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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취재후

“왜 이제 와서 폭로하냐고요?”…원종건 피해여성의 절규

byKBS

KBS

이틀 전 민주당 영입인재 2호 원종건 씨의 '데이트폭력'을 폭로한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돼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글을 게시한 지난 27일, 어렵게 연락이 닿은 A 씨는 처음 취재기자에게 "원 씨의 잘못 인정과 탈당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며 인터뷰를 고사했습니다. 글의 신뢰성을 위해 최대한 자세하게 피해 사실을 기술해야 했기에 기자에게도 신원을 밝히고 인터뷰에 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어제(28일) A 씨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원 씨가 A 씨의 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기자회견 때문이었습니다. 탈당이 아닌 영입인재 자격 반납, A씨가 어렵게 용기를 내 폭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원 씨의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A 씨는 "고통을 저와 함께 치르겠다는 부분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됐다"며 "제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을 자기가 먼저 인정해야 하는데 저랑 같이 치르겠다는 말을 과연 가해자로서 할 수 있을까"라며 원 씨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A 씨의 폭로와 KBS와의 인터뷰가 나간 이후, A 씨를 응원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왜 이제서야 폭로하는 거냐며 A 씨의 의도에 의문을 품은 댓글들도 많았습니다. A 씨가 신분 노출의 가능성과 이로 인한 2차 피해 우려를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폭로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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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건 씨의 데이트폭력을 폭로한 여성 A 씨가 어제(28일)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문제제기하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A 씨는 원 씨와 교제하는 동안 원치 않는 강압적 성관계와 동의 없는 촬영 등 데이트 폭력에 대한 지적을 수차례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원 씨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A 씨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에 대해 A 씨가 거부 의사를 밝힐 때마다 원 씨는 항상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도리어 A 씨가 잘못한 것처럼 데이트폭력의 본질을 가려온 겁니다.


A 씨는 성폭행 이후 산부인과를 방문한 적도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병명을 진단받는 과정에서 의사도 A 씨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단 뒤에도 원 씨의 강요는 몇 차례 더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피임 거부로 A 씨는 경구피임약을 복용했지만 원 씨에게는 말할 수 없었는데 원 씨의 강요가 더 심해질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A 씨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수치심 때문에 친구에게조차 자세하게는 털어놓지 못해 A 씨는 인터넷상에서 익명을 빌려 두루뭉술하게 피해 상황에 대한 상담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의 조언을 통해 원 씨의 행동이 데이트폭력이라는 점을 점점 명백히 깨닫게 됐지만, A 씨는 자신의 계속된 문제 제기와 거부 의사를 밝히면 원 씨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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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원 씨 ‘데이트폭력’ 일부 피해가 기재된 일기장 (아래) 원 씨에게 ‘데이트폭력’ 사실을 지적한 문자 일부 (제공: A 씨)

"데이트 폭력 증거 모으며 제가 되게 못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헤어진 뒤에도 A 씨가 느낀 수치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증거를 모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증거를 수집할 때마다 A 씨는 '내가 이러는 게 맞는 건가, 내가 너무 못된 것 같다'와 '나는 엄연히 데이트폭력을 당했다, 이건 폭로해야 맞다'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갈등해야만 했습니다.


한때는 교제 기간 전체를 부정해야 한다는 아픔에 기억을 미화하려 한 적도 있었다고 A 씨는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원 씨가 A 씨에게 했던 행동들을 보상받고 싶어서, 원 씨가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사과는 받지 못했습니다.


A 씨는 현실이 아직 피해자에게 냉랭하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A 씨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사 두 명 모두에게서 A 씨의 사례는 "명백한 성폭행"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고소를 해도 최악의 경우 가벼운 처벌만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그 말을 듣자 허탈했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A 씨 신원 노출의 가능성과 함께 긴 싸움을 해야 한다는 점도 우려스러웠습니다. A 씨는 아직 가족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A 씨는 어머니가 더 아파하실 거라며 모르셨으면 좋겠다고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가해자의 주장에 저를 꽃뱀 취급하는 게 너무 무서워요"

일각에서 제기하는 A 씨의 '준비된' 폭로는 이 같은 오랜 시간 끝에 결정됐습니다. A 씨는 "제가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졌고 더럽게 느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폭로하는 게 맞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A 씨가 폭로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건 원 씨가 민주당 영입인재 2호라는 타이틀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시화되면서부터입니다.


A 씨는 원 씨가 TV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에 한 번, 또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모습에 두 번, 원 씨가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폭로글을 올린 것만으로도 A 씨는 이제 2차 피해의 고통에 놓여있습니다. "가해자의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저를 2차 가해하고 꽃뱀 취급하는 부분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원 씨의 사과 그리고 혹시 모를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또 용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A 씨는 카메라 앞에 섰다고 밝혔습니다.


원 씨가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했다고 해서 데이트 폭력 의혹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A 씨의 폭로는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우발적이지 않고 숙고 끝에 나온 결단이라고 취재진은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원 씨의 입장을 듣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KBS는 원 씨의 입장을 추가적으로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언제라도 원 씨의 반론을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힙니다.

허효진 기자 (her@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