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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초등생도 내가…” 귀를 의심케한 이춘재의 잔혹함

byKBS

1989년 화성 초등생 실종도 이춘재 소행

이 씨 자백 전까지 행방도 알지 못해

이 씨, 초등생부터 70대까지 나이 가리지 않아

KBS

"1989년 7월 화성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실종 사건…(중략)…수사본부에서는 14건에 대한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이 높고, 당시 현장 상황과도 상당히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제(15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있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정례 브리핑.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나왔다. 30년 전 화성에서 실종된 초등학생을 이춘재가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화성연쇄살인 유력 용의자가 이춘재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부터 그에게 여죄가 있으리란 건 범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실제 이 씨는 살인사건 14건을 자백했다. 범인이 잡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까지 포함해 화성 사건 10건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는 자백이었다.


관심은 나머지 4건에 쏠렸는데, 초등생이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에는 여중생이 가장 어린 피해자였는데, 그보다 어린 초등생에게도 마수를 뻗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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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학년생, 하굣길에 실종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1989년 7월 벌어졌다. 1989년 7월 18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화성시의 한 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 모 양은 7월 7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실종됐다.


기사에 나온 김 양 아버지 진술에 따르면 김 양은 실종된 날 오후 1시 10분쯤 집에서 600m 정도 떨어진 마을 입구까지 친구와 함께 오다 헤어진 뒤 집에 오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3시 30분쯤 집에서 2km 떨어진 농협 앞 건널목에서 40대 후반 남성에게 끌려 길을 건너는 걸 학생들이 목격했다고 한다.


1990년 11월 18일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면 김 양의 옷과 책가방은 실종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태안읍 병점5리의 야산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화성 9차 사건(1990년 11월 15일) 피해자 14살 김 모 양이 발견된 곳과 불과 30여m 떨어진 곳이다.


초등생의 소지품이 발견된 곳에서 11개월 후에 여중생이 발견되면서 초등생 실종과 화성연쇄살인의 연관성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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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주변 수사까지 했지만…

당시 경찰도 화성 사건과의 연관성을 조사했고, 이춘재도 일부 조사에 포함됐다. 이 씨는 화성 사건으로 3차례 경찰의 조사 대상이 된 기록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30년 전 이 씨 주변 수사를 했는데, 용의점이 없어서 대면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춘재는 초등생 실종 2개월 만인 1989년 9월 수원에서 벌인 강도예비 범죄로 구속돼 수감 중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 실종으로 처리됐고, 이 씨가 자백하기 전까지 김 양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춘재는 30년 만에 범행을 털어놓으면서 범행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는 등 자세한 진술을 했다. 김 양을 살해하고 유기한 장소도 진술했는데, 이곳은 현재 도시 개발로 모습이 크게 달라져서 경찰이 정확한 지점을 확인하고 있다.


이 씨는 이 밖에도 1988년 1월 4일 수원 화서역 인근 논에서 발견된 여고생 살인사건, 1991년 1월 발생한 청주 복대동 여공 살인사건, 같은 해 3월 벌어진 청주 남주동 주부 살인사건도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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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15명 살해…연령대 가리지 않아

이춘재의 자백이 모두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이 씨가 무기수로 복역 하게 된 '처제 살인사건'까지 합치면, 이 씨가 저지른 살인은 모두 15건이다.


범행 기간은 1986년 9월부터 1994년 1월까지다. 1986년에만 4건을 저질렀고, 1991년까지는 범행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피해자의 나이는 9살 어린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은 이 씨의 범행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음란 사진을 보관한 것과 처제 살인사건 때 이 씨 부인을 조사한 경찰의 증언 등을 근거로 이 씨가 성도착증 환자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확인된 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범행동기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씨 자백대로라면 1991년 4월 3일 화성 10차 사건 이후 1994년 1월 처제 살인사건까지 2년 9개월 동안은 살인은 없었다. 이 시기에 이 씨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걸로 알려졌다.


이 시기가 이른바 '범행 냉각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범죄 전문가 분석이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도 연쇄살인범들이 여자를 사귀는 기간에는 범행을 중단한 사례들이 꽤 있다"며 "결혼과 출산이 범죄를 중단할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강호순, 유영철, 정남규 등 그동안 붙잡힌 연쇄살인범 가운데 범행 기간이 가장 길다. 30년이 지난 사건인데도 그의 잔혹함에 소름이 끼치는 이유다.


DNA 분석법 등이 없었던 과학수사의 한계와 CCTV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치안 인프라의 한계가 장기간 범행을 가능케 한 요인이지만, 이춘재를 3번이나 수사 선상에 올리고도 놓쳤던 당시 경찰의 수사력도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경찰은 30여 년 전 잘못을 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본부에서는 과거에 경찰관들의 잘못이라든지 어떠한 문제점이라든지 수사과정에서 저희가 도출하는 모든 문제점에 대해서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낱낱이 밝혀나갈 예정"이라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highfiv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