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투구 쓴 평창 총알맨, 외강내유의 현대인 욕망의 껍데기 형상화”

by경향신문

“외설적, 올림픽과 무관” 지적에

일본 언론의 “모루겠소요” 보도까지…

김지현 작가, 뒤늦게 화제 된 설치작품을 말하다

2013년 알펜시아 리조트에 설치…

4대강사업·신자유주의 비판 등

우리 시대 자화상 그린 작업 해와

“투구 쓴 평창 총알맨, 외강내유의

2013년 평창 비엔날레 당시 알펜시아 리조트에 설치한 ‘총알맨’(원작은 2008). 김지현 제공

조각가 김지현(50)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즈음 느닷없는 조명을 받았다. 2013년 알펜시아 평창리조트에 설치한 ‘총알맨’이 뒤늦게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스포츠가 올림픽 메인 프레스센터 주변의 이 작품을 보도하면서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국어 발음을 딴 ‘모루겠소요’라는 제목으로 퍼져갔다. 자원 봉사자들이 도쿄 스포츠 취재진에게 “(무슨 작품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바람에 퍼진 작품 이름이다. ‘평창 총알맨’ ‘김지현 총알맨’은 올림픽 개회식 전후 한국 포털 검색어에도 올랐다.

 

“논의를 해야 하는데, 논란이 돼서….” 김지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작품 비평보다 화제·논란이 부각돼서 하는 말이었다. 언뜻 남성 성기 모양으로 보이는 작품을 두고 외설스럽다느니, 올림픽과 무슨 관계니 하는 말이 많았다. 설치 시기·작품 취지에 관한 잘못된 정보도 많이 돈다. 이상한 조형물을 만든 괴짜 작가 이미지까지 형성됐다.

 

지난 11일 김지현과 통화했다. “논란이 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외설적으로) 보는 사람도, (설치 작품의) 이면을 보고 사색하는 사람도 있겠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작가는 작품 개념이 온전하게 읽히길 바라죠. 그런데 강요할 순 없잖아요.”

 

김지현은 2008년 개인전 때 발표한 ‘총알맨’을 2013년 평창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알펜시아리조트 작품은 비엔날레 이후 강원문화재단이 사들인 것이다.

 

김지현은 “총알맨은 일종의 욕망의 껍데기 같은 형상”이라고 말한다. 우람한 남성의 몸과 둥그렇고 매끄러운 총알 이미지의 투구는 가부장적·사회적 권력과 남성성을 뜻한다. 외면은 강하지만 내면은 나약하다. 투구는 근육질에 숨겨진 현대인의 욕망과 내면의 혼란을 가리킨다.

 

김지현은 총알맨 퍼포먼스와 비디오 설치도 작업했다. 수명의 남성들에게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은 채 투구를 씌워 지하 공간에 밀어 넣었다. “출구를 찾아서 나와라.” 투구로 무장했지만 전혀 앞을 볼 수 없어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인간 자화상을 그려내려고 했다.

 

‘총알’과 ‘남근’의 중의적 이미지를 차용했지만, ‘총알맨’ 연작은 남성성 과시와는 거리가 멀다. 총알맨은 ‘미화된 폭력성’을 비판한다. ‘남성성’은 여러 젠더가 사는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몸에 덧씌운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페미니즘과 연결될 수도 있다고 했다.

“투구 쓴 평창 총알맨, 외강내유의

2006년 청계천 마장 2교 부근에 설치한 ‘36.5도 인간 군상’ 연작 중 ‘Dream of Returning’.

김지현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조각·설치·사진·영상·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로 표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3년 평창 비엔날레 때 ‘36.5도 군상’도 내놓았다. 인체를 평균 체온인 36.5도 기울기로 설치한 이 작품은 “수치가 주는 획일성, 기울기가 주는 이중적(속도와 위기를 동시에 지닌) 긴장감”으로 이 시대 인간상을 표현한다. 인간은 각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2016년 ‘프로메테우스 증후군’에서 인간과 지식의 관계를 고민한다. 총알맨이 불을 어깨에 둘러멘 모양의 작품에서 불은 지금 엘리트들이 다음 세대 엘리트에게 전달하는 지식을 뜻한다.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전개되는 개발 논리가 빚어내는 수많은 갈등”과 “그 속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프로메테우스”, “(나의) 지식이 사회를 계몽할 것이라는 욕망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자신”을 뜻한다.

 

2017년 기획전 ‘녹·색·공·조’에서 사회 참여에 관한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끌고 나온다. 4대강사업과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설치 작품 2개를 내놓았다. ‘녹색향수’(Green nostalgia)에서 철제탑 꼭대기의 이명박이 녹색의 긴 혀를 내두른다. 녹색 광장엔 지식인을 표상하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쓰러져 있다. 그의 손에는 ‘유토피아’라고 적힌 쪽지가 쥐여져 있다.

“투구 쓴 평창 총알맨, 외강내유의

2017년 기획전 ‘녹·색·공·조’에 출품한 ‘Green Nostalgia’.

김지현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자기비판이다. 그는 “(4대강사업처럼) 어떤 지식을 적용해 문제가 생겨도 사람들은 별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게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다. 반성한다”고 했다. 또 다른 설치 ‘녹색공조’에서 녹색 토사물을 쏟아내는 이명박 맞은편에 자신의 얼굴을 빚어 넣은 것도 성찰과 반성의 뜻이었다. ‘테이블 위의 미사여구’(2016)에서 화려한 수사로 유토피아를 보여주겠다고 현혹하는 남북한 위정자들의 두상 사이에 자신의 두상도 넣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알량함으로 그릇된 현실과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공모하는 자아에 대한 조소”를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김지현 특유의 인체 작업은 서울대 조소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 메이슨 그로스 예술대로 유학 갔을 때 비롯됐다. 그는 9·11 사태를 목격했다. “인간은 무엇이고 내가 여기 왜 서 있는가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고민했다”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문제, 개인이 부딪치는 사회·문화적 문제를 여러 재료와 행동으로 표현하는 과정에 인체 작업이 있다고 김지현은 말한다.

 

김지현은 최근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다. 다시 힘을 내야 하는 어려운 시기에 자기 작업이 논란이 됐다. “제 작품처럼 자기비판을 통한 작업도 있고, 대중에게 인기 많은 작업도 있습니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람객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되 작품 맥락을 좀 더 이해하기 바랄 뿐입니다.” 논란·화제에 개의치 않고 자기 갈 길은 계속 가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