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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고양이에게 생선을?’…
이통사의 수상한 ‘셀프 단속’의 이면

byKBS

KBS

"너무 억울합니다. 13년 정도 일해왔는데, 오늘부로 폐업 신청하고 왔습니다."

KBS는 지난 15일 이동통신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상한 '셀프 단속'을 보도했습니다. 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판매점주가 취재진에 한 말입니다. 이 판매점주는 불법 보조금 단속에 20번 넘게 걸렸다는데요. 무엇이 그를 그토록 억울하게 만들었을까요? 그의 억울함을 이해하기 위해선, 폐쇄적인 이동통신시장 구조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거미줄 같이 엮여있는 '그들만의 정글' 이동통신시장

이동통신시장은 이통사 아래에 대리점, 그 아래에 판매점이 있는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이통사는 대리점에 각종 지원금과 장려금을 얼마만큼 내릴지 결정하고, 대리점은 각 판매점에 지원금과 장려금을 내립니다. 지원금·장려금 정책은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지금처럼 5G 단말기 개통을 둘러싸고 이통사끼리 경쟁이 불붙은 경우에는 이 정책이 더 과감해지겠죠.

KBS

이런 정책들은 메일이나 전화 통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은밀하게' 전달됩니다.

"실적이 뛰어난 곳은 추가로 장려금을 더 받죠. 잘 팔면 팔수록 장려금 더 받아서, 더 좋은 조건으로 고객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요."

"안 들키게, 다 뉘앙스로 전달을 하는 거죠. 장려금 더 주는 건 불법 보조금을 사용해서라도 (개통)수량 맞춰오라는 거죠."

결국, 이통사의 장려금이 각 대리점·판매점마다 차별적으로 주어지고, 이런 구조 아래서 어쩔 수 없이 장려금을 공공연하게 불법 보조금으로 사용합니다. 불법 보조금을 사용해야 영업이 잘되고 영업이 잘 돼야 장려금을 더 받을 수 있는 악순환입니다.


영업을 잘하는 판매점은 단말기 공급에서도 혜택을 받는다고 합니다. 물량이 부족할 때, 평소에 '윗선'에 잘 보인 판매점이나 대리점이 단말 기계를 빨리 타갈 수 있다는 거죠.


또 판매점이 실적에 따라서 받아야 하는 '수수료' 지급을 이통사와 대리점이 좌지우지하다 보니, 판매점은 '을(乙)'보다도 못한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허위 증거 만들 수밖에"…판매점주의 고백

KBS 취재 결과, 이통사들은 '시장 자율 정화'를 명분으로 매주 10건씩 단통법을 어긴 사례와 그 증거를 수집해왔습니다. 30건의 리스트는 KAIT(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취합해왔고요. 대리점들은 판매점들에게 불법 사례 보고를 지시합니다. 판매점들은 관리 감독 권한을 가진 대리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KBS

"친한 판매점주 있으면 (할당 건을) 주는 거죠. 채증 티오(증거수집 정원) 몇 개 하실 생각 있냐고."

내부 단속에 걸리면, 이통사 내부적으로 벌금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이 벌금, 원래 주기로 되어 있는 수수료나 정산금에서 차감해 환수하는 방식으로 벌금을 징수합니다. 그러다 보니 단속에 걸린 판매점에게 벌금을 깎아줄 테니, 다른 판매점의 불법 사례를 잡아오라는 '스파이' 행위를 하라는 지시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채증 하나 잡아 오면 면제해주겠다. 3사에서 돌고 도는 거죠. 판매점끼리만 죽어나고."

"왜 계속 악순환이냐면, 한 건 걸리면 300만 원을 환수하는데. 잡아오면 150만 원씩 감해줘요. 결론적으로 2건을 잡아와야 하는 거죠. 이러다 보니 불법 행위를 매번 잡기 어려우니 허위 채증이 늘어날 수밖에 없죠."

허위 채증을 상사로부터 지시받은 대리점 직원도 있었습니다. 우선 손님인 것처럼 판매점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합니다. 그다음에 해당 판매점이 운영하는 SNS 페이지와 똑같은 페이지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꾸며낸 SNS에 법에 어긋나는 액수의 보조금을 준다는 글을 허위로 올려, 그 화면을 증거로 제출한 거죠.

방통위-KAIT-이동통신사,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단속 결과

"허위 채증을 너무 당하니 덫을 둔 거죠. 일부러 직원에게 손님과 주고받은 현금을 CCTV에 잘 찍히게 세라는 교육까지 했습니다."

허위로 증거를 꾸며내도 사실 확인과 소명 절차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속출한다고 말합니다. 연이은 허위 채증 피해로 벌금만 6천만 원이라는 한 판매점주는 허위 채증에 대비해 CCTV까지 설치했습니다. 정해진 금액만 주고받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따졌죠. 씨알도 안 먹히죠. 그냥 본사 차원에서는 귀찮은 거죠. 전국적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데, 소명 자료 올려도 제대로 확인 안 해주고."

KBS

애초에 불법 행위를 사실상 유도한 이통사가 단속의 주체라는 점이 불합리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사정을 뻔히 알지만, 이동통신 시장 관리를 담당하는 방통위와 KAIT 모두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이통사 관계자는 '셀프 단속'을 자율적으로 하는 건 맞지만, KAIT와 방통위까지 내용이 공유된다고 답했습니다. 이통사들의 단속 결과를 KAIT가 정리해 방통위에 시장동향 정보로 보고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KAIT 관계자는 KAIT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통사가 제출한 사례를 단순히 취합하고 이통사들이 모여서 리스트를 검증할 수 있는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방통위 관계자는 이통사와 KAIT가 자율 시장 단속을 한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허위 채증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이통사의 자율적인 활동이라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미묘하게 각 주체의 말이 어긋나는 상황. 모두가 책임을 미루는 사이, 이동통신 시장만 곪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단통법'…"모두가 싸게 사자"는 취지는 어디 갔나?

"도대체 단통법 하는 이유가 뭔가요? 모두 비싸게 사라는 건가?"

휴대전화 불법 보조금 관련 기사에 심심치 않게 달리는 댓글이죠.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제시하는 겁니다.


단통법은 애초에 같은 휴대전화를 누군가는 싸게 사고, 누군가는 비싸게 사서 이른바 '호갱'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보조금은 시장에 뿌려지고 있고 누군가는 호갱이 되고 있으니, 법이 왜 있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거죠. 근본적으로 '소비자가 보조금 받아서 싸게 사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의문도 나옵니다.


앞서 보셨듯, 이통사에서 장려금을 내리면 대리점과 판매점은 휴대전화를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장려금을 보조금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법 보조금'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유통구조 하단에 있는 판매점, 대리점을 단속해서는 소용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애초에 장려금 정책을 내리는 이통사를 단속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거죠.


그러나 이통사에 대한 단속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이통사들이 '시장 자율 정화'라는 명목으로 대리점과 판매점의 불법 행위를 자체적으로 단속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이동통신 시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방통위 단속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 10명이 전국을 단속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단통법은 시장 경제 질서에 역행하고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그럼 단통법이 폐지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5년 전 단통법까지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동통신시장의 혼탁한 상황을 돌아본다면 이 또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공민경 기자 (ball@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