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 해드리려 모은 825만원, 그돈 훔쳐 별풍선 쏜 20대

[이슈]by 중앙일보

30대, 본인 차량서 돈다발 도둑맞아

일하며 모은 아버지 임플란트 수술비

절도범은 20대…다른 사건으로 구속

피해자 "차라리 생계 때문이었다면…"

치과 의사는 '무료 임플란트' 제안

"그 마음만으로 힐링" 정중히 거부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엄청 힘들게 모은 돈인데 (절도범은) 훔친 돈으로 별풍선을 쐈다고 하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30대 회사원이 70대 아버지의 임플란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간 푼푼이 모은 현금 800여만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경찰이 절도범을 잡고 보니 20대 청년이었다. 그사이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였다. 훔친 돈은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이른바 '별풍선'을 쏘는 데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전주에 사는 A씨(30)가 겪은 안타까운 사건이다. A씨는 2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차라리 생계 때문에 돈을 훔쳤다고 하면 덜 속상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열심히 모은 돈이었다. 1000만원을 모아서 아버지께 드리려고 했는데 목표액을 거의 다 채우기 직전에 도둑맞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1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이날 오전 3시쯤 전주시 금암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에 보관 중이던 현금 825만원을 도난당했다. 이 돈은 A씨가 아버지 몰래 5년간 모은 돈으로 확인됐다. 이가 부실해 음식 먹을 때마다 불편해하는 아버지의 임플란트 수술비였다. A씨는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모아서 자동차 수납공간 안에 숨겨 놨는데 그것을 빼서 가져갔다"고 했다.


A씨는 "직장 생활을 한 지는 5년이 채 안 됐다"며 "취업 전 과외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모은 돈이어서 (없어진 현금은) 모두 5만원권 지폐였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문을 잠근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문이 안 잠겼었다. (절도범이) 문이 열린 것을 알고 차에 와서 가져간 것 같다. 내 부주의도 있다"고 자책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전주 덕진경찰서는 A씨 차량에 대한 지문 감식과 주차장 주변 폐쇄회로TV(CCTV) 분석 등을 토대로 B씨(26)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덕진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 신원은 특정했는데 타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며 "교도소에 찾아가니 피의자(B씨)는 차량 내 금품 절취 사실을 자백했다"고 말했다. B씨는 경기도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훔친 돈은 별풍선을 구입하는 등 모두 써버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별풍선은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진행자(BJ)에게 선물로 주는 유료 아이템을 말한다.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으며, 1개에 110원 정도다. B씨가 처음부터 별풍선을 살 목적으로 돈을 훔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A씨는 "제겐 굉장히 의미 있는 돈인데 피의자(B씨)는 하루 재미있게 돈을 쓰면 된다는 마음으로 범행한 것 같다"며 "현재로썬 피해 복구도 전혀 안 돼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경찰은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B씨를 기소 의견으로 지난달 하순께 검찰에 넘겼다.


2남3녀 중 넷째인 A씨는 "가족 분위기는 화목하다"며 "예전에도 아버지 치아가 안 좋아 임플란트 수술비를 보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번 사건을 잘 모르신다. 효도하려다가 외려 이 일을 아시면 충격받으실 것 같아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렸다"고 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 사연이 알려지자 그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치과 의사는 A씨에게 연락해 "아버지의 임플란트 수술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돈을 주겠다"고 나선 독지가들도 여러 명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아버지를 위해 모은 돈을 도난당한) 그 마음이 안타깝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느껴진다"며 A씨를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A씨는 "고맙지만,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 일로 인해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돈을 받자고 알린 것도 아니다"고 했다. 다만 A씨는 "요즘 (사회 분위기가) 너무 팍팍한데 절 도와주신다는 분들이 계셔서 그 마음만으로 저는 많이 힐링(치유)이 됐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