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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슈퍼컴퓨터로 게임 한다고요?”…밤새 기상청에 무슨 일이

byKBS

KBS

참 쓰기 편한 기사가 있습니다. 썼다 하면 공감 수가 몇백은 기본입니다. 기자의 비판 대상을 독자도 한마음으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기사일까요? 바로 기상청 '까는' 기사입니다. 이런 기사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댓글도 있습니다.


'기상청에 세금으로 슈퍼컴퓨터 사줬더니, 예보관들이 밤마다 게임만 한다며?'


밤새 기상청에는 정말 무슨 일이 있을까요? 지난 22일, 기자가 직접 기상청 예보관들과 하룻밤을 보내봤습니다.

저녁 8시, 야근 예보관들의 출근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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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밤, 기상청 예보관들이 화상회의를 열고 있다.

대부분 직원이 퇴근한 저녁 8시, 야근조 예보관들이 출근하는 시각입니다.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방 기상청 직원들과의 화상회의. 그날 밤 야근에서 어떤 요소를 중점적으로 분석해야 할지 토의하는 일입니다. 이날은 뜻밖에도 일본 동쪽을 향하는 21호 태풍 '부알로이'가 주요 논의 대상이었습니다. 기자의 머리에는 이런 댓글이 그려졌습니다.


'우리나라 오늘 날씨나 잘 맞힐 것이지, 며칠 뒤 태평양 가는 태풍이 대체 뭔 상관?'


기자의 생각과는 달리 예보관들의 토의는 진지했습니다. 태풍이 동쪽의 기압능에 막혀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 한반도로 동풍이 오래 지속돼 동해안 지역에 예상되는 비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비효과와 같은 연쇄 증폭 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예보관들은 태풍을 보며 나비의 첫 날갯짓을 관찰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쏟아지는 자료와 매시간 빽빽이 채워진 일과표

화상 회의가 20분 정도 만에 끝나자, 그 뒤의 업무가 궁금해졌습니다. 통보문이 다음 날 새벽 5시에 발표된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눈 좀 붙이고, '슈퍼컴퓨터로 게임'도 하면서 쉬엄쉬엄 보내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오산이었다는 것은 동네 예보를 담당하는 이혜란 주무관의 업무 시간표를 보자마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시간마다 발표하는 동네 예보를 위해 이 주무관의 시간표는 퇴근 시간인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빼곡히 차 있었습니다. 이날 야근조로 들어온 7명 모두 특보, 초단기 예보, 해상 예보, 북한 예보 등 저마다 맡은 역할로 바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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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동네예보 담당자의 야근 근무표

당장 밤 9시가 지나자 전 세계 각지에서 밤 9시에 관측한 기상 자료들이 기상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보의 정확도는 1) 관측 자료의 품질 2) 수치 모델의 성능 3) 예보관의 역량으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요소인 관측 자료가 들어오자 예보관들은 이전 자료와 비교해 가며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정확한 예보 생산을 위해 첫 시동을 거는 순간입니다.

올해 태풍 예보 평가는?…"선제 대응 위해 노력"

기상청 본청만 이렇게 밤에도 불이 켜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밤 10시가 다가오자 제주도에 있는 국가태풍센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밤 10시에 발표되는 태풍 예보를 작성하기 전 최종 토의를 하기 위해섭니다. 태풍 예보를 보다 보니 올해 태풍 예보에 대해 기상청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날 야근조의 조장 역할을 맡은 조남산 총괄예보관에게 물었습니다.


조 예보관은 "올해 태풍이 7개나 영향을 줬는데 그때마다 선제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브리핑을 하는 등 노력했다"고 밝히면서 "국민의 체감 만족도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기자로서 되돌아보면 올해는 정말 기상청이 유난스레 태풍 설명 자료를 자주 발표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조 예보관 말대로 그만큼 많은 국민에게 태풍의 위험을 알릴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윈디'가 더 정확하다던데?…"예보관도 보는 자료"

바쁜 시간이 되기 전에 조금 더 예민한 부분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공짜인 윈디 앱이 세금 받는 기상청 예보보다 잘 맞는다고 하던데'라며 예보 정확도에 관한 질문을 넌지시 던졌습니다. 들려온 답변은 뜻밖이었습니다. 조 예보관은 "기상청 직원들도 다 보는 자료"라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윈디라는 앱에서 주로 표출하는 자료가 유럽중기예보센터의 예측 모델(ECMWF)인데 기상청 예보관들이 예보를 내기 전에 보는 세계 여러 수치 모델 중에 하나라는 설명입니다.


