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日관제권 가진 韓하늘길, 항공기 '30초 거리' 충돌할뻔

[이슈]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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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제주공항을 이륙해 중국 푸동공항(상하이)으로 향하던 중국의 길상항공 비행기가 오전 11시 10분께 갑자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푸동공항을 출발해 일본 나리타로 향하던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가 너무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이다. 당시 두 비행기는 수직으로 210m, 수평으로는 8.8㎞ 떨어진 상태였다. 항공기의 빠른 속도를 감안하면 먼 거리가 아니었다.


잠시 뒤 길상항공은 관제를 담당하던 인천 ACC(종합교통관제소)에 동방항공 비행기의 접근에 따른 '공중충돌 경고장치 회피기동(ACAS RA)을 한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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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끼리 공중에서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지시하는 대로 고도를 낮춘다는 의미다. 회피기동은 상대 비행기가 20~30초 이내에 충돌 구역으로 진입이 예상될 때 실시한다. 그만큼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일본·한국 관제 항공기 간 "충돌 위험"


13일 중앙일보가 단독입수한 국토교통부의 '공중충돌 경고장치 회피기동 발생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건이 발생한 건 동방항공 비행기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항로 상에 뇌우(번개, 천둥을 발생시키는 하나의 폭풍우)가 발생하자 이를 피해 북쪽으로 56㎞가량을 이탈한 때문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우선 우리측 관제사가 당시 항공기들의 운항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서 발생한 일로 파악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회피기동이 발생한 곳은 중국 상하이~일본을 오가는 아카라 항로(A593)로 우리나라 비행정보구역(FIR)이 상당 부분 포함됐음에도 일본과 중국이 관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총 515㎞의 항로 중 257㎞가 우리 FI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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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개설됐으며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이 미수교 상태로 양국 간 통신 자체가 불가능한 점 등을 고려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중재로 아카라 항로 전체의 관제권을 중국과 일본이 나눠 가지게 됐다.


자국 하늘의 관제를 다른 나라에게 맡기는 건 관제 능력 부족 등의 특별한 사유가 아닌 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 하늘인데 한·중·일 관제권 나뉜 탓"


지난해에는 중국이 우리 FIR내 관제를 하는 대가로 국내 항공사들로부터 항행시설사용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정상적이라면 국적기는 우리 FIR 통과 때 돈을 낼 필요가 없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아카라 항로와 교차하는 항로 주변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세 나라의 관제권이 뒤섞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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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항공의 회피기동 때도 길상항공은 인천 ACC가, 동방항공은 일본 후쿠오카 ACC가 관제를 담당했다. 이렇게 되면 동방항공 비행기의 이상한 움직임이 레이다 상에 포착돼도 우리 관제소에서는 동방항공에 직접 무선연락을 할 수가 없다. 정 급하면 후쿠오카 ACC에 연락해 확인을 부탁해야 한다.


시속 800~900㎞로 빠르게 비행하는 여객기를 고려하면 자칫 긴급 대응 시기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카라 항로와 그 주변은 국제항공업계에서 위험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에도 아카라 항로에서 유사한 위험 상황이 벌어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아카라 항로를 운항하던 미국의 페덱스 항공기가 후쿠오카 ACC의 허가도 없이 임의로 고도를 9450m에서 900m 가까이 올렸다.



페덱스 항공기, 무단 고도 상승 사건도


당시 항로 남쪽에선 동남아를 출발한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 소속 항공기 2대가 고도 1만m가량을 유지하며 제주도 방면으로 연이어 날아오고 있었다.


자칫 이대로 비행하면 두 항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한 우리측 관제에서 제주도 방향으로 향하던 두 번째 항공기에 좌측으로 긴급 선회할 것을 지시해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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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페덱스 항공기의 조종사가 일본 측 관제에 고도상승을 요청했으나 허가도 나오기 전에 무단으로 고도를 올린 것으로 추후 확인됐다. 페덱스 항공기는 일본의 관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측 관제는 역시나 일본 측에 해당 상황을 문의하고 대응 조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아카라 항로와 인근에서 관제권이 뒤섞이는 상황의 위험성은 이미 항공 관련 세계 최대 민간기구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 "관제권 환수가 근본 해결책"


IATA는 2017년 11월 발행한 ‘아카라 회랑의 항로 교차 현상’에 대한 보고서에서 “아카라 항로와 동남아 항로 등이 인천 FIR 내에서 수직으로 교차하는데도 관제권이 한 곳으로 통일되지 않고 한국과 일본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항공기가 급작스럽게 하강을 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관제분야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항공안전을 위해 서둘러 관제시설과 인력 보강을 하고 우리 비행정보구역 내 아카라 항로의 관제권도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연철 한서대 교수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관제권을 환수해오는 것이며, 차선책으로 한·중·일 3국 간에 관제 정보를 보다 면밀하게 주고받기 위한 협정을 체결해 항공 안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영국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관은 "아카라 항로 안전 확보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일본, ICAO와 긴밀하게 논의 중"이라며 "다만 민감한 사안인 만큼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밝혔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용어사전 > FIR(비행정보구역)


flight information region. 비행 중에 있는 항공기에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항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항공기 사고가 발생할 때에는 수색 및 구조업무를 책임지고 제공할 목적으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분할 설정한 공역. 점차 해당 국가의 영공 개념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국제법상 인정된 영공은 아니지만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영공 외곽의 일정 지역 상공에 설정하는 자의적 공간인 방공식별구역(KADIZ)과는 다르다.


용어사전 >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International Air Transport Association. 1945년에 항공운송 발전과 문제 연구, 국제항공 운송업자들의 협력을 위해 출범한 민간기구로 ‘항공업계의 UN’으로 불린다. 국제항공운임 결정과 항공기 양식통일 등의 활동을 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130여 개국 280개 가량의 항공사가 가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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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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