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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최명애의 반려종 이야기

인간 대신 우주 생체실험…미국·소련 우주경쟁의 희생양

by경향신문

동물 우주비행사 ‘라이카’

인간 대신 우주 생체실험…미국·소련

1957년 11월3일. 자정을 갓 넘긴 시간이었지만 소련 서남부(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는 흥분과 긴장감이 돌았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의 발사일이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무사히 지구 궤도를 선회한 지 한 달 만이었다.

 

분주하게 발사를 준비하던 우주과학자 몇 명이 느닷없이 기지 내 카페테리아로 가더니 미리 주문해 둔 식사를 가져왔다. 수프, 메인 요리에 디저트까지 갖춘 3코스 정찬이었다. 그들은 식판을 들고 발사장 한쪽의 개에게로 다가갔다. 개는 캡슐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귀가 축 처진 순한 얼굴의 개.

 

개를 실은 캡슐은 인공위성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카자흐스탄의 11월 밤은 추웠다. 한 명이 온풍기에 호스를 연결해 캡슐 안으로 따뜻한 공기를 넣어 주었다. 연구원들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린 뒤 캡슐을 인공위성에 실었다. 캡슐은 로켓 최상부로 올려졌다. 마지막으로 해치를 닫기 전 기술자 예프게니 샤바로프가 개의 코에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여행 잘하렴.” 오전 5시30분42초.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됐다. 개를 실은 로켓은 빠른 속도로 지구 상공을 벗어났다. 별처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려진 개. 개의 이름은 라이카였다.

 

인간 대신 우주 생체실험…미국·소련

■ 우주비행사가 된 떠돌이개

 

모스크바 스타시티의 우주과학자들이 발견하기 전까지 라이카는 평범한 떠돌이개였다. 모스크바 시내의 쓰레기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차가운 다리 밑에서 잠을 청했다. 과학자들은 우주선에 태울 실험 대상으로 길거리개를 선호했다. 추위와 굶주림, 열악한 환경에 이미 적응돼 있어 낯선 우주 공간에도 상대적으로 잘 적응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암컷이어야 했다. 몸 구조상의 이유로 암컷이 우주복과 캡슐 안에 집어넣기 쉽기 때문이었다. 비좁은 로켓 공간을 감안하면 몸집이 너무 큰 것도 곤란했다.

 

라이카는 이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 개였다. 몸무게 5㎏의 세 살짜리 암컷 떠돌이개. 허스키와 테리어의 잡종쯤 돼보였다. 스타시티의 개 훈련사들은 이 개를 ‘조그만 곱슬이’라는 뜻의 ‘쿠드랴브카’라고 불렀지만, 곧 ‘라이카’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라이카는 허스키류의 잡종을 가리키는 러시아어다.

 

라이카가 스푸트니크 2호의 동물 탑승객으로 선발된 것은 비행을 열흘 앞둔 10월 말이었다.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에 고무된 소련 당국은 10월혁명 40주년 기념일인 11월6일에 맞춰 한 차례 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로 결정했다. 소련 우주공학 기술의 우월성을 전 세계에, 특히 미국에 재확인시키기 위해서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에 필적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포착된 것이 생명체였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우주 비행. 스타시티의 과학자들은 개의 우주선 탑승을 위해 수년째 떠돌이개를 확보해 훈련을 시켜오고 있었다. 그 일정을 앞당겨야 했다. 강도 높은 우주비행 적응 훈련을 받은 세 마리 가운데 라이카가 낙점됐다. 성질이 온순하고 차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스푸트니크 2호에는 라이카의 생명을 유지하고 관측할 각종 장비가 실렸다. 탄소 흡입기, 산소 발생기, 실내 온도가 15도를 넘어서면 자동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팬과 함께 자동 음식공급 장치도 탑재됐다. 필요한 영양소를 농축해 젤라틴 형태로 굳힌 우주 식량이었다. 라이카의 맥박, 호흡, 심장박동, 움직임 등을 측정할 생체계측장치도 실렸다. 개의 뒷다리 사이에는 배설물을 처리할 봉지가 설치됐다. 당시 과학기술이 확보할 수 있는 인공위성 내 공간은 턱없이 비좁았다. 라이카는 일어서거나 앉을 수는 있지만 몸을 앞뒤로 돌릴 수는 없었다.

