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바뀌고 또 바뀌고…교육청 널뛰기에 천당·지옥 오간 응시생들

byKBS

KBS

임용시험 합격자 번복 사태에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발표한 서면 사과문[사진출처: 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

중고생 선호 직업 1위, 교사

중고등학생들이 원하는 직업 1위, 바로 학교 선생님입니다. 실제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는 교사입니다.


선호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지만, 서울 노량진 학원가만 보더라도 임용시험 준비에 쪽잠을 자며 공부하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요즘은 학벌과 나이, 신체조건 등 여타 조건을 보지 않아 '공정한 시험'으로도 꼽히기도 합니다.


이 임용시험 합격자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KBS

발표 7시간 만에 임용시험 최종 합격자 뒤바뀌어

지난 7일 오전 10시, 각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중등학교 임용시험 최종 합격자가 발표됐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은 총 152명의 중등교사를 선발해, 자신의 수험번호를 확인한 응시자들이 이날 합격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5시, 발표 7시간 만에 최종합격자 변경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총 8명을 선발한 체육 과목 합격자 가운데 한 명이 뒤바뀐 겁니다.

KBS

지난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임용시험 합격자 번복에 공식 사과한 제주도교육청.

"일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담당 직원 실수"

갑작스러운 합격자 변경 소식에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10일,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고용범 제주도교육청 교원인사과장은 "이 일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담당 주무관의 실수"라며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경위는 이렇습니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은 1차 시험과 2차 시험으로 진행됩니다. 1차 필기시험 결과로 선발정원의 일정배수를 선발한 뒤, 2차 시험을 치르는데요. 2차 시험에선 직접 수업을 진행해보는 수업 실연과 면접, 체육과 미술, 음악 교과목은 실기시험 등이 추가로 진행됩니다.


1차 필기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하기 때문에 모든 응시자가 같은 문제를 풀고, 채점도 일괄적으로 이뤄집니다. 하지만 2차 시험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진행합니다. 과목명과 과목 개수, 평가 기준과 방식 등을 각 시도교육청이 알아서 정하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2차 시험 세부 과목만 백여 개에 달합니다.

KBS

2차 시험 점수 입력 과정에서 착오가 생기며 합격자 1명이 뒤바뀌었다.

시험 점수 입력 착오? 총점에서 30점 빠져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2차 시험 점수를 교육청 전산시스템 '나이스'에 입력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체육 과목 임용시험 응시자들의 성적을 '실기평가'란이 아닌 '실기시험'란에 입력해버린 겁니다. 응시자들의 실기평가 점수가 총점에 반영이 안 된 촌극이 벌어진 셈입니다.


총 200점 만점에 실기평가는 30점을 차지하던 상황. 실기평가 점수가 빠져 30점 가까이가 비게 된 건데, 실제로 실기 점수가 포함되며 합격선도 143.71점에서 162.98점으로 20점 가까이 올라갔습니다.


어떻게 교육청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걸까. 고용범 과장은 "체육 교과목의 평균 점수가 낮았다고만 생각했다"며 "교과목마다 응시자 수준이나 시험 난이도에 따라 평균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만큼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뒤늦게 실기시험 점수가 반영되면서, 한 명의 합격자가 뒤바뀌었습니다. 응시자 두 명의 희비가 한순간에 엇갈린 겁니다. 제주도교육청은 "뒤늦게 불합격한 응시자를 찾아가 사과했다"면서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당당히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응시자의 말에 교육청 관계자 모두 감동했다"는 미담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KBS

제주도교육청 기자회견 자리를 직접 찾은 응시자 A 씨.

응시자 문제 제기에도 "자체감사 착수" 답변뿐

제주도교육청의 기자회견이 끝나갈 때쯤, 응시자 A 씨와 아버지가 교육청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응시자 A 씨의 아버지는 "아이가 올해로 시험을 세 번째 치르지만,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워한다"며 "전산 오류가 있었던 만큼 아이의 실기 점수가 총점에 잘 반영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채점기록표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응시자 A 씨는 KBS에 "응시자들끼리 실기 점수를 공유했을 때 뒤늦게 합격 통보를 받은 응시자의 실기 점수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며 "제주도교육청에 채점기록표 공개를 요구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답답함을 털어놨습니다.


