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아이슬란드와 ‘스노우 블라인드’

수시로 사람을 덮치는 폭설과 어둠…이곳은 추리소설 속 마을 같다

by경향신문

최후의 지구 연상시키는 황량함 ‘처연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져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조연일 뿐…서로 뭉쳐서 의지하며 살아

수시로 사람을 덮치는 폭설과 어둠…이

누군가 드나든 흔적이 전혀 없는 밀실에서 일어난 범죄처럼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토록 심한 풍토병은 처음이었으니.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후 꽤나 오랫동안 앓았다. “아이슬란드 향수병”의 증상은 아이슬란드 음악을 들으며 아이슬란드에 관한 책을 읽거나 아이슬란드가 배경인 영화를 찾아보는 식이었다. 곁들여 아이슬란드 이끼차(야생 이끼를 말린 차인데 그곳의 공기를 담은 캔, 화산재를 넣은 병과 함께 아이슬란드에서 파는 기념품이었다)를 끓여 마시며 열렬하게 그 땅을 그리워했다. 고작 3주를 여행해놓고 두고 온 고향이라도 되는 듯이.

 

나는 우선 아이슬란드의 비현실적인 풍경에 사로잡혔다. 태초의 지구 혹은 최후의 지구를 연상시키는, 원형질의 풍경이었다. 무엇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을 것 같은 대지가 그곳에 있었다. 일조량 부족으로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빈 땅은 인공의 건축물에 가로막히지 않아 사방을 향해 열려 있었다. 어디에서나 지평선이 보였고 그 너머로는 바다나 화산, 혹은 빙하가 이어졌다. 황량하면서도 처연한 아름다움이었다. 그 텅 빈 풍경을 채우는 건 바람이었다. 바람은 모든 소리를 덮어버리며 불어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만든 음악을 들으면 어디에서나 광활한 벌판을 휘감아 도는 바람 소리가, 세상을 뒤덮으며 몰려오는 눈폭풍의 흔적이 느껴졌다.

 

시규어 로스나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을 들으며 아이슬란드의 산악 도로를 달리면 세계의 끝을 향해 가는 것 같았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쓸쓸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까마득하게 지워지고 오직 눈앞의 풍경과 그 풍경을 응시하는 나만 오롯이 남겨지곤 했다. 그토록 불안하고 우울한 풍경에 왜 끌리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는 지구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수도였다. 북위 64도에 북극점까지의 거리는 고작 2876㎞. 대한민국 크기와 비슷한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겨우 30만명 남짓인데 그 절반이 레이캬비크 부근에 몰려 살았다. 나머지는 ‘도대체 이런 곳에 집이 왜 있을까’ 싶은 곳에 흩어져 있었다.

수시로 사람을 덮치는 폭설과 어둠…이

아이슬란드 국토의 대부분은 빙하와 화산과 황무지와 산악지대.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 ‘관광’이라는 새로운 쓸모를 지니게 된 땅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인구는 희박해지고, 자연은 척박해졌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끌어안아야 하는 고독의 무게는 내 외로움 따위와는 전혀 다를 것 같았다.

 

기나긴 겨울이면 아예 해가 뜨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짧은 여름이면 백야가 이어지는 극단의 땅. 광합성이 삶의 필수조건인 나는 끝없이 눈이 내리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을 어떻게 견디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약·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한 컨설팅업체인 리커버리브랜즈(www.recoverybrands.com)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아이슬란드가 마약 오·남용에 따른 사망률 1위를 기록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날씨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완벽하게 구축된 듯 보이던 일상의 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인간의 의지 같은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지 궁금했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그 막막하도록 거친 자연이 풍기는 분위기에 사로잡혔지만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탈출했을지 모른다. 태양이 뜨지 않는 겨울도,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마을의 규모도, 날씨가 급변하면 갇히고 마는 지리적 폐쇄성도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 하얗게 뒤덮인 순백의 대지가 인간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곳에서 범죄라도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그 상황을 참아낼 수 있을까. 게다가 악천후로 마을이 고립되어 범인도 마을 사람들도 꼼짝할 수 없이 갇히게 된다면? 여행 내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질문들이었다.

수시로 사람을 덮치는 폭설과 어둠…이

나와 같은 의문을 품고 눈길을 걸어간 이가 있었다.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르 요나손의 추리소설 <스노우 블라인드>의 주인공인 젊은 경찰 아르 토르. 아이슬란드 최북단의 작은 마을 시클루 피요두르에서 반라의 여체가 발견되고 아르 토르는 폐소공포증과 싸우며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때마침 계속되는 눈폭풍은 마을을 외부와 단절시켜 범인도, 마을 주민들도 고립된 상태다.