조 예보관은 "물론 윈디에서 사용하는 ECMWF 모델이 정확도가 높긴 하지만, 유럽 모델이다 보니 꾸준히 보면 한반도 부근에서는 안 맞는 부분이 나온다"며 "전반적인 경향은 윈디처럼 수치 예보 그대로 나온 결과보다는 예보관의 판단을 거쳐 나온 예보의 정확도가 높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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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민간 기상 업체 윈디[windy]에서 제공하는 기상 정보. 유럽중기예보센터 모델[ECMWF] 등을 표출한다.

자정이 넘어가자 조금 전 얘기한 각종 수치 예보 모델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상청이 사용하는 영국의 UM 모델과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 윈디에서 표출하는 ECMWF 모델, 미국 국립해양대기국의 GFS 모델까지, 저마다 각각의 예측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들 내로라하는 기상 선진국들의 모델이고, 당대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로 계산해 낸 답인데 예측이 제각각이란 겁니다. 정답을 맞히는 곳은 많아야 한 군데, 어쩌면 한 곳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현대 과학이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나 봅니다.

20년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더 높아진 국민 눈높이

그렇다면 과거보다는 기상청의 예측이 나아진 걸까? 1997년부터 예보 업무를 맡았다는 허진호 예보관에게 물어봤습니다.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허 예보관은 "당시에는 슈퍼컴퓨터도 없어서 볼 수 있는 자료 자체가 별로 없었다"면서 "위성 사진조차 일본에서 보내주는 그림 한두 장으로 분석하는 수준이었다"고 20여 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국민은 김동완 통보관이 일기도를 그리며 예보를 설명하던 그때가 더 나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허 예보관은 "당시에는 예보가 '내일 중부지방에 비 온다'라는 식으로 한 문장으로 끝났다면, 요즘은 1시간 단위로 동네별로 세분화해서 발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예전에는 예보가 맞든 틀리든 확인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하루 중 언제든 중부지방 어느 곳에 비만 조금 떨어져도 예보가 맞은 것으로 평가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상세하게 발표하다 보니 예보가 틀릴 여지도 많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속사정은 모르고 예보가 틀리면 무조건 기상청을 '까는' 언론이 밉지는 않은지 궁금했습니다. 조남산 예보관은 "예보가 틀린 것은 예보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면서 "서운한 점보다는 언론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것보다는 직원들이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조 예보관은 "직원 중에 퇴근하고 편히 쉬는 직원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면서 "본인이 낸 예보가 틀리지는 않을까 쉬는 중에도 기상청 인트라넷에 접속해서 다들 예보를 확인할 만큼 부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비판을 마음에 너무 담아 두면 다음에 비슷한 예보를 낼 때 오히려 위축될 수 있는 만큼, 더 좋은 예보를 낼 수 있도록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는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졸음 잊고 난상 예보 토론…고성 오가기도

