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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런닝맨’은 1년 뒤에도 남아있을까…9주년에 팬미팅 한 이유

by중앙일보

‘해피투게더’ ‘라디오스타’ 등 장수 예능 위기

시청률 2∼6%대…젊은 시청층 TV 이탈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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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SBS) 방송 9주년 기념 팬미팅 공연. 한때 20% 시청률에 육박했던 '런닝맨'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쇠퇴와 함께 시청률이 6%대로 내려앉았다. [방송캡처]

지난달 SBS ‘런닝맨’은 방송 9주년 기념 팬미팅 ‘런닝구 프로젝트’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대대적으로 열었다. 유재석ㆍ지석진ㆍ하하ㆍ김종국ㆍ이광수ㆍ송지효ㆍ전소민ㆍ양세찬 등 멤버 여덟 명 전원과 거미ㆍ소란ㆍ에이핑크ㆍ코드 쿤스트ㆍ넉살 등이 2500여 명 관중 앞에서 대형 쇼 무대를 펼쳤다. 팬미팅 실황은 지난 8일부터 매주 일요일 ‘런닝맨’ 시간에 방송되고 있다. ‘런닝맨’ 정철민 PD는 “10주년에 하면 멋있긴 했겠지만 앞으로 어찌될 지 몰라서…”라며 9주년에 기념 행사를 크게 벌인 이유를 설명했다. 1년 뒤 방송의 존속 여부마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 ‘런닝맨’을 비롯한 각 방송사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버라이어티와 토크쇼의 시대가 저물며 ‘해피투게더’ ‘안녕하세요’(이상 KBS2), ‘라디오스타’(MBC) 등 각 방송사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한때 20, 30%에 육박했던 시청률이 최근엔 2∼6%대에 머무르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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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2.6%를 기록한 12일 '해피투게더'(KBS2). [방송캡처]

2001년부터 방송 중인 지상파 최장수 토크쇼 ‘해피투게더’의 위기는 특히 두드러진다. 시청률은 지난달 22일 19년 방송 역사상 최저 수치인 2.5%(닐슨코리아 조사결과)를 기록했고, 가장 최근회인 지난 12일 방송 시청률도 2.6%로 최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쟁반노래방ㆍ사우나토크ㆍ야간매점 등의 코너로 인기를 끌었던 ‘해피투게더’는 2008년 시청률 22.8%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출연자들의 토크가 드라마ㆍ영화ㆍ공연 등의 홍보 목적으로 출연한 게스트들의 사연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뻔한 포맷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2014년엔 허경환ㆍ신봉선을, 2015년엔 박미선ㆍ김신영을 고정 MC군에서 뺐고, 지난해 10월에는 터줏대감 격이었던 박명수까지 하차시키면서 대대적인 개편을 했지만 대세를 바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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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라디오스타'(MBC)가 시작했을 때부터 MC 자리를 지켜온 윤종신이 지난 11일 고별 방송을 했다. 이날 시청률은 6.1%를 기록했지만 바로 다음주에 다시 3%대로 떨어졌다. [방송캡처]

지난 11일 12년 동안 MC 자리를 지켜온 윤종신이 고별 방송을 한 ‘라디오스타’도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다. 18일 방송에서 시청률 3.8%를 기록하며 전주 반짝 6.1%로 상승했던 시청률을 지키지 못했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예전에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뒷얘기와 재치있는 농담 등을 접하기 위해 TV 토크쇼를 보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이젠 인터넷 등에 온갖 얘깃거리와 정보가 넘치는 상황이라 토크쇼에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런닝맨’ 같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입지도 위태롭다. 출연진들에게 미션을 주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을 담아내며 한때 대표 예능의 위세를 누렸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무한도전’(MBC), ‘패밀리가 떴다’(SBS) 등이 모두 종영한 상황이다. 대신 대세가 된 예능 장르는 ‘미운 우리 새끼’(SBS), ‘전지적 참견시점’ ‘나혼자 산다’(이상 MBC), ‘삼시세끼’(tvN) 등 관찰 예능.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제 연예인이 방송 프로그램의 캐릭터로 기능하며 재미를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시청자들은 TV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평론가 역시 “연예인들과 이웃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커졌다”며 관찰 예능의 인기 이면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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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1.6%를 기록한 15일 '전국노래자랑'(KBS1). [방송캡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부진에는 10대, 20대 젊은 시청자들의 TV 이탈이 한몫한다. 같은 장수 프로그램이지만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이상 KBS1)는 시청률 10% 안팎을 지키며 건재하다. TV 시청층 고령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다. 심지어 프로그램 제목에 ‘시니어’를 명시한 ‘시니어토크쇼 황금연못’(KBS1)도 최근회인 14일 7.9% 시청률을 기록했다. 9주년 팬미팅 공연을 특별 방송으로 내보낸 15일 ‘런닝맨’ 시청률 6.3%보다 높은 수치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10대는 유튜브에서, 20∼30대는 넷플릭스에서 주로 콘텐트를 소비한다. 나이 든 시청자들을 겨냥한 TV 프로그램만 잘되는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청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섣부른 시도를 할 경우 이도 저도 안되고 실패할 우려가 도리어 크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고민도 크다. ‘런닝맨’ 정철민 PD는 “방송사들이 TV 주 시청층인 40대 이상이 좋아하는 프로그램만 많이 만들고 있다”면서 “중장년층의 시대가 자꾸 소환되면서 이들이 과거 열광했던 ‘옛날 스타’들의 출연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건모를 앞세웠던 관찰 예능 ‘미운 우리 새끼’나 허재ㆍ이만기ㆍ이봉주 등 옛 스포츠 영웅들이 출연하는 ‘뭉쳐야 찬다’(JTBC) 등이 그 사례다. 정 PD의 고민은 계속됐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신인이 설 무대가 없어진다. 버라이어티는 끝까지 존재해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신의 끼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 스타가 발굴되지 못하면 TV 예능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