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닦고…전복 껍데기를 보석으로 바꾸는 '요술손'

[컬처]by 중앙일보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9)

통영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청정해역이 있는 곳으로 400년 역사의 나전칠기의 고장이자 섭패가공의 본 고장이다. 통영과 남해에서 나오는 전복은 외형에 굴곡이 없이 매끈하고 다양한 빛을 머금고 있어, 자개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하나의 자연의 작품이다. 나전칠기라 하면 대체로 옻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옻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거나 상감하여 무늬가 드러나게 한다. 이 때문에 나전에는 칠이라는 말을 붙여 ‘나전칠기’라고 불렀다. 나전과 칠기 두 가지의 기술력은 실과 바늘 같은 관계다. 이때 주목받는 장인은 ‘자개’로 무늬를 형상화하는데 이 기술을 가진 장인인 ‘나전장’과 이를 옻칠로 마감하는 ‘옻칠장’이 있다. 옻칠의 토대인 나무를 짜는 ‘소목장’도 있다. 나전장과 옻칠장은 물론 소목장은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돼 보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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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주목할 것이 있다. 나전칠기 작품 과정의 기초단계에는 나전에 쓰는 핵심 재료인 조개껍데기를 만드는 사람인 ‘섭패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나전칠기의 뿌리가 되는 전복이나 조개 등의 껍데기를 가공하는 ‘섭패’ 과정을 거쳐 만든자개를 만드는 섭패 장인의 공은 나전칠기의 화려함에 가려 제빛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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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패 가공은 보석가공과 비슷해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인 전복껍데기 수집에서부터 선별, 가공, 재단, 광택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 기술은 나전칠기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영에는 이 맥을 잇는 유일한 장인이 있지만,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못 받아 전승을 못 하고 있는 섭패장 이금동 장인(69)이 있다. 통영이 고향인 그에게 통영의 푸른 바다와 나전은 지난 50년 넘는 세월을 같이한 동반자다.


한국은 삼국시대에 이미 나전칠기를 제작했다. 그 유물로는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단화금수문경이 옛 가야지방에서 출토되었다. 나전을 풀이하면 ‘螺(소라 라)’, ‘鈿(비녀 전)’이다. 이 말은 중국에서부터 기원이 되어 한국, 일본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한자어로 한국에서는 예부터 ‘자개’라는 고유어를 써 왔다. 자개는 나전과 같은 말이며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박는다’라고 일컫는다. 우리 귀에 익숙한 자개소반, 자개장, 자개경대, 자개쟁반, 자개함 등 흔히 써온 말에 ‘자개’라는 말이 늘 있는 이유다.


오늘날 전해지는 나전칠기 중 좋은 자개와 옻칠로 만들어진 고려와 조선 시대의 유물로 인정받는 작품들은 대부분 전복껍데기를 사용했다. 한국의 나전칠기는 일반적으로 나무의 표면에 옻칠하고 그것에다 첨가하는 자개무늬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목공예에서 부수되는 장식적 성격을 띠고 있다. 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의 것이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고 한다.


한국의 나전칠기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패를 사용했으나 후대에는 청록빛깔을 띤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됐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통영의 나전칠기는 70~80년대만 해도 통영 인구의 30%가 나전칠기 관련 업종에 종사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통영, 고성 등에 섭패 가공 공장이 80여곳이 있었으나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저가의 많은 물량이 수입되면서 통영 섭패가 경쟁력에 밀렸다. 모두 문을 닫고 현재 통영에서는 유일하게 이 장인이 명맥을 유지해 왔다. 이 장인은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청각에 이상이 생겨 보청기에 의존한 채 하루 12시간씩 작업을 하고 있다.


