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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취재후

‘누구나 김용균’…뼈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져도 “그 정도로 안 죽어”

byKBS

KBS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 두 명이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갑니다. 도로 3~4m 아래, 맨홀 속 세상이 그들의 일터입니다.


맨홀 안은 예상보다 어둡고 좁았습니다. 취재진이 갔을 때,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맨홀 점검 중이었습니다. 점검이라고 해서 눈으로만 보고 끝낼 수 있는 업무는 아니었습니다.


열 수송 배관에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밸브를 하염없이 돌리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점검 작업이라 합니다. 노동자 2명은 좁은 공간, 미끄러운 배관 위에서 허리를 반쯤 접고 쭈그려 앉은 상태로 계속 작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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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 떨어져서 뼈 부러졌다는 얘기도 들었고..."

작업 중 어떤 사고가 나는지 묻자, 낙상 사고가 많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노동자 한 분은 "일하시던 분들이 몇 번 떨어져 뼈가 부러졌다는 얘기도 들었고. 왔다 갔다 할 때 사다리가 휘청 휘청한다거나 그런 일은 많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진짜 무서운 사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교통 사고' 입니다. 열 수송 배관의 밸브를 닦고, 돌리며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은 혼자선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때문에 맨홀 안에 2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문제는 맨홀 밖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맨홀 안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올 때, 누군가 신호를 봐주고 차량을 통제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장치라고는 맨홀 뒤쪽에 세워둔 작업차가 전부였습니다.

"왜 차를 맨홀 뒤에 세우느냐면, 차를 맨홀 앞에 세워두면 차가 치고 들어올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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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작업 인원 2명 외에, 차량 통제를 맡아 줄 현장 직원이 최소한 1명은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역난방공사의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공사 측은 2인 1조 근무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맨홀에 들어가기 전 안전 체크를 하면 1명만 들어가도 작업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고, 다른 1명은 밖에서 차량을 통제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지역난방공사는 아직 인력 충원 계획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 조치를 더 충실히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회사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회사가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건물의 배관실을 관리하는 또 다른 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건물의 시설 관리를 맡은 자회사 노동자들은 '덜 위험하다'는 이유로 위험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취재를 나가기 전, '건물의 시설을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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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지하로 내려가, 벽 속의 벽으로 들어가니 배관이 빼곡히 박혀 있는 그들의 일터가 나왔습니다. 어깨를 접고, 몸을 옆으로 틀어야 지나갈 수 있는 길. 잠깐 몸을 펴기만 해도 주변 철골 구조물이 몸 여기저기를 찔러댔습니다. '사람이 깨진다'는 말이 와 닿는 곳. 하지만 이곳의 노동자들도 충분한 안전 인력 없이 홀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자회사 노동자들은 매일 혼자 이런 곳에서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심지어 휴대전화 신호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만약 근무 중 사고를 당한다면, 동료에게 구조 요청조차 할 수 없는 겁니다.

"누가 구해줄 수도 없어요. 전화 신호가 안 잡히는 곳은"

최근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한 분은, 이 '벽 속'에서 페인트 작업을 하다 냄새 때문에 현기증이 나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쓰러지면서 배관 등 철골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피가 흐르는 머리를 움켜쥐고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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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에서는 전화 신호가 안 터지는 곳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무전기를 지급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말은 다릅니다. 무전기가 모두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보안팀만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곳의 노동자들은 2인 1조 근무를 하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진흥공단은 노조 측에 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기획재정부에 예산안이 올라가긴 한 것인지, 예산을 못 받은 이유는 무엇인지 중소기업진흥공단 측에 물었지만 정확한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 측은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어서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은 위험해" vs "그 정도로 안 죽어"

또 자회사 사측에서는 해당 사업장과 직무가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서, 2인 1조 근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역난방공사 측이 '현재 인력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입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안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현장 밖에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누구나 김용균이다"

故 김용균 씨도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노동자가 위험한 환경에서 혼자 일해도 큰 사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측의 안일한 생각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만난 노동자들은 말합니다.


"사고라는 게 꼭 '오늘 괜찮겠지'라고 하지만, 아니지 않습니까. 김용균 씨 사고도 그렇고 저희 마음하고 똑같죠. 저도 언제 그런 사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나 김용균인 작업 현장, '위험의 외주화'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은진 기자 (ejch@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