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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그리스 이드라 섬과 ‘인생의 낮잠’

찬연한 햇살,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인생의 낮잠’ 선물해준 섬

by경향신문

찬연한 햇살,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

행복한 꿀잠 - 그리스의 작은 섬 이드라는 고양이 천국이다. 길을 가다보면 쉽게 마주치는 게 고양이었다. 섬 사람들은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낮잠 시에스타를 즐겼는데, 고양이들도 어디서든 늘어져 잤다. 바닷가 담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정겹다. 김남희씨 제공

축축하고 눅눅하다. 내 몸에서도 곰팡이가 필 것 같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 갇혀 장마를 견디는 날들. 통장은 텅 비었다. 휴가철의 물가와 인파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는 여름이면 늘 ‘방콕’행이다. 내 피서지인 카페로 향하는 길, 골목을 가로지르는 고양이와 마주쳤다. 작고 마른 고양이는 비에 젖어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빠르게 달아나는 고양이를 보며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고양이의 등에는 피로와 고독감이 배어 있었다.’ 장마철, 이 골목의 고양이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초라한 행색의 그 고양이는 내가 본 ‘고양이 천국’의 팔자 좋은 고양이들을 떠오르게 했다.

찬연한 햇살,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

‘행동하는 사색가’로 불린 후지와라 신야의 '인생의 낮잠'

올봄에 두 달간 머물렀던 그리스의 작은 섬 이드라는 ‘고양이 섬’이었다. 포구의 카페마다 제일 좋은 자리는 고양이들 지정석이었고, 골목마다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 넘쳐났다. 어느 날 포구에서 집으로 향하는 500m 남짓한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를 세어보니 서른여덟 마리였다. 나는 매일 마주치는 녀석들의 이름을 내 멋대로 지어 불렀다. 줄무늬 꼬리에 이마에는 선글라스를 얹은 것 같은 검은 반점을 하고서 늘 못마땅한 표정인 ‘너구리꼬리 선글라스’, 주구장창 잠만 자다가 밥 먹을 때만 몸을 일으키는 천하의 게으름뱅이 ‘늘보’, 나만 보면 발라당 드러눕는 회색 고양이 ‘발랑이’,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한 녀석은 ‘냅둬유’. 콧잔등에 붉은 생채기가 있는 녀석은 ‘루돌프’. 그야말로 나는 고양이 섬의 임시 세입자였다. 그 녀석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다가가면 힐끗 쳐다보는 걸로 재미없는 인물임을 단박에 알아채고는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인간의 손길에 익숙한지 무턱대고 다가와 꼬리를 비비는 녀석도 많았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금지된 섬이니 골목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다가 차에 치여 묘생을 마감할 일도 없다. 끼니때마다 사료를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는 집사들이 골목마다 상주한다. 길고양이를 상대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한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가 있고, 팔아도 모자랄 사료를 매일 퍼주는 사료 가게 아줌마가 있고, 테이블을 다 차지한 고양이들을 손님인 듯 대접하는 식당 주인들이 있다. 이런 분위기니 당연하게도 고양이들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목 좋은 곳에서 늘어지게 자는 일이었다. 게다가 섬에는 ‘시에스타’가 있어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는 섬 전체가 잠에 빠졌다. 고양이도 사람도 최선을 다해 잤다. 나도 질 수는 없었다. 빠짐없이 낮잠을 챙겼다. 매일 두 시간씩 낮잠을 자는 삶이 가능하다니 굉장한 섬이었다. 낮잠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내린 괴로운 삶을 뻔뻔하게 배신하’는 행위니 말이다.

찬연한 햇살,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

“오오 교주님 오셨다” 고양이들이 부두에 모여 어부들이 생선을 던져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낮잠에 관한 이 멋진 말은 일본의 사진가이자 작가인 후지와라 신야의 책 <인생의 낮잠>에 나온다. 후지와라는 스물넷에 대학을 그만두고 인도로 떠나 30대 후반까지 방랑자로 살았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로 시작하는 그의 대표작 <인도방랑>은 고전이 된 지 오래다. ‘행동하는 사색가’라 불리는 그의 글은 아름답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의 사진도 무엇을 찍은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초점이 어긋나 있거나 지나치게 어둡다. 몸을 파는 이들과 싸움꾼들, 시신을 먹는 개들과 같은 불편한 풍경이 수시로 등장한다. 삶이 던지는 화두를 온몸으로 붙들고 매달린 흔적들이다. 미화하거나 신비화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삶이 그의 글과 사진에 담겨 있다. 그랬던 그가 세월과 함께 점점 부드러워졌다. 젊은 날의 돌도 벨 것처럼 날 선 기운이 꺾인 대신 그의 시선은 한층 깊고 따스해졌다. <인생의 낮잠>은 그가 힘을 쭉 빼고 쓴 책 같다. 대단한 모험이나 엄청난 깨달음은 없다. 득도한 노승처럼 인생의 이면을 바닥까지 들여다보지만 지루하지 않다. 후지와라의 시선은 인간만을 향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아우른다. 덕분에 이 책에는 발리 섬의 개, 아일랜드의 소떼, 오키나와의 쥐가오리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밌는 에피소드는 ‘고양이 섬 탐방’ 편.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섬의 이야기를 들은 이 남자. 자칭 ‘인류퇴화연구소’ 소장인 친구와 고양이 섬을 찾아간다. ‘고양이는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이런 실없는 노래를 불러대면서 50이 다 된 남자 둘이 애들 소풍 가방을 메고서 말이다. 그렇게 찾아간 고양이 섬에는 고양이가 없었다. 섬이 육지와 연결된 후 주민들의 삶이 달라지면서 고양이가 살기 어려운 섬이 되어버린 탓이다. 겨우 한 마리 찾았나 싶었는데 그 ‘고양이의 등에는 피로와 고독감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동네 노인들의 ‘~카더라’ 통신에 기대어 어딘가에 있다는 ‘어부가 날생선을 휙휙 던져주는’ 고양이 섬을 찾아 다시 떠난다. 배 시간에 대기 위해 굽이굽이 해안 절벽길을 시속 90㎞로 죽음의 질주를 하면서. 그들은 고양이 섬을 찾았을까? 고양이 섬 탐방의 결말은 책을 읽어볼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찬연한 햇살,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

