사진 촬영 및 녹음‧녹화도 불법이다. 한국의 경우 저작권법 제104조의6 ‘영상저작물 녹화 등의 금지 항목’에 이를 규정하고 있다.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얼마 전 뮤지컬배우 정선아가 중국 극장에서 '라이온 킹'을 봤다면서 상영 도중 화면의 한 장면을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영상물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주변인의 관람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용어가 ‘관크’다. '관객'과 '크리티컬(critical)'의 합성어로 ‘진상 관객’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신조어다. 일부 네티즌은 정선아의 평소 무대 관람 매너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관크 여사’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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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플래시 쓰면 안돼" 매너 호소도


“좋은 음악은 음악가의 역량에 좌우되지만 청중도 이를 이룩하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중략) 시간을 지키지 않는 청중, 막이 오른 뒤에 들려오는 숙녀의 하이힐 소리, 심한 경우 어린이의 울음소리까지 섞여나올 때 무대에 선 음악인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68년 6월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내가 듣고 본 탈리아비니 독창회’라는 기고의 일부다. 성악가 오현명은 이 글에서 “공연장 안에서 마구 플래시를 터뜨려 공연 분위기를 망치는 문제도 이제 반성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달리 말하면 공연장 안에서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 분위기였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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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이 강화된 1987년 이전까지는 공연장 내 촬영이 금지사항이라기보다 터부시되는 정도였다. 심지어 1988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내한공연을 한 라스칼라 오페라단의 ‘투란도트’ 때도 언론이 문제 삼는 비매너는 ‘플래시 촬영’이었다.


“3시간 여 공연 동안 계속 셔터음과 플래시빛을 터뜨리며 사진촬영하는 등 몰지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제재가 있어야 했다.”(매일경제, 1988년 8월24일)


이상만 음악평론가 겸 공연기획자에 따르면 공연장 매너가 확 바뀐 계기는 1988년 예술의 전당 개관이다. 이 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술의 전당이 유럽식 운영 시스템을 참고해 애초부터 선진 공연문화를 표방했다”면서 “이미 저작권법이 통과된 후라 공연장 매너 방송도 하고 안내요원들의 카메라 제지도 엄격한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예술의 전당 홍보팀 관계자는 “개관 때부터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표 확인, 객석 안내 외에 공연장 분위기를 정숙하게 하는 데 노력했다”면서 “현재 ‘하우스 어텐던트’라는 이름으로 이 같은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들어선 ‘소음 시비’가 대두됐다. ‘삐삐’로 불린 무선호출기가 보급되면서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주최 측이 안내방송까지 했으나 1층 객석 중간에서 무선호출기의 신호음이 간간이 울려퍼져 청중과 연주자 모두를 아연케 했다.”


1995년 3월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협연을 리뷰한 3월23일자 경향신문 기사다. 휴대폰이 보급된 후론 공연 도중 통화하는 무매너를 지적하는 기사가 셀 수 없이 쏟아졌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폰딧불이' 스트레스


요즘은 한국의 관람 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오히려 엄격한 편이다. 공연전문 투어를 기획하는 드림원정대의 이상훈 대표는 “전 세계를 다니며 매년 150~200편의 클래식‧오페라‧뮤지컬‧록 공연 등을 보는데, 한국 안내 요원의 매너 관여가 가장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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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 요인이 스마트폰 대중화다. 외국보다 훨씬 모바일 사용량이 많고 소셜미디어용으로 적극 촬영하는 관객이 많기에 제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저작권도 문제지만,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면서 사용할 때 불빛만으로도 주변 관람에 불편을 준다”고 꼬집었다. 소위 ‘폰딧불이’(폰+반딧불이) 스트레스다.


관람 문화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소위 '덕후'급 공연 매니어와 어쩌다 나들이하는 관객 간에 ‘문화 시차’로 인한 시비도 생긴다. 한쪽에선 “대사 없는 타이밍에 기침 소리를 내서 맥을 끊었다” "형광색 옷을 입고 와 시선을 방해했다"며 ‘관크’를 비판하고 이에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느냐” 하는 불만이 맞선다. 일부 뮤덕(뮤지컬 덕후)들은 겨울에 패딩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불만스럽다는 후기를 남겨 “숨도 쉬지 말고 ‘시체관람’ 하란 말이냐”는 반론을 듣기도 했다.


시대 따라 변하는 매너에 정답은 없다. 그래도 ‘폰딧불이’ 비난을 안 들으려면 최소한의 눈치‧염치는 챙겨야 하지 않을까. 문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 사소한 발견(사발)


문화 콘텐츠에서 사소한 발견을 통해 흥미로운 유래와 역사, 관련 정보를 캐고 담는 '사발'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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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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