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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취재후

“카 캐리어 발판에 할아버지가”…‘달리는 흉기’ 적재용 발판

byKBS

KBS

지난달 19일, 경남 창원의 한 터널에서 7중 추돌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터널에서 제일 앞을 달리던 1톤 화물차가 차체 이상으로 고장이 나 급정지하면서, 뒤따르던 다른 차량이 잇따라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가장 뒤에서 달리던 5톤 트레일러 운전자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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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7중 추돌사고 (11월 19일, 경남 창원)

그런데 사고 원인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차량들이 비교적 가볍게 부딪혔는데도, 가장 뒤에서 추돌한 트레일러 운전자 65살 권 모 씨가 숨졌다는 것입니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는 앞 차량 제동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트레일러가 급히 속도를 줄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권 씨의 유가족들은 "사고 당시 차량 속도들이 빠르지 않았고 권 씨의 차량 역시 과속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 추돌사고가 어떻게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카캐리어 '날카로운' 작업용 발판…뒤 차량 운전석 덮쳐

당시 권 씨의 트레일러 앞을 달리던 차량은 '카캐리어(Car carrier)'였습니다.


자동차를 운반하는 화물차인 카캐리어에는 차량을 실을 수 있는 구조물이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설치돼 있고, 그 끝자락에는 차량을 실을 때 도움을 주는 '적재용 발판'이 달려있습니다.


문제는 당시 카캐리어가 적재용 발판을 180도로 펼친 채 도로를 달렸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추돌 과정에서 이 날카로운 적재용 발판이 뒤 차량의 앞유리를 그대로 뚫고 운전석을 덮쳤습니다. 카캐리어의 적재용 발판은 90도로 접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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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캐리어의 적재용 발판이 뒤 차량의 앞유리를 뚫고 운전석 덮쳐.

사고 유가족은 기자에게 "단순 추돌로 끝날 수 있는 사고였다. (발판을) 내릴 수 있는데, 왜 이분은 내리지 않고 갔을까. 정말 너무 어이없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귀찮아서 접지 않고 뒤차 안전 신경 안 써요"…위험천만한 운행

운전기사들은 왜 발판을 접지 않고 다닐까요. 취재진은 취재 과정에서 10년간 카캐리어를 운전한 기사님 한 분을 만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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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캐리어의 작업용 발판은 레버 조절을 통해 접거나 펼칠 수 있다.

황당하게도 이유는 '귀찮다'는 것이었습니다. 카캐리어 적재용 발판을 접기 위해서는 운전기사가 운전석 밖으로 나와서 손으로 직접 올리거나 내려야 합니다. 사실상 5분도 걸리지 않는 매우 간단한 일인데, 상당수 운전자가 이를 번거로워한다는 겁니다.


일부 운전기사들은 차량을 한 대 더 싣고 다니기 위해 작업용 발판을 용접하는 등의 수법으로 상판 길이를 연장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카캐리어 운전 기사는 "귀찮다는 이유로 100명 중 99명이 발판을 펼친 채 다닌다. 발판을 용접해서 차를 더 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뒤차 안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적재 발판 접기' 의무 조항 없어…제도 정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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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유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발판이 길게는 1m까지 돌출된 채, 도로 곳곳에서 위험천만하게 달리는 카캐리어.


뒤꽁무니로 튀어나온 차들 탓에 길이가 길어져 주변 시설물이나 차들을 칠 위험이 얼마든지 있지만, 안타깝게도 발판을 돌출되지 않도록 접어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의 시행령이나 규칙은 없습니다. 사실상 규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 할아버지 죽음 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유가족들은 사고 이후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운행 방식을 개선하거나 안전을 담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도로의 달리는 흉기가 된 카캐리어. 이제라도 '발판 접기 의무화' 등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