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들이 쌀 사러 편집매장에 가는 이유

[비즈]by 중앙일보

이젠 지역보다 품종·효능·맛 따져 골라

'밥 소믈리에'에 '쌀 편집매장'도 등장

갓 도정한 쌀, 예쁘게 소량 포장해


자고로 “한국인은 밥심”이라 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쌀밥 한 공기에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씹을수록 찰기가 생기는 밥은 어떤 반찬을 가져다 놔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다. 밥 한 숟가락 떠서 잘 익은 김치 한 조각과 바삭하게 구운 김 한 장을 얹기만 하면 다른 산해진미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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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싸전 '쌀 편집매장' 등장


“부드럽고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시면 ‘영호진미’를 드시고요, 구수한 누룽지 향과 맛이 좋으면 ‘골든퀸3호’가 좋아요."


지난 10월 24일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에 있는 쌀 편집매장 ‘현대쌀집’을 찾았을 때 들은 직원의 설명이다. 이곳을 찾은 30대 주부 최미혜씨는 “마트에서 파는 일반 쌀보다 더 맛 좋은 쌀이 있다고 해서 왔다”며 “쌀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는데, 이것저것 조금씩 사서 먹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바쁜 생활 탓에 집밥을 먹을 기회가 점점 줄면서 쌀 소비량도 줄고 있지만, 그만큼 ‘제대로 된 한 끼’에 대한 욕구는 커졌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1~2년 사이 현대백화점의 현대쌀집 외에도 수원의 ‘동네정미소’, 온라인 쌀 편집숍 ‘도정공장’ 등 다양한 쌀을 소개하는 쌀 편집매장이 속속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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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농부와 직거래한 다양한 종류의 쌀을 판매하면서 쌀 품종과 효능, 맛있게 먹는 법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소비자가 취향에 맞는 쌀을 고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밥 소믈리에’라 불리는 쌀 감별사에게 컨설팅을 받고(현대쌀집), 판매하는 쌀로 밥을 지은 식당도 함께 운영한다(동네정미소). 무엇보다 다양한 품종의 쌀을 원하는 양만큼 소량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에게 인기가 높다.


쌀 포장은 작고 예쁘게


이들은 바로 도정한 쌀을 작게는 2~3인분에 맞춰 400g 내외로, 많게는 1~2kg 단위로 포장해 판다. 포장 또한 밀레니얼 세대의 구미에 맞게 예쁘고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 신경 쓴다. 이용인 도정공장 공동대표는 “최근 쌀 트렌드는 당일 도정, 진공포장, 소포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왕이면 예쁘게 만들고 싶어 패키지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패션기업 세정이 용인에 만든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동춘상회’는 첫 번째 프로젝트인 ‘잘 먹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용인 지역에서 생산하는 백옥쌀을 500g씩 포장한 쌀 브랜드 '백옥미'를 선보였다. 올해는 용인의 햇살농장과 함께 협업해 찰흑미·현미·찹쌀 등 5가지 잡곡을 혼합해 커피믹스 1개 크기의 스틱 형태(미미한봉)로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최근엔 매장에 도정기를 설치하고 참드림 쌀을 즉석에서 도정해 판매하는 행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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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장 쌀의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도정공장의 경우 올해에만 쌀을 20톤 가까이 팔았다. 신민욱 공동대표는 “온라인 특성상 주로 젊은 주부 고객들이 많은데, 주문량이 계속 늘고 있어 올해에는 지난해의 2배인 40톤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쌀도 잘 팔린다. 지난해 현대백화점에서 발표한 쌀 매출 신장률은 2017년 동기 대비 2.7%가 줄었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프리미엄 쌀의 매출 신장률은 18.1%로 늘었다.


지역 보다 품종


이제 이천·여주·철원 등 기존의 지역 명성만으론 부족하다. 최근엔 맛과 향, 크기, 씹는 맛 등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품종’을 따져 먹는 추세다. 일본 개량종인 고시히카리나 아키바라 외에도 국내에서 개발한 해들·신동진·영호진미·골든퀸 등과 올벼·해조·북흑조 같은 토종 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양한 품종의 쌀로 지은 밥을 지어 함께 먹는 이벤트 ‘밥업 스토어’에는 매번 100명 이상이 모일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이제 쌀도 커피처럼 취향 따라 먹는 시대가 됐다는 생각으로 한 번에 3가지 품종의 쌀로 밥을 지어 식사 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는 “한국인의 밥 취향은 찰기와 윤기, 단맛을 중시하는데, 요즘엔 취향이 더 세분화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엔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협업해 신품종 쌀 참드림·맛드림·가와지로 밥을 지어 선보였는데, 참가자들이 어느 한 가지 쌀로 몰리지 않고 세 가지 쌀을 고르게 선택하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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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품종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1960년대 농촌진흥청이 설립된 후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만 285종이다. 개량종이 아닌 토종 쌀 품종도 1450종에 달한다. 경기도 벽제에서 토종 벼 200여 종의 재배 실험을 하는 ‘우보농장’의 이근이 농부는 “모양·색·역사가 다른 것에 매력을 느껴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할 수록 우리 쌀의 멋과 맛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식당들도 쌀 선택에 신중해졌다. 롯데호텔 서울(소공동)의 한식당 ‘무궁화’는 2010년부터 경기도 평택에서 나는 슈퍼오닝 쌀을 사용한다.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리를 혼합해 만든 쌀 브랜드로, 선택 당시 여러 종의 쌀로 밥을 지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해 찰기·단맛·고소한 맛 등의 항목으로 나눠 평가하고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을 선택했다. 이곳의 오태현 조리장은 “슈퍼오닝은 밥의 윤기·찰기·탄력이 뛰어나 보기에도 좋고, 적당한 단맛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이 쌀로 밥을 지으면 간이 된 반찬과의 조화가 좋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한식주점 ‘락희옥’은 전라도에서 생산한 신동진 쌀로 밥을 짓는다. 3대째 쌀 유통업을 하는 서부농산에 주문해 바로 도정한 쌀을 받는데 이마저도 3~7일 이내에 손님에게 낸다. 김선희 락희옥 대표는 “전에는 골든퀸3호로 만든 백세미를 썼는데, 지금은 신동진이 기름지고 풍미가 좋아 이것을 쓰고 있다”며 “밥이 주요 메뉴는 아니지만, 밥맛이 좋지 않으면 손님이 뚝 끊길 정도로 밥맛이 중요해 쌀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강조했다.


맛있는 쌀 고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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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맛있는 쌀은 어떻게 고를까. 김도균 동네정미소 공동대표는 “커피랑 비교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맛있는 원두가 따로 있는 것처럼 쌀도 좋은 품종을 골라야 한다는 얘기다. 품종은 가급적 혼합된 것보다 단일 품종을 선택하는 게 실패할 확률이 낮다. 라이스앤컴퍼니 김 대표는 “배합을 잘한 쌀 브랜드도 있지만, 보통 혼합미는 식감이나 맛이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같은 품종의 쌀이라면 수확 시기가 빠르고 갓 도정한 게 가장 맛있다. 동네정미소 김 대표는 “10월부터는 올해 수확한 햅쌀이 나왔으니 그것을 선택하되 15일 이내에 도정한 쌀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추천했다.


갓 도정한 쌀은 밀폐된 용기에 넣어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좋다. 상온에 몇 개월씩 방치하면 맛이 변하고 변질될 위험이 있어서다. 김 대표는 이어 “도정 후 적어도 한 달 이내에 먹길 권한다. 쌀을 살 때 한 달 소비량을 계산해서 그 만큼씩만 구매해 먹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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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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