섭패는 전복껍데기 수집에서부터 선별, 세척, 갈기, 절단 및 재단, 광택, 선별과정을 통틀어서 말한다. 특히 섭패의 절단과 재단, 광택 작업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공정이 그라인더를 통해 자르고 갈고 또 갈아내는 과정의 반복이다. 쌓아 놓은 전복, 소라, 조개껍데기의 넓은 부분만 남기고 잘라내고, 그다음 뒷면의 평평하지 않은 부분을 그라인더로 갈아 내면서 펴주는 작업을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물로 씻어가면 원하는 두께로 다시 한번 두께 조절을 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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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의 첫 번째 과정은 좋은 빛을 지닌 자개를 고르는 것이다. 나전칠기 기법에 따라 장식에 따라 사용하는 패도 다르다. 섭패장의 역할은 보석감정사 같은 것이다. 빛의 반사 각도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영롱한 빛깔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 나는 전복껍데기가 색이 곱고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전복껍데기에서 나온 건 통칭해서 색패라고 하고, 이 중 붉은색이 강하고 좋은 것은 홍패, 푸른 빛이 좋은 것은 청패라고 한다. 소라껍데기에서 나온 건 야광패, 진주조개에서 나온 건 진주패, 멕시코산 전복에서는 멕시코패 또는 뉴질랜드패 등이다. 이렇게 가공해서 바로 나온 조각 자개들을 ‘알자개’라고 한다. 자투리 자개 조각들을 모아서 목재의 합판처럼 눌러 붙여서 판자처럼 만들어 놓은 것을 ‘판자개’라 한다.


“전복껍데기를 수집해 3각으로 절단해 뒷면 갈고 앞면을 갈아요. 그리고 광택을 내는데 우리 같은 섭패장들이 있어야만 나전칠기 명장들이 맥을 이어갈 수 있어요.”


오직 한길 전복껍데기 가공에 있어서 달인인 이 장인은 오직 섭패가공만 50여년인데 아직 후계자가 없다. 2007년에 고성에 있는 다른 섭패장은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통영에서 이 장인은 홀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 중이다. 이 장인은 섭패 기술이 단절 위기에 처한 것이 섭패 가공품이 나전칠기 완제품의 단순한 재료로 평가절하되면서 체계적으로 전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힘든 직업이지만 전통을 지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인 만큼 제도적인 뒷받침과 행정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 장인은 섭패 가공은 나전칠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인데 비록 명성은 되찾지 못하더라도 장인정신과 그 기술만은 반드시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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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인은 17살부터 외삼촌의 권유로 부산에서 일하다가 1977년 고향 통영으로 다시 내려와 장인의 나이 스물일곱에 공방을 차렸다. 4명이 함께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결국 9년 만에 문을 닫는다. 아내와 함께 고성과 통영을 오가며 식당도 차려봤지만 실패했다. 결국 ‘자개 만드는 일이 천직’이라고 확신한 그는 아내를 설득해 다시 작업장을 열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잠시 호황이다가 1997년 IMF 사태 이후 국내산 저가 혹은 수입산 고가 가구가 들어오면서 주거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당시에도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나전칠기 제품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루 12시간 보름을 꼬박 매달리면 판자개 200여장을 만들 수 있다. 이것도 저가 수입산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것들이 싼값에 시장에서 풀리면서 단가가 떨어졌다. 그래도 섭패 덕분에 현재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두 자녀도 대학공부까지 마치고 출가시켰다. 다만, 중요한 섭패 기술이 이대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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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섭패 가공기술 없이는 명품 나전칠기는 없어요. 저는 전복껍데기 속 오색과 빛을 연구하며 나전칠기 작품을 빛내줄 섭패 가공기술을 이어가는데 한평생을 바쳤죠. 나전 칠기의 작품과 섭패 가공은 필수적인 관계이지만, 가공기술은 서로 독립적인 형태로 발전했어요. 제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닙니다. 섭패의 명맥을 끊기지 않게 정부의 지원으로 후계자를 양성해서 전통을 계승하고 싶어서죠.”


작은 배려와 관심 그리고 지원만 있다면 기술을 이어나갈 수 있다. 자연의 고갈보다 먼저 사장될 위기에 처한 장인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가 후대에도 이어지길 바란다.섭패기술의 사장을 아쉬워하는 장인의 목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그도 분명 통영의 진정한 장인이다.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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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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