제주도교육청도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 "채점기록표를 모두 공개하긴 어렵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자체 감사에 착수했다"고 답할 뿐이었습니다.

KBS

2차 시험 실기평가 5개 과목 가운데 1개 과목 점수가 빠지면서, 지난 13일 합격자가 또다시 바뀌었다.

일주일도 안 돼 합격자 한 번 더 뒤바뀌어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 돼, 체육 과목 임용시험 합격자가 또다시 바뀌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뒤늦게 합격 통보를 받은 응시자가 또다시 떨어지고, 문제를 제기한 A씨가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겁니다. 교육청이 자체 감사를 진행하며 '실기평가'에 들어가야 할 5개 교과목 점수 가운데 한 과목 점수가 전체적으로 누락된 걸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변숙희 제주도교육청 감사관은 "실기평가에 반영되는 교과목이 지난해 4개에서 올해 5개로 변경됐다"며 "하지만 담당자가 4개 교과목 점수만 반영하도록 설정돼있는 엑셀 수식을 바꾸지 않아 점수 합산이 되지 않았다"고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두세 차례 임용시험 점수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미비점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며 교육청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체육 말고도 다른 과목에는 문제는 없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다섯 차례 넘게 다시 확인한 결과, 다른 교과목 교사 채용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면서 "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제주도감사위원회에 감사를 의뢰해, 이번 사건의 경위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KBS

제주도의회가 오늘(18일) 개최한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합격자 재번복에 대한 사안 보고’

응시자도 실기시험 점수 모르는 '깜깜이 심사'… 외부 평가위원도 전무

사상 초유의 일에 제주도의회도 임시회를 앞두고 오늘(18일) 긴급 현안 보고를 열었습니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들은 제주도교육청 직원의 작은 착오가 큰 과실을 낳았다며, 임용시험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데 책임을 물었습니다.


김희현 제주도의원은 실기 시험을 본 응시자마저 본인 점수를 모른다며 깜깜이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은 "체육선수나 감독 등 외부위원이 평가위원으로 들어와 실기 시험을 치르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제주도는 제주도교육청 직원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평가에 임하고 있다"며 "제주 특성상 서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당사자에게 실기시험 점수마저 즉시 공개하지 않으면, 응시자들이 본인 점수를 믿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기평가를 전문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심사위원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체육 과목 응시자의 필수 응시 과목은 육상과 체조, 수영 3과목. 여기에 축구와 농구, 배구와 배드민턴 가운데 2과목을 선택해야 하는데, 응시자들을 정확하게 평가할 종목별 위원들이 없다는 겁니다.


김창식 제주도의원은 "경남과 강원, 인천시교육청 등 다른 지자체는 종목별로 전문위원들을 갖추고 있지만, 제주도는 각 종목에 전공자들이 평가에 참여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평가에 전문성을 갖출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음에 시험 치르면 도와주겠다?" 교육청 발언 도마

7시간 만에 뒤늦게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졸지에 '최종 불합격' 처리된 응시자 B 씨에 제주도교육청 직원이 한 발언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제주도교육청 직원은 서울에 있는 B 씨를 찾아가 불합격 사실을 전달한 뒤 사과하고, "다시 시험을 보면 도울 방법"을 찾겠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오승식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은 "다시 시험을 보게 되면 인간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위로의 말을 전한 거일 뿐"이라며 "제주도교육청이 응시자를 도울 위치에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진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KBS

제주도교육청 전경

교육감 공개 사과는 없어…임용시험 신뢰도만 추락

제주도교육청의 황당한 실수에 임용시험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두 명의 피해자만 발생한 상황.


하지만 지금껏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합격자 번복과 재번복 사태에 제주도민과 앞으로 제주도교육청 임용시험을 치를 예비 응시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진 않았습니다. 서면 사과문만 발표한 뒤, 임명장 수여식에서 올해 임용된 신규 교사들에게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번 달 말까지 임용시험의 투명성을 강화할 방책을 마련해 최종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음 주 중 이석문 교육감이 정식으로 도민들에게 유감 표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뒤늦은 사과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해당 응시자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을까요? 임용시험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허지영 기자 (tangerin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