아수라 백작 - 마치 만화영화의 캐릭터처럼 얼굴색이 반반씩 다른 고양이 ‘아수라 백작’.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양이는 요물이라며 기피하는 분위기가 컸는데 정세는 반전되었다. 이제는 나만 고양이가 없다고 칭얼거리거나 집사로 간택당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넘칠 정도니. 내가 고양이라는 종에게 홀리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보름 동안 여행을 떠나는 친구가 제 고양이 비비를 부탁한 일이 계기였다. 지독히도 낯을 가리던 녀석은 매일 밥을 주고 똥을 치워준 나에게 마지막 날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까다로움과 도도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디선가 들은 말에 따르면 고양이는 인간에게 길든 적이 없단다. 우유를 얻어먹기 위해 길든 척할 뿐이라나. 고양이가 인간을 홀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통제되지 않는 야성 때문이 아닐까. 주인에게조차 무심하고, 수틀리면 바로 할퀴어대고, 가출도 당당하게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간다. 하염없이 늘어져 자다가 털이나 핥으며 보내는 일생이다. 낮잠은커녕 밤잠도 모자라고, 게으름은 죄악이 되는 게 인간의 삶이니 고양이가 부러울 수밖에. 이 바쁜 세상에 저렇게 사는 존재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되는 심정이랄까. 고양이는 어쩌면 인간이 꾸는 게으른 꿈일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매료되었지만 고양이를 거두거나 밥을 줄 정도의 책임감은 없는 나 같은 인간에게 이드라 섬은 최고였다. 사방 천지에 ‘개냥이’들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내가 머물던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였다. 저녁이면 그 계단에 앉아 포구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했다. 계단에 앉아 있으면 내가 ‘아수라 백작’이라 이름 붙인 고양이가 다가와 내 다리에 슬쩍슬쩍 몸을 비벼댔다. 녀석의 배를 긁어주며 함께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슬픔이나 눈물이 사라진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들에게는 인간이 일군 구상의 세계를 추상의 공간으로 변형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항구와 골목과 카페의 테이블과 담장과 묘지들. 인간이 치밀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그 공간에 고양이 한 마리만 끼어들면 목적성이 허물어져 버렸다. 원래의 목적이 사라진 공간을 채우는 건 기묘한 생동감이다. 이드라 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풍경은 오전 9시 무렵의 포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였다. 바다로 새벽 낚시를 나갔던 배들이 포구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어부들이 몰고 온 보트 앞에는 고양이들이 엄숙하고 단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피시즘(Fishism)에 빠진 생선 숭배교도들이었다. 고양이들은 마치 생선을 사러 온 손님인 양 점잖게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그 모습과 마주쳤을 때는 고양이들의 헛된 기다림이 안쓰러웠다. 내가 산 생선이라도 나눠줘야 하나 고민할 무렵, 어부가 작은 생선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이 달려들어 정어리를 낚아챘다. 녀석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어리를 뜯기 시작했다. 이 섬이야말로 후지와라 신야가 찾던 ‘어부가 날생선을 휙휙 던져주는 맘씨 좋은 섬’이었다. ‘고양이는 본디 넘쳐 나는 인간의 생활 냄새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동네 바보 같은 동물이며, 고양이가 많다는 것은 동네 바보를 거둘 만큼 마을에 활기가 넘쳐 난다는 얘기이자 주민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던 후지와라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빛이 찬연하게 쏟아지고, 그늘에서는 고양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섬에서 보낸 한 철은 ‘인생의 낮잠’ 같았다. ‘바깥세상 전체가 거대한 자궁으로 변해 버린 것 같은’ 장마의 계절이다. 귓전에 차오르는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빠져든다. 온 세상이 자는 고양이로 가득 차 있는 꿈이 내게도 찾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작은따옴표로 인용한 문장은 후지와라의 글에서 따왔다.)

 

김남희 | 도보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