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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미안합니다” 살인 누명자에게 39년 만에 사과한 베트남 검찰

by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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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 응옥 친 씨(사진 출처 : VNEXPRESS)

"밥을 안 먹어도 배불러요. 이제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네요. 전 더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베트남 북부 빈푹 마을에서 태어난 쩐 응옥 친 씨는 올해 78살입니다. 친 씨는 살인죄 누명을 씻어낼 때까지 39년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어제(9일) 빈푹 동틴 인민위원회에는 1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빈푹 검찰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썼던 친 씨와 콩 반 데 씨, 그리고 숨진 쩐 쭝 탐 씨의 가족에게 공개 사과를 전했습니다. 이들은 39년 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돼 옥살이를 했습니다. 빈푹 인민위원회 응오 푹 투엔 부위원장은 "당시 수사당국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평범한 농부였던 친 씨가 자신이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 날을 잊지 못한다고 전하며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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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전 살인 누명을 쓴 3명. 왼쪽부터 숨진 쩐 쭝 탐, 78살 쩐 응옥 친, 98살 응웬 딘 키 씨. (원본 사진 출처 : 베트남 법률신문)

고문 못 견디고 허위 자백…. 39년 동안 벗지 못한 살인누명

1980년, 경찰은 37살 친 씨를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했습니다. 친 씨는 자백을 강요하는 경찰의 고문을 견디지 못했다고 털어놓습니다. 2년 뒤, 진범이 잡히고 나서야 친 씨는 석방됩니다. 하지만 수사 당국은 사과나 배상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습니다.


1980년 1월, 마을의 당 대표였던 추 반 꽌이 숨지면서 사건은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살인 사건 소식에 친 씨는 마을 사람들 여럿과 함께 범죄 현장에 가봅니다.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한 달여 뒤, 친 씨를 포함한 4명이 용의자로 체포됐습니다. 1980년 4월, 친 씨와 응웬 딘 키 씨 등은 살인 혐의로 기소됩니다. 용의 선상에 올라 친 씨와 함께 수감됐던 쩐 쭝 탐 씨는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친 씨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친 씨는 동생의 주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친 씨는 8개월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심문을 받고,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빛이 거의 차단되고 숨 쉴 구멍만 뚫려있는 작은 독방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심문을 받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발이 묶였고, 수없이 구타를 당했습니다.


정확히 얼마간 고문을 당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신체적, 심리적으로 괴로웠던 친 씨는 하지 않은 일을 결국 자백하고 맙니다. 1981년 5월, 경찰은 현장 검증을 위해 친 씨를 사건 현장에 데려갑니다. 무고했던 친 씨는 범행을 재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사건에 대해 더는 캐묻지도, 친 씨를 고문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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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베트남 청년신문

2년 수감생활 중 진범 잡히자 석방... 사과 책임 회피한 검찰

친 씨가 허위자백한 것을 눈치챈 다른 수감자들은 부당하게 누명을 쓰지 말라며 친 씨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자포자기한 마음이었던 친 씨는 가슴팍에 "나는 삶을 원망한다"라는 글귀를 새겼습니다.


1982년 10월, 빈푹 검찰청은 친 씨를 석방시킵니다. 당시 살인 용의자로 친 씨와 함께 붙잡혔던 마을 사람 3명 가운데 경찰관인 응웬 딘 키 씨가 진범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에 가입하고자 했던 키 씨는 고위 당국자에게 이를 부탁했지만, 마을의 당 대표였던 꽌 씨가 키 씨의 지역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아채고 반대합니다. 키 씨와 꽌 대표의 갈등은 살인사건으로 이어졌고, 키 씨를 두둔하려는 여성이 무고한 다른 3명을 조사해야 한다는 투서를 경찰에 보냈던 전말이 드러납니다. 키 씨는 이듬해 6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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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베트남 청년신문

살인 누명 때문에 달라진 삶 "평생을 심리적 고문 속에서 살아왔어요."

수사 당국은 친 씨가 결백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사과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수년 동안 놀림과 차별을 당한 친 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고향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친 씨는 평범했던 자신의 삶이 누명을 쓴 뒤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참을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친 씨는 힘들어하는 가족과 숨진 남동생을 위해서라도 다시 싸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친 씨의 조카이자 숨진 남동생의 아들인 쩐 반 만 씨는 당시 아버지가 체포된 후 2개월 뒤 "쩐 쭝 땀 씨가 감옥에서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소식을 듣고 곧바로 감옥을 찾아간 가족들에게 경찰은 "가족들이 늦게 와서 이미 그를 묻었다."고 전합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던 만 씨는 진범이 잡힌 후에도 아버지가 무죄였다는 공식적인 발언을 피하는 수사 당국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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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베트남통신사

빈푹 변호사협회, 고등기관에 사건 알리고 법무부에 서한 전달

친 씨와 조카 만 씨는 수사 당국에 사과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수차례 보내왔습니다. 아무런 답도 없던 와중에 빈푹 변호사 협회 소속 응웬 반 훙 씨에게 이 가족의 사연이 전해집니다.


"수사가 종결된 지 37년이 지나고도 수사 당국은 공식적인 설명이나 아무런 사과가 없었죠. 친 씨의 가족들은 깊은 불행에 빠져있었습니다." 훙 변호사는 과거 사건 기록을 고등기관에 전달하고, 베트남 법무부 기관지인 에 억울한 사연이 보도될 수 있도록 친 씨 가족을 도왔습니다. 베트남 변호사 협회는 베트남 최고 인민 법원에 무고하게 누명을 쓴 희생자들에 대한 정의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결국, 살인사건 후 39년이 지난 어제, 빈푹 검찰청은 살인 누명을 썼던 3명 모두에게 공개 사과를 건넸습니다. "사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듣고는 행복해서 울었습니다. 드디어 고통이 끝난 거죠. 이제야 편안한 맘으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친 씨와 함께 풀려났던 98살 콩 반 데 씨는 안도를 전했습니다. 빈푹 인민위원회는 당시 수사 담당자를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수사 당국의 뒤늦은 사과를 받아들인 노인들에게 인민위원회에 모인 마을 주민들은 격려와 기쁨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송금한 기자 (email@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