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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이것은 정당방위입니까?

by경향신문

1)방어행위여야 한다. 2)상대를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 3)먼저 폭력을 행사하면 안된다. 4)가해자보다 더 심한 폭력은 안된다. 5)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면 안된다. 6)상대가 때리는 것을 그친 뒤 폭력은 안된다. 7)상대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심하면 안된다. 8)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히면 안된다.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한 웹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웹툰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지켜야 할 조건을 위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웹툰 주인공은 흉기를 들고 침입한 강도를 제압하기에 앞서 위 사항들을 전부 준수하려다가 결국 강도를 눈 앞에서 놓치고 맙니다. 이 웹툰은 정당방위가 법적으로 인정받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정당방위입니까?

최근 검찰이 사건 발생 후 2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해 양모씨(38)를 불기소 처분한 일이 보도되면서 온라인엔 다시 정당방위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예비신부 살해한 군인 격투 끝에 죽인 30대, 2년 만에 '정당방위' 인정)

 

2015년 9월 군인 장모씨(당시 20)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러 집을 무단침입했고, 마지막에 양씨 집에 들어가 자고 있던 양씨의 예비신부에게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양씨는 예비신부가 당한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장씨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습니다. 양씨가 흉기를 빼앗아 휘둘렀고, 장씨는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애초 이 행위를 정당방위로 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검찰은 유족 면담·검찰청 의료자문위원회 제언 등을 바탕으로 2년 만에 정당방위를 결정했습니다.

 

정당방위를 두고 논란은 반복됐습니다. 2014년 3월 집안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건조대로 여러차례 때려 뇌사상태에 빠뜨린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1심 법원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이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도둑 때려 숨지게 한 집주인 집행유예 확정…대법 “정당방위 아니다”) 그해 10월엔 집에서 잠을 자던 중 갑자기 들어와 머리를 밟는 등 폭행을 가한 60대에게 흉기로 여러차례 상해를 입힌 50대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역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무단침입해 머리 밟자 흉기 휘둘러... 법원 "정당방위 아냐")

 

그렇다면 사법부가 인정하는 정당방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일단 관련 법부터 보겠습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결국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행위를 한 ‘상당한 이유’와, 그 행위가 ‘과잉방위’라고 할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는 그 당시의 ‘정황’이 이를 용인할 수 있는지를 세세하게 살펴야 합니다.

 

‘무단침입 군인’ 사건의 경우엔 1)침입한 군인이 먼저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고, 2)이후에도 계속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상황이었으며, 3)흉기를 사용하는 것 밖엔 다른 대처방법을 강구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 등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도둑 뇌사’ 사건에서 법원은 일관되게 1)집에 침입한 도둑에게 가한 첫 폭행은 방위행위로 인정했으나, 2)그 뒤에 도둑이 도망가려했거나 이미 쓰러졌는데도 연달아 빨래건조대 등으로 폭행한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정당방위입니까?

두 사건 모두 법적으로 어느 정도 과잉방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이처럼 사건을 여러 층위에서 들여다봐야 하다보니 사법부의 판단이 변호인 혹은 시민의 ‘법감정’과 꼭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 법조계에선 ‘법질서 수호’와 ‘자기보호’ 중 어느 측면을 더 중히 여길지를 두고 이론적 논쟁을 벌였습니다.

 

정당방위 성립요건에 대해 엄격한 해석을 주문하는 쪽에서는 방위행위를 한 사람에게도 법질서 보호 임무를 강조하는 편입니다. “(정당방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면) 엄연히 발생한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서울 지역 한 판사)는 것입니다.

 

반면 사법부가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자기보호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정당방위를 원칙적으로 인정하되 다만 정당방위를 빙자한 폭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정당방위 관련 법 조항에 나오는 ‘상당한 이유’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 제시 등을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습니다. (김병수 부산대학교 법학연구소 연구교수,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방안, 형사정책연구 25(4), 2014)

 

주로 여성이 대상이 되는 가정폭력에 대해선 피해자 특성(이른바 ‘매맞는 아내증후군’)을 고려해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성계 등에서 꾸준히 제기해왔습니다. 특히 상습적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남편을 살해하는 것과 유사한 사건이 나올 때마다 이것을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단독]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 살해한 여성)

이것은 정당방위입니까?

그렇다면 살인까지 이르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쳐두고, 주먹다짐과 같은 일상적인 ‘싸움’에서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대개 판례는 싸움을 보통 공격과 방어를 서로 주고 받는 상황으로 보기 때문에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실질적으로 일방적 폭행으로부터 자신을 방위하기 위한 경우, 가령 폭행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힌 사례 등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판례가 있습니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