 

발사는 성공적이었다. 스푸트니크 2호는 단숨에 1500㎞를 날아올라 성공적으로 위성 궤도에 안착했다. 지구 선회 주기는 103분.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의 모니터에는 라이카의 생체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됐다. 발사 직후 고도가 급상승하는 동안 라이카의 심장박동과 호흡은 급격히 상승했다. 심장박동은 2배로 증가했고, 호흡은 3~4배로 가빠졌다. 인공위성이 궤도에 안착하자 라이카는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다소 흥분한 상태였지만, 음식 공급장치를 통해 먹이도 먹는 모습을 보였다. 지상의 과학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캡슐 내부의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발사 추진체 일부가 계획대로 분리되지 못해 온도 유지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캡슐 내부의 온도는 40도까지 치솟았다. 습도도 가파르게 높아졌다. 인공위성이 지구를 3바퀴 돌고 4바퀴째에 접어들자, 라이카의 생체 신호는 더 이상 수신되지 않았다. 스푸트니크 2호 발사에 참여한 과학자 드미트리 마라셴코프는 2002년 세계 우주과학 회의에서 “고열과 스트레스로 라이카는 비행 5~7시간 사이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신뢰할 만한 온도 조절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스푸트니크 2호는 라이카의 사체를 실은 채 그 뒤로도 5개월 동안 지구를 2570바퀴 돈 뒤 이듬해 봄 지구로 돌아왔다.

인간 대신 우주 생체실험…미국·소련

■ 동물을 통한 냉전의 대리전

 

라이카가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돈 최초의 동물이긴 하지만, 우주로 쏘아 올려진 최초의 생명체는 아니다.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개, 침팬지, 원숭이, 쥐, 토끼 등 다양한 동물을 우주선에 탑승시켰다. 인간의 우주선 탑승을 목표로, 우주 환경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동물실험’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지만, 많은 수는 라이카처럼 우주선 안에서 죽거나, 낙하산 실패로 추락하거나, 폭발 사고로 먼지가 됐다.

 

우주 공간을 여행한 최초의 생명체는 초파리였다. 1947년 2월 미국은 초파리를 탑재한 V-2 로켓을 109㎞ 상공으로 쏘아 올렸다. 초파리는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미국은 잇달아 원숭이를 상공으로 쏘아 올렸지만 1959년에야 비로소 두 마리를 우주 공간에서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의 동물 우주비행사 가운데 가장 유명한 동물은 침팬지 햄이다. 햄은 1961년 1월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6분30초를 머무른 뒤 지구로 돌아왔다. 무사히 우주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햄이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사진은 ‘라이프’지에도 실린 ‘세기의 명장면’이 됐다.

 

동물 우주비행 기술은 소련이 우월했다. 1950년대 소련은 개 수십마리를 로켓에 탑승시켜 위성 궤도 가까이 쏘아 올렸다. 라이카가 처음으로 위성 궤도를 한 바퀴 돈 뒤, 12마리가 추가로 우주로 나갔다. 이 중 8마리가 살아서 돌아왔다. 1960년 8월 벨카와 스트렐카라는 개 두 마리는 스푸트니크 5호에 실려 우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지구로 귀환했다. 스트렐카는 우주 환경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는 듯 이듬해 새끼 6마리를 낳는 데 성공한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이 중 한 마리를 막 당선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에게 선물로 보냈다. 동서 냉전 중 잠깐 찾아온 화해모드의 가교 역할을 개들이 수행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사 경쟁은 냉전의 대리전이었다. 그 대리전의 최전선에는 동물 우주비행사들이 있었다.

