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이거나 코믹하거나···배우 마동석의 '단발머리 파워'

[컬처]by 중앙일보

[강혜란의 사소한 발견] 헤어스타일도 배우 연기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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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리’ 마동석이 돌아왔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을 통해서다.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출한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그의 친구 상필(정해인)을 통해 출구 없는 청소년의 얼렁뚱땅 사회 입문 성장담을 담았다. 마동석은 택일이 의탁하는 장풍반점의 정체불명 주방장 ‘거석이 형’을 맡았다. 우락부락한 체구와 험상궂은 표정, 괴력의 주먹과 달리 물방울무늬 수면바지를 입은 채 걸그룹 ‘트와이스’의 댄스곡 ‘낙낙’(Knock knock) 안무를 따라하는 ‘귀요미’도 뽐낸다.


영화 시사회 당시 ‘사소한 발견’이 주목한 것은 어깨에 살짝 닿는 길이의 단발 스타일링. 택일 엄마 역으로 함께 출연한 염정아보다 더 길다. 원작 만화에서도 거석이 형은 더벅머리였지만 영화 속 마동석이 좀더 단정하게 찰랑대는 느낌이다. 만화 캐릭터가 숏컷 머리를 기르다 일명 ‘거지존’(어떤 스타일링을 해도 예쁜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 애매한 길이)에 도달한 느낌이라면 영화 속 거석이 형은 끄트머리 빗질까지 완벽한 게 어쩐지 가발 느낌이다. 알고보니 실제 촬영 때도 가발을 썼다.


“거석이 형이 정체를 숨기고 장풍반점에 있다는 설정이라, 긴 머리는 관리를 안 해서 자란 것일 수도 있고 가발일 수도 있죠. 그 부분은 관객 상상에 맡겼어요. 다만 마동석 배우가 해외 촬영(마블 시리즈 ‘이터널스’ 등)이 있어서 실제 머리를 기를 여유가 없어서 이번 촬영 땐 맞춤가발을 활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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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동’에서 헤어스타일링을 담당한 문선영 분장실장의 말이다. 실제 머리카락은 두피에 바짝 밀착시키고 마동석 두상에 꼭 맞게 제작한 ‘하나뿐인 가발’을 씌웠다고 한다. 영화 후반부엔 숨겨온 정체를 드러내며 평소 짧은 머리를 보이는데 ‘범죄도시’(2017) ‘나쁜 녀석들’(2019) 등으로 익숙한 ‘형님’ 포스다. 앞서 헤어밴드까지 곁들였던 단발머리와 비교되며 캐릭터의 대조를 제대로 살렸다.


올 상반기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깐죽대는 막싸움 건달 장룡을 연기한 음문석도 귀밑에서 찰랑대는 앞가르마 단발을 선보였다. 조폭 출신으로 구성된 대범무역의 넘버쓰리 격인 장룡의 영어식 이름 ‘롱드(롱드래곤)’와도 잘 어울리는 헤어였다. 캐스팅 단계에서 이명우 연출이 “건달이고 단발머리, 외국인을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캐릭터를 제시하자 음문석이 “머리에서 김이 나는 느낌으로” 동대문시장을 뒤져 가발부터 사서 ‘OK'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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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유명한 남자 단발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에서 살인마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첫손에 꼽힌다. 스페인 럭비 국가대표팀 출신의 건장한 육체에서 풍기는 강력한 테스토스테론과 달리 소박한 둥근 머리가 불안감을 더했다. 무고한 가게 주인 앞에서 동전 던지기로 살인 여부를 결정하는 능청스러움이 섬뜩하기 이를 데 없다. 바르뎀이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탔을 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메소드 헤어(method hair)가 오스카를 탔다”고 표현한 이유다. 배우가 극중 배역에 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메소드 연기’를 빗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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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헤어스타일을 제안한 캐나다 헤어디자이너 폴 르블랑은 “십자군 시대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면서 “하비에르의 첫 인상이 시대를 초월해 위험한 인물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밝혔다. 르블랑은 영화 ‘스타워즈’ ‘카지노’ 등도 담당했으며 ‘아마데우스’로 딕 스미스와 함께 1985년 아카데미 분장싱을 수상한 바 있다.


최근 국내서만 524만 관객을 빨아들인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에선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악당 조커의 부스스한 펌 단발이 애처로움과 불길함을 동시에 불렀다. 한국 영화로는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출소한 금자(이영애)에게 하얀 두부접시를 권하는 전도사(김병옥)의 우스꽝스러운 단발이 비현실적으로 기괴한 분위기와 맞물려 오래도록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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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출소한 금자(이영애)에게 두부를 권하는 전도사(김병옥). 기괴한 단발머리로 눈길을 끌었다.

이렇듯 남자의 단발은 영화‧드라마에서 종종 엽기적이거나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치다. 국내 방송인 중에선 김경진이나 정만호처럼 ‘코미디’가 주특기인 사람들이 즐겨 하는 편이다. 최양락은 아예 ‘최양락 단발’이 연관어로 뜰 정도다.


일상에선 획일화된 ‘양복맨’을 벗어난 자유와 개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비틀스의 존 레넌도 데뷔 땐 보브 스타일의 머쉬룸 커트(버섯머리)였지만 점점 히피스러운 긴 머리로 변해갔다. 서태지도 록 음악을 추구하면서 앞가르마 단발을 선보였다. 아무래도 이땐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많이 작용한다. 삭발을 해도 남다른 원빈이 비공개 야외 결혼식을 했을 때 선보인 단발머리가 그렇다. 만화 속 테리우스는 물론, 별명이 테리우스였던 축구선수 안정환이나 일본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 등 ‘꽃미남’의 단발은 남성성을 중성화시키는 ‘여심 자극 포인트’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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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간호섭 교수(홍익대)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조직화, 획일화된 노동에 맞게 남자의 머리도 짧아졌다”고 말했다. 조폭의 ‘깍두기 머리’의 대척점에 히피의 장발이 있게 된다. 오늘날 ‘단발 패션’이 때론 개성으로, 때론 메소드 연기의 수단이 되는 건 이같은 탈일상성 때문이다.


영화 ‘시동’의 거석이 형처럼 신분 위장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 한 전직 청와대 대변인은 해외 출장 중 인턴 성희롱 추문으로 인해 하차하고 은신하던 중 몰라보리만치 찰랑대는 단발로 포착된 바 있다. 정치권에 복귀한 지금은 본래의 짧은 머리로 돌아갔다. 엽기, 코믹, 그럴 듯한 연기 중에 어떤 것일까.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 사소한 발견(사발)


문화 콘텐츠에서 사소한 발견을 통해 흥미로운 유래와 역사, 관련 정보를 캐고 담는 '사발'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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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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