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와 처제 '금지된 사랑'···사실혼 땐 유족연금 받을수 있나

[비즈]by 중앙일보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9)

〈사례 1〉


A씨는 아내와 1969년 결혼해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그런데 A씨는 아내의 여동생인 처제 B씨와 사랑에 빠져 1982년경 아들까지 낳았다. A씨는 1987년 아내와 이혼하고 B씨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2년을 못 넘기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15년 뒤 A씨와 B씨는 다시 만나 동거하면서 14년가량 사실혼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A씨의 술주정과 재산 문제로 싸움이 잦아지다가 결국 A씨가 집을 나감으로써 별거하게 되었다. 이후 B씨는 A를 상대로 사실혼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A씨는 B씨에 대해 재산분할청구소송을 냈다.


〈사례 2〉


국립대학 교수인 C씨는 1969년 아내와 결혼해 그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그런데 C씨의 아내가 1994년경 사망하자, 그 아내의 여동생이자 당시 미혼이던 D씨는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C씨의 집에 드나들었다. 조카들이 모두 출가한 1997년경부터 C씨와 D씨는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했다. C씨와 D씨는 부부동반 모임이나 여행에 함께 나가고 가족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는 등 부부로서 생활했고, C씨의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로부터도 부부로 인정받았다. C씨는 2005년경 교수직을 퇴직하고 퇴직연금을 지급받고 있다가 2011년경 사망했다. D씨는 자신이 공무원연금법상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배우자라고 주장하면서 유족연금을 신청했다. 공단으로부터 C씨와 D씨는 사실혼 관계도 없고 혼인이 금지된 인척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그에 반발해 행정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례와 같이 이른바 근친혼(近親婚)으로서 혼인이 금지되어 있던 형부와 처제 사이의 사실혼 관계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이들의 관계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법률혼(혼인신고까지 마쳐서 법률적으로 완전히 보호받는 혼인관계)에 준하는 보호를 받는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 나아가 형부와 처제 사이의 사실혼이 우리 혼인 법질서나 건전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하지 않는 것으로서 법률상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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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事實婚)은 남녀가 사실상 부부로서 실질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단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관계를 말한다. 법원은 ① 주관적으로 둘 사이에 혼인하겠다는 생각이 합치되어야 하고, ② 객관적으로 사회통념상 부부공동생활로 볼 만한 실체가 있어야만 사실혼으로 인정한다. 사실혼 관계가 인정되면 사실혼 부부 사이에도 법률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정당한 이유 없이 한쪽이 이러한 의무를 저버리면 사실혼 파기의 원인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재산적, 정신적 손해를 상대방에게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두 사례 모두 15년 가까이 부부 공동생활을 했다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 성립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면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관계 또는 사실혼 관계의 효력은 어떨까?


형부와 처제의 결혼은 현행 민법상 금지된다. 그러나 혼인이 금지된다고 해서 그에 위반해서 한 혼인이 다 무효(처음부터 효력이 전혀 없는 것)로 되는 것은 아니다. 즉,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관계가 무효가 되려면, 그 결혼이 법률상 단순히 금지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혼인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돼야 한다.


민법이 시행된 1960년 이전 우리의 전통적인 관습법에 의하면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은 유효한 것으로 보았다. 민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을 무효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렸지만, 이들 관계의 혼인이 명확하게 무효라고 규정된 것은 1990년부터다. 그러나 2005년에는 다시 민법이 개정되어,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관계가 당연히 무효인 것은 아니고, 나중에 취소할 수 있는 사유(취소하기 전까지는 유효하고, 취소되어도 취소의 효력은 소급하지 않고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가 됐다. 또 개정된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시작된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관계라고 하더라도 개정된 법에 따라 취소하기 전에는 유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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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례 모두 사실혼이 시작된 당시의 민법에 의하면 애초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무효 사유에 해당했다. 하지만 재판을 받게 된 시점에서는 취소 사유가 됐으므로 각각의 사실혼 관계는 취소되기 전까지는 유효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서로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무를 부담할 뿐 아니라 법률혼에 준하는 각종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법원은 두 사례 모두 근친자 사이의 혼인이 금지된 역사적·사회적 배경, 사실혼 관계가 형성된 경위, 당사자의 가족과 친인척을 포함한 주변 사회의 수용 여부, 공동생활의 기간, 자녀의 유무, 부부생활의 안정성과 신뢰성 등에 비춰 이들의 사실혼 관계가 윤리적으로나 공익적으로 혼인법 질서에 본질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결국 A씨와 B씨의 사실혼은 법률혼에 준하여 보호받을 수는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한 재산분할 청구는 받아들여졌고, 다만 B씨가 A씨를 상대로 낸 사실혼 부당파기로 인한 위자료 청구는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한편 D씨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형부와 처제 사이의 혼인을 금지해야 할 공익적 요청보다는 유족의 생활 안정과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 공무원연금법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정돼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 끝에 D씨는 유족연금을 받게 됐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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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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