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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조율은 타협”…64년 무대 뒤 ‘조율 명장’ 이종열 선생

by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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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는 연주 실력만으로는 완벽한 무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연주자가 바라는 대로 소리를 내줄 피아노가 필요합니다. 훌륭한 조율사가 없다면 어떤 연주자도 자신이 원하는 실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선생은 무대 뒤 주인공입니다. 그는 "조율은 타협"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정의를 내놓으며 "음정을 어떤 위치에 세우고 싶을 때는 위아래 4도, 5도에게 먼저 묻고 그 질문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된다"고 설명합니다. 81살의 명장은 일반인의 귀엔 들리지 않는 미세한 차이를 세밀하게 잡아내며 매일 매일 조율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운명처럼 만나 집념으로 버틴 '조율의 세계'

이종열 선생은 1956년 고등학생 시절, 교회의 풍금을 고치며 조율의 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소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반음계 단소까지 개발한 소년이었습니다. 당연히 풍금에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풍금 뒤쪽 뚜껑을 열고 진동판에 손을 댔습니다. 여기저기 질서없이 지나간 손길에 남은 건 불협화음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원상 복구 시킬까' 이 질문에 대한 집념이 대가를 조율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일본 책을 수입하는 책방에서 '조율'(調律)이라는 글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집안 어른들을 설득한 끝에 책을 산 이종열 선생은 집념으로 독학을 이어갔습니다. 조율 책을 읽기 위해 일본어도 혼자 깨우쳤습니다.

'무대 뒤' 주인공으로 64년…조율만 4만 천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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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반열에 올라 '대가들의 동반자'가 된 지금까지 64년 동안 조율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조율 외의 것은 잘 모른다"는 쑥스러운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230개의 줄을 조였다 늘이고, 88개의 건반 위치를 높였다 내리고, 페달까지 돌보며 정성껏 조율한 횟수만 무려 4만 천여 회에 이릅니다.


수만 번의 경험에도 조율의 시간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피아노는 온도와 습도 등 작은 변화에도 소리가 달라집니다. 조율을 마친 뒤 리허설을 위한 조명이 켜지면 온도가 변하고 조율도 다시 시작됩니다. 까다롭고 예민한 연주자들의 세세한 요구사항도 모두 맞춰줘야 합니다. 연주자가 오기 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종열 선생은 조율을 마치고 무대 위에 남겨진 피아노를 '자식'에 비유했습니다. 연주자의 무대가 펼쳐지는 동안 "자식의 연주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조율로 국위 선양"…대가들의 찬사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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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몇 대 있냐, 큰 피아노냐 작은 피아노냐, 어느 나라 피아노냐.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종열 선생은 한국의 수준을 무시하는 그들의 질문에 실력으로 답했습니다. 최상의 조율 실력을 선보이며 결국엔 피아니스트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습니다.


2003년 내한했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한때 조율사를 꿈꿀 정도로 상당한 조율 실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피아노까지 공수해왔습니다. 이런 깐깐한 피아니스트가 커튼콜 당시 이종열 선생을 무대로 불러 감사 인사를 전한 겁니다. 당시 "머리가 멍했다"면서도 "행복했다"는 그는 국위 선양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합니다.


"외국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겠죠. 이분들을 기분좋게 해서 보내는 게 국위 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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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사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됐으면 수술을 꼼꼼하게 잘했을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놓은 이종열 선생.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과 조율 도구를 다루는 솜씨는 영락없이 외과 의사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조율에 관한 아이디어가 쉴새 없이 떠오르고, 배움에 끝이 없다며 눈을 빛내는 선생에게서 다른 직업을 읽어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김세희 기자 (3he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