새벽이 되자 기자는 눈이 점점 감겨왔지만, 예보관들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밤새 고민한 예보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종 예보 결정을 앞둔 만큼 이전까지 간혹 농담을 주고받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긴장도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졸린 기자 눈에는 누구나 가장 피곤해할 시간대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새벽 3시 30분이 되자 또 한 번 지방 기상청과의 화상회의가 시작됐습니다. 최종 예보 결정을 앞두고 지역별로 예보를 조율하는 시간입니다. 구수한 사투리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의 무게는 달랐습니다. 각기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지역의 지형과 특성을 살린 전문적인 분석을 내놨습니다. 본청과 이견이 있을 때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이날 가장 논란이 된 건 동해안 지역의 강수량 예보였습니다. 윈디를 비롯해 앞서 나온 수치 모델 자료들이 대부분 10~30mm 정도를 예측했는데, 기상청 본청의 예보관들은 이보다 2배나 많은 20~60mm를 고집했습니다. 수치 모델들이 태풍 '부알로이'로부터 유입되는 수증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비의 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기상청은 이런 판단을 그대로 밀고 나가 새벽 4시 20분, 예보 초안 격인 '날씨해설'을 발표했습니다. '윈디 vs 기상청 예보관'의 구도로 예보가 엇갈린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겼을까요? 결과는 기사 끝에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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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05시에 발표한 기상청 통보문. 동해안 지역에 23~25일 20~60mm의 강수량을 예보했다.

5시가 되자 '날씨해설'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예보 통보문이 발표됐습니다. 아침에 기상캐스터들과 기자들이 출근하면 참고하는 첫 일기예보이자, 온 국민이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그 날의 날씨가 이렇게 완성된 겁니다.


그렇지만 야근 예보관들의 업무는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6시에는 10일 뒤까지의 예보인 중기 예보 통보문을 발표하고, 이후 기상청장과 예보국장을 비롯해 주간 근무자들이 참석하는 예보 브리핑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예보 브리핑이 끝나는 오전 8시 반이 돼야 전날 저녁 8시 무렵부터 시작된 야근조의 업무가 끝났습니다.

기상청 내의 3D 업종, 예보관…"자부심으로 일해"

기자가 함께 밤을 새우며 확인한 예보관들의 모습은 '게임을 할 시간은 커녕 화장실 갈 틈도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상청 예보관들은 8일 주기로 근무하는데 이 가운데 이틀은 주간 근무, 이틀은 야간 근무입니다. 한번 출근하면 보통 13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해야 합니다. 이렇게 근무 강도가 높은 탓에 최근 5년 동안 기상청 예보 업무 직원 약 150명 가운데 암 등의 질환으로 1명이 숨지고, 7명이 휴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 기상청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예보관 업무를 희망하는지 조사한 결과 '의향 없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는 57%를 차지했습니다. 이유는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힘든 업무를 하는 이들의 생각은 뭘까? 함께 밤을 새운 박중환 예보관은 '사명감'을 얘기했습니다. 박 예보관은 "기상 예측은 재난과 밀접히 연결되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치기 소년' 조롱 대신 '방재 기관'으로서의 역할 주목

성적표가 나온 건 이틀 뒤인 25일 밤이었습니다. 기상청과 윈디의 예측대로 23일부터 25일 사이 동해안 지역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두 기관이 서로 어긋났던 강수량은 과연 누가 맞았을까요? 실제 관측된 강수량은 위 그림처럼 포항과 삼척 일부 지역에 최고 80mm가 넘었고, 그 밖의 대부분 동해안 지역은 파란색으로 보이는 20~70mm 범위에 있었습니다. 10~30mm를 예측한 윈디(ECMWF 모델)보다는 20~60mm를 예측한 기상청이 판정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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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일 누적 강수량[단위 : mm]

물론 겨우 하나의 사례로 기상청 예측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상 예보라는 것이 때에 따라 한국 기상청이 더 정확할 때도, 일본 기상청이 더 정확할 때도, 미국의 민간 업체가 더 정확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전 세계 예측 모델의 자료를 대부분 공유하기 때문에 예측 정확도 면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는 기상청이 오보를 내고, 또 그것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면 유독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상청 줄 세금으로 외국 자료를 사다 쓰자는 의견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기상청 예보관들의 업무는 단지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를 예측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피해가 예상되면 특보를 발령하고, 언론 브리핑도 실시하는 등 방재 담당자로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일기예보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방재 기관으로서의 기상청 역할은 존중하는 이유입니다. 방재 선진국일수록 기상청을 '양치기 소년'으로 조롱하는 사회 분위기보다는 그들이 사명감으로 예보를 잘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정훈 기자 (skyclear@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