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신랑을 죽인 신부, 오페라'루치아' 광란의 아리아

[컬처]by 중앙일보

유명한 영화의 대사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허나, 세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우리에게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로 남는 것은 사랑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차라리 가문의 뜻대로 두 연인의 사랑이 움직였다면, 그들은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들의 관심 따위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1835년에 초연된 도니체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바로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한 연인이, 가족의 부질없는 세속적 욕망으로 인해 희생당하고도 위로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랍니다.


벨칸토 오페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도니체티는, 원수 집안끼리 금지된 사랑을 하는 두 남녀 루치아, 에드가르도와 세속적인 가문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혼인을 강요하는 오빠 엔리코간의 갈등을 다룹니다. 결국 사랑하는 연인 모두가 죽음을 맞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켰지요. 그의 미친 듯 찬란하고 다소 몽환적인 음악덕분에, 두 남녀는 지상에서 못다한 사랑을 하늘에서라도 꿈처럼 이루었을 것만 같네요.


차분하고 고요하며 다소 비장한 전주곡이 흐르면서 막이 열리면, 엔리코는 루치아가 권세가 영주인 아르투로와의 결혼을 거부하고 있어서 고민입니다. 그녀가 지금 원수 집안인 에드가르도와 사랑에 빠져서 그렇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어두운 정원에서 루치아가 시녀와 함께 에드가르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시녀에게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다는 섬뜩한 꿈 이야기를 합니다. 꿈 이야기에 놀란 시녀는 불길한 징조이니 에드가르도와의 사랑을 멈추라고 말린답니다. 허나 루치아는 오히려 “그는 내 삶의 빛이요 기쁨”이라며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환희를 노래하지요. 이렇게 뜨거운 사랑이 오빠에 의해서 내팽개쳐지게 될 때, 그녀가 제정신이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에드가르도가 나타나 국왕의 명으로 잠시 프랑스에 가야 하며 그전에 엔리코를 만나 그녀와의 결혼 승낙을 받고 싶다고 하지만, 루치아는 아직 때가 이르다며 만류합니다. 사실 에드가르도 집안은 엔리코에 의해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가문이 망하다시피 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적대감을 누르고 있는 중이거든요.


에드가르도는 루치아에게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그 징표로 반지를 끼워줍니다.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지요.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2중창 ‘나의 한숨을 바람에 실어’를 부르는데, 시적이며 로맨틱한 노래랍니다. 은은히 불어오는 바람이 내 마음을 전할 것이니 멀리 떠나도 공허한 삶에 희망이 될 편지를 자주 달라며 루치아는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차라리 이때 두 사람이 못 이룰 그 사랑을 품은 채, 같이 도망이라도 갔더라면 어땠을까요?



프랑스에 간 에드가르도가 보내온 모든 편지를 엔리코가 변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고 말이지요. 이미 아르투로와의 결혼식을 준비한 엔리코는 루치아에게 결혼을 강제하지만, 그녀는 이미 에드가르도와 결혼했다며 버티고 있답니다.


결국 엔리코는 루치아에게 변조된 편지를 보여주며 헛된 사랑을 멈추라 하고, 사랑이 변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 차라리 죽겠다고 합니다. 여전히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그녀에게 감정이 격해진 엔리코는 아르투로의 도움이 없다면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 협박합니다. 오로지 가문만을 생각하며 몰아붙이는 엔리코, 그런 오라버니에게 루치아의 호소는 끝내 외면당하고 맙니다. 결국 그녀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립니다. 체념한 채 혼인서약서에 서명하지요. 아~ 우리의 가여운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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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프랑스에서 에드가르도가 돌아왔습니다. 혼인서약서의 서명을 본 그가 루치아에게 스스로 서명한 것이 맞는지를 묻고, 그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알게 된 그녀는 당황하지요. 혼돈에 빠진 그녀가 서명을 인정하자 그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줬던 반지를 빼앗으며, 하늘의 약속과 사랑을 저버린 그녀를 저주하지요. 루치아는 이 모든 충격을 가눌 길이 없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신방으로 간 뒤 신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루치아가 신랑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였답니다. 모두가 충격에 말을 잃고 있는데, 루치아가 하얀 드레스에 피를 묻히고 들어오며 ‘실성(광란)의 아리아’를 부릅니다. 그녀는 마치 에드가르도와 대화하듯 플룻과 2중주를 주고 받다가 쓰러집니다. 관객마저 환청에 빠지게 하는 듯 아련한 장면이랍니다. 관객은 소프라노의 성악 기교를 즐기거나, 슬픈 사연에 눈물을 닦거나, 한없이 아름다운 악기의 선율을 따라가거나, 마냥 무한 감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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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가 실성하여 쓰러진 만큼, 더 이상의 비극이 있을까요? 허나, 우리는 긴장을 멈출 수 없답니다.


에드가르도는 조상의 무덤 앞에서 루치아 없는 세상을 한탄합니다. 자신이 묻힐 이 무덤 근처를, 어느 훗날에라도 무정한 그녀가 남편과는 지나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때 장례행렬이 지나가며 루치아가 비참한 결혼으로 죽어가면서도 에드가르도를 찾더라는 말을 전해주자, 그는 애통한 마음으로 아리아 ‘날개를 펴고 하늘로 간 그대여’를 부릅니다. 지상에서 못다한 사랑을 하늘에서 이루리라며 결국 단도로 자신을 찌르지요.


루치아와 에드가르도 모두 죽는 것도 안타깝지만, 서로 오해를 풀지도 위로 받지도 못한 채 따로이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간다는 사실이 더욱 슬프게 느껴집니다. 그나마 ‘실성의 아리아’에서 플룻 연주로 마치 에드가르도와 대화하는 듯이 주고 받던 루치아의 아름다운 선율로 위안을 삼아야겠군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2022.08.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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