 

수도에 거주하던 아르 토르가 시클루 피요두르로 이주하던 날, 마을과 외부를 잇는 유일한 터널로 들어서며 공포를 느끼는 장면은 내가 아이슬란드에서 겪은 교통사고와 겹쳐졌다. 우리는 사륜구동 차를 몰아 아이슬란드 최북단의 외딴 마을로 가고 있었다. 겨울이면 도로가 끊겨 마을이 거의 비는 곳이었다. 반년 가까이 이어지는 고립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주민 수십명만이 그곳에서 겨울을 난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한 건 마을을 두 시간 남짓 남겨놓은 지점이었다. 좁고 가파른 절벽길을 달리던 차가 빗물에 미끄러지면서 절벽을 들이받고 한 바퀴 돌아 바다로 추락했다. 차는 바다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채 멈췄다. 생과 사를 오가던 바늘이 생으로 기우는 순간, 긴급구조 번호를 눌렀다.

 

경찰의 대응은 신속했다. 먼저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주민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경찰이 우리에게 달려가 응급조치가 필요한지 살펴보라고 요청했단다. 담요와 뜨거운 물을 싣고 달려온 그들은 경찰차와 구급차가 올 때까지 우리를 돌봤다. 그 전날 머물렀던 마을 홀마빅은 사고 지점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져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니 이미 소문이 안개처럼 퍼진 후였다. ‘좁은 세상에서는 비밀들이 경악스러운 속도로 퍼져 나간다’던 아르 토르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비밀을 알아채 미안한 듯한 수줍은 태도와 적절한 배려로 우리를 맞았다. 동네의 수영장에 딸린 세탁실을 밤새 쓰도록 허락해주고,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을 무료로 연장해주고, 관광 안내소와 마법 박물관과 카페를 겸하는 곳에서는 우리가 좋아한 “라팔파라카카 케이크”를 서비스로 내줬다. 우리는 그들의 평화롭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뒤흔들며 등장한 낯설고 흥미로운 이방인들이었다. 주민들은 안 보는 척 세심히 우리를 관찰했고, 매번 지나치지 않은 배려를 베풀었다. 그들은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답게 어떤 원초적인 비애와 체념의 정서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은 차고 단단했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다.

 

수시로 사람을 덮치는 폭설과 어둠…이

장르 소설 마니아인 친구에 따르면 북유럽의 추리소설은 사회구조의 모순보다 인간 본연이 지닌 모순이나 불완전함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아이슬란드 누아르’의 거장으로 꼽히는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연작 소설 속 주인공 에를렌두르 형사도, 라그나르 요나손이 창조한 아르 토르도 저마다의 모순을 지닌 사람들이다. 두 작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아이슬란드가 지닌 공간적 특수성과 제약을 소설의 강력한 배경으로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범죄율이 낮은 나라로 꼽혀왔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더 나은 삶 조사’(Better Life Survey)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위기 시에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96%에 달해 38개 회원국 중 공동체 의존 비율이 두 번째로 높았고, 살인율은 세 번째로 낮았다. 지구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땅이니 인간 자체가 희귀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나라의 추리소설은 극단적인 자연환경이 부여하는 공간적 분위기가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스노우 블라인드>에서는 폭설과 어둠이 거의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순식간에 인간의 삶을 장악해 무기력하게 만들고 마는 자연의 힘이 몰아칠 때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나 나나 모두 결함투성이의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그런 유연함이 세계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여성 가톨릭 사제를 허용하고, 2010년에 이미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배경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아이슬란드에서는 누구나 예술가라는 말처럼 인구 1000명당 작가 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이 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만 하는 물리적 환경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가혹한 자연환경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하는 상황을 자주 만들어낸다. 대자연이 강력한 주연을 맡은 땅이기에 조연에 불과한 나약한 인간은 서로의 체온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소리 없이 쏟아져 세상을 장악해버리는 아이슬란드의 눈폭풍처럼 나는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사람들, 그들이 만든 음악과 문학에 사로잡혔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스노 블라인드’, 설맹 상태다.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이 매혹의 진짜 배후를 밝히는 길은 설원의 풍경 한가운데로 다시 한번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남희 도보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