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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1999년 “여자가 뭔 공부냐”, 2017년 “여자애는 분홍색”

by경향신문

민우회 ‘성차별 보고서’

1999년 “여자가 뭔 공부냐”, 2

“미스 김, 커피 한 잔!”(1999년, 직장에서),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파란색.”(2017년, 유치원에서)

 

여성들이 성차별로 인식하는 범위가 과거에 비해 넓어지고 있다. 사회 발전으로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는 28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회관에서 ‘성차별 보고서’ 토론회를 열고 2017년과 1999년에 실시된 성차별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해 발표했다. 2017년 조사는 여성 1257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거쳐 4563건의 사례를 취합했고, 1999년에는 450명을 대상으로 2050건을 수집했다.

 

민우회는 보고서에서 두 기간 동안 성차별은 여전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식의 노골적 표현이 주로 성차별로 인식됐다면, 이제는 “여자는 국어를 좋아하고 남자는 수학을 잘한다”와 같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것까지 차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9년 조사에서는 “명절, 여자에겐 중노동, 남자에겐 쉬는 날” 등의 명절·제사상 성차별이 취합 건수 1위에 올랐다. “아들 하나 열 딸 안 부럽다”는 양육상의 성차별(2위), “여자의 NO는 YES”라는 공공장소에서의 노골적인 성희롱(3위), “여자가 웬 운전이냐”는 식의 도로상에서의 성차별(4위), “여자가 공부는 뭐하러 하냐”는 수업에서의 성차별(5위) 등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차별이 많았다.

 

올해 수집된 사례에서도 “기르던 고양이가 아파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초저녁부터 여자랑 고양이를 태우네’라고 불평했다” 등처럼 18년 전과 비슷한 사례는 여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성차별로 지적받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성차별로 인식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조사의 경우 1위는 “오빠 밥 좀 챙겨줘라”는 식의 가족관계에서의 성차별이다.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라는 식의 학교에서의 성차별(3위), “며느리는 ‘싸가지’ 없고, 시어머니는 표독스럽게” 다루는 대중매체에서의 성차별(5위), “살만 빼면 예쁠 것 같은데”라는 식의 친밀한 관계에서의 외모 지적(6위), “뒤풀이 때 여자들은 남자들 사이사이 앉으라”는 커뮤니티에서의 성차별(7위) 등의 순이다.

 

김희영 민우회 성평등팀장은 “이제 여성들은 성별 고정관념이 실제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자각했다”고 분석했다. ‘여성은 잘 웃는다’ 같은 관념이 일터에서 감정노동 요구로 이어지고, ‘남자는 축구를 잘하고 여자는 피구를 잘한다’는 생각이 운동장을 남자 청소년에게 내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도록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남아선호사상 대신 ‘딸바보’라는 말이 유행하는 등 사회적 분위가 바뀌고 있어 여성상위시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가 설정한 여성다움에 자신을 꿰맞추기를 강요받으면서 여성들은 ‘그동안 과연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가’라고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교수님이 ‘미래에 결혼 안 할 사람’이라는 질문을 하셨다. 나와 옆에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는데 나는 ‘저출산 사회에서 애를 가지지 않으려는 파렴치한 여성’이라는 말을 들었고, 남자는 ‘자신의 꿈을 꾸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10대), “대기업 협력업체 입사 후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직영 남자 적당히 꼬시면 인생 편다’는 말이었다”(20대), “‘아줌마’라는 말이 욕처럼 쓰인다”(50대 여성)…. 연령을 불문하고 여성들은 일상에서 겪는 차별을 쏟아냈다.

 

성차별 장소 기준으로 분류한 결과 여성들은 가족관계에서(23%),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15%), 학교(14%)와 일터(13%) 등에서 두루 성차별을 겪고 있었다. 가족관계에서는 특히 가사·돌봄노동을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사례가 많았고(379건), 도로 위에서는 운전 시 여성에게 폭언·위협·무시·비하하는 경우(299건)가 많았다.

 

외모 지적은 가장 많이 등장한 주제였다. “여자는 살찐 거 별로야” “살집이 좀 있어야 보기 좋지 너무 마르면…” “50킬로 넘으면 그게 여자냐” 등 일상에서 끊임없이 몸매나 얼굴을 평가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여성들은 토로했다.‘한국은 성평등 한 국가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1257명 가운데 1169명(93%)이 ‘아니요’라고 답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