 

동물 우주비행사의 시대는 1961년 4월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을 탐사하면서 막을 내린다. 가가린에 앞서 체르노슈카와 즈베즈도슈카라는 개 두 마리가 그가 탈 예정인 보스토크 1호에 먼저 탑승해 우주 공간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가가린은 수년간 우주비행사로 훈련을 받았지만, 첫 비행은 동물 우주비행과 마찬가지로 지상 기지가 조종했다. 개 우주비행사를 사람 우주비행사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가가린은 “내가 마지막 개 우주비행사인지, 최초의 인류 우주비행사인지 모르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 대신 우주 생체실험…미국·소련

■ 과학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우주로 영원히 떠난 개. 라이카는 서구 대중문화에서 탐험, 희생, 고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라이카의 이름을 딴 음악 밴드만 셋이다. 그러나 낭만적 이미지의 이면에는 개체의 고통이 있었다. 라이카와 동물 우주비행사들은 고강도의 비행 적응훈련을 받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떠돌이개를 좁고 밀폐된 우주선 공간에서 며칠 동안 꼼짝 못하고 지내게 하려면 엄격한 훈련이 필요했다. 스타시티의 과학자들은 개를 우리에 가두고, 우리의 크기를 차츰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우리에 갇힌 개들은 며칠 동안 대소변을 못 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발사 진동과 소음을 견디는 것도 관건이었다. 개를 원심분리기에 넣거나 회전판 위에 놓고 돌리거나, 발사 소음을 재현한 기계 속에 넣기도 했다. 벨카와 스트렐카의 경우에는 발사 적응 연습을 위해 개를 투석기 형태의 장치에 넣고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고 한다. 이 같은 훈련이 실시될 때면 개들의 맥박은 급격히 빨라지고 혈압은 가파르게 치솟곤 했다.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디고 우주선에 탑승한 개들의 운명은 죽거나, 운이 좋으면 살아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라이카의 경우엔 수거 계획이 아예 없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예정된 과학 탐사가 끝나는 7일째 전력이 바닥날 예정이었다. 라이카의 생명 유지장치도 끊어지는 것이다. 소련 당국은 음식 자동공급 장치의 마지막에 독이 든 먹이를 넣어서 라이카를 안락사시킬 계획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이카는 그보다 훨씬 먼저 죽고 말았다.

 

라이카의 비행 당시 이미 ‘동물 우주비행사’의 복지 문제가 불거졌다. 런던과 뉴욕의 동물운동가들은 스푸트니크 2호의 비행기간 동안 소련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동물들이 안쓰럽기는 소련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이카의 훈련사 중 한 명이었던 블라디미르 야즈도브스키는 훈련이 막바지로 접어들 즈음 라이카를 집으로 데려와 아이들과 놀게 했다. 그는 후일 회고록에서 “라이카는 참하고 매력적인 개”라며 “뭔가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었다. 이 개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고 쓰기도 했다.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의 기술자들도 라이카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라이카에게 ‘최후의 만찬’을 대접하고, 따뜻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라이카의 고통스러운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그 운명을 막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다. 라이카의 ‘희생’이 과학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인류의 번영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동물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화장품 독성 실험을 위해, 의약품 성능 실험을 위해 수천,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실에서 평생 고통을 겪다 한 줌의 먼지가 된다. 라이카의 훈련을 맡았던 올레그 가젠코는 40여년이 지난 1998년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일이 유감스럽다. 라이카 실험으로 얻은 성과가 그 개의 죽음을 정당화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을까.”

 

▶필자 최명애

인간 대신 우주 생체실험…미국·소련

인간과 동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문화생태지리학자다.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환경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앞서 경향신문에서 9년간 기자로 일했다.

 

<최명애 |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박사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