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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잔을 지켜라’…프랑스 정부 “한국 갈 때 ‘물뽕’ 조심”

byKBS

KBS

"잔을 잘 지키세요. 당신이 모르는 새 '물뽕' 같은 약물이 유입될 수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 외무부가 한국 여행을 앞둔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띄운 정보입니다. 부처 홈페이지에 게재한 각 나라별 여행 정보 코너에서 한국을 선택하면, 일주일 전 업데이트된 이 소식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홍대, 이태원, 강남 지역의 클럽들에서 이른바 '성폭행 약물'인 '물뽕'(GHB) 피해 사례가 다수 보고됐습니다. 주로 피해자들이 마실 술이나 음식, 음료에 약물을 넣는 수법입니다."


데이트 성범죄 약물로 불리는 GHB를 이용한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경고와 함께 예방 수칙도 기재돼 있습니다. '술집이나 클럽에 갈 땐 동반자와 함께 가고, 낯선 사람의 초대엔 응하지 말 것. 축제 같은 상황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 때 특히 젊은 남성일 경우 한 명이든 여럿이든 경계를 늦추지 말라' 라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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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더는 '마약 청정국'이 아닌 대한민국, 특히 올해는 신종 마약과 약물 관련 범죄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연예인, 재벌가 자제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연루된 사건도 국내에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긴급 경계령을 내리거나, 여행 경보 단계를 조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 기준 프랑스 외무부는 한국을 여행 경보 1단계인 '정상 경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한국을 찾는 자국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경고에 나선 건 예사로 넘길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 정부 "물뽕 주의"…버닝썬 후폭풍?


올해 초 불거져 여전히 수사가 진행형인 버닝썬 사태. 핵심 인물인 가수 승리가 경찰에 입건되고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던 3월, 프랑스 언론들은 이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한류 열풍을 이끈 'K팝 스타의 추락'이란 제목을 달아 클럽 버닝썬을 무대로 펼쳐진 성매매와 마약 의혹 등 범죄 종합세트 같은 사건을 자세히 다룬 겁니다.


당시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 앵포'는 란 제목으로 기사를 냈는데 '완벽한 이상형 같은 K팝 스타들'의 스캔들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를 보여준다고 짚었습니다. 승리가 '성적 뇌물'로 접대를 했고, 클럽 버닝썬에선 숨겨진 카메라로 여성들을 촬영하고 마약과 술을 동원해 이들을 성폭행했다고 썼습니다. 가수 정준영의 불법 성관계 동영상 유포와 관련해서는 아예 '몰카(MOLKA)'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화장실, 지하철, 사무실 등 공공장소 곳곳에 숨겨진 '몰카라는 전염병'에 한국이 직면해있다며, "K팝 스타들이 깨끗한 이미지를 만들어온 점, 한국 정부가 K팝을 수출상품으로 적극 내세워 온 점이 도리어 스캔들의 충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라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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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르 피가로', '파리지앵' 등도 비슷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르 피가로는 여기에 더해 승리가 속해있던 그룹 빅뱅에서 마약 스캔들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멤버 탑과 지드래곤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각각 집행유예,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기술했습니다.


프랑스도 '물뽕' 골머리…혼수상태·사망 잇따라


한국의 버닝썬 스캔들에 프랑스 언론들이 주목한 배경은 우선 인기를 더해가는 K팝과 한류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와 마약, 특히 GHB 같은 신종 마약류로 인한 피해는 프랑스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3월 프랑스 파리의 한 클럽에선 '물뽕'의 원료인 GBL을 마신 청년 두 명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불과 두 달 전인 9월에도 역시 클럽에 갔던 20대가 엑스터시 과다복용으로 숨졌습니다. 프랑스 마약관리국에 따르면 클럽 같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GHB가 퍼지면서 파리에서만 한 해 50명에서 100명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특히 17살에서 25살 사이 젊은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망 사건 발생 당시 프랑스 내무부와 수사 당국이 유명 클럽들을 잇달아 폐쇄 조치하고 단속과 예방 교육을 강화했지만, GHB 소비는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4일 파리 르와시 샤를 드골 공항 세관에선 13톤의 GBL을 압류했는데, 무려 6백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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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무부가 '물뽕주의보'를 올린 데 대해 우리 외교당국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외신으로 지속 보도되면서 프랑스 외무부에서 자국민 보호와 정보 제공 차원에서 게재한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지나치게 왜곡됐거나 여행 경보 단계를 하향한 수준은 아닌 데다, 국내 관련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 프랑스 측에 공식 항의하거나 게재 철회를 요구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외교부와 대사관에서도 프랑스 관련 정보에 여행객 안전 주의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만큼 일단 예방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예의주시하겠다는 겁니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안전여행정보를 보면 프랑스에는 현재 '여행 유의' 단계인 남색 경보가 내려져 있고, 관광객을 겨냥한 소매치기와 자전거 택시 횡포, 테러주의 등 백여 건의 여행 정보가 올라와 있습니다.


한국, 하면 "김치·강남스타일"이제 '물뽕, 몰카?'


물론 연 6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방불 관광객과 지난해 처음 10만 명을 넘었다는 프랑스 방한 관광객의 경우를 단순비교할 순 없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테러와 폭력 시위가 잇따른 프랑스 상황을 감안하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한국인 여행객에게 관련 안전정보를 부단히 알리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K팝과 한류에 매료돼 한국을 찾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의 '물뽕주의보'가 달갑지 않다는 게 외교 당국과 관광업계의 반응입니다. 한국으로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는 이들이 연 4백 명을 넘을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격이란 겁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여전히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 프랑스인들. 요즘엔 김치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는 이들도 늘었습니다. 청소년들은 'BTS'로 대화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물뽕, 몰카' 같은 단어들이 포함될까 봐 지레 식은땀이 납니다.


양민효 기자 (gonggam@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