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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정리뉴스

권력기관 개혁 앞둔
검·경 수장들의 ‘인권 행보’

by경향신문

요즘 검찰과 경찰의 수장들이 인권 행보로 바쁜 모습입니다. 지난 20일에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촉발제가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피해자인 고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씨를 부산까지 직접 찾아가 사과했습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1일 변호사들과 함께 서울 광진경찰서를 방문해 인권친화적으로 개선된 유치장을 살펴보고 경찰수사 시 인권강화 방안에 대해 변호사들과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앞서 지난 15일 이 청장은 집회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에게 사과를 하러 전남 보성의 백 농민 집을 방문했지만 유족들이 피해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권력기관 개혁 앞둔 검·경 수장들의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0일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씨를 만나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과 경찰은 지난해 자체 개혁을 위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검찰개혁위원회와 경찰개혁위원회도 각각 만들었습니다. 검·경의 수장들이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인권친화적인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하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경쟁적으로 이런 행보를 보이는 데는 정부가 추진중인 검찰개혁과 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개편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와 개운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권력기관 개편은 경찰을 위한 것도, 검찰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관련기사 : ‘개혁위’ 제각각 띄우는 법무부·검찰·경찰

 

인권행보에 먼저 포문을 연 데는 경찰입니다. 경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16일 진보 성향의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경찰개혁위 발족식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가 사망했던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경찰 총수가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해 공식 사과를 한 것은 처음이어서 문재인 정부 들어 달라진 경찰의 모습을 실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권력기관 개혁 앞둔 검·경 수장들의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해 6월16일 서울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후 경찰개혁위는 집회·시위 때 물대포와 차벽 사용을 금지하는 원칙을 세우고 경찰 비리를 조사하는 시민통제 외부기구를 만드는 등 파격적인 개혁안을 다수 내놓았고 경찰은 이를 대부분 수용키로 했습니다.

 

경찰은 경찰개혁 뿐만 아니라 과거사 반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25일 과거 경찰의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기구인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한 것입니다. 이 위원회에서는 백남기 농민 사건을 비롯해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진압,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자 건설 반대 진압,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용산참사 등에서 경찰권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우선 조사 중에 있습니다. 특히 진상조사위 사무실을 서울 남용동에 있는 경찰청인권센터에 마련됐는데, 이곳은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 자리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인권경찰로 새로 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관련기사 : 경찰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출범···백남기·밀양송전탑·강정마을·쌍용차·용산참사 조사

 

검찰도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사 반성과 인권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8월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리고 유족 등을 만나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경찰과 국가정보원, 국방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나설 때도 유독 끄떡하지 않던 검찰이 드디어 ‘과거사 사과’를 한 것입니다.

 

검찰은 단순히 과거사에 대한 사과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태영호 납북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 과거 검찰이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받아온 시국사건 6건에 대해 법원에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보통 간첩조작 사건이나 고문 사건 등 과거사 사건 등의 재심 청구는 피해자들이 하기 마련이고 검찰은 이를 방어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검찰이 나서 이런 사건들의 수사와 판결이 잘못됐으니 재심을 해달라고 청구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재심 과정에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불가피한데도 말입니다.

 

검찰은 또 지난해 9월 법조계 원로와 교수·재야 변호사 등 외부 인사가 대거 참여하는 개혁 추진기구인 검찰개혁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위원장에는 진보적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이 맡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검찰개혁위 출범…위원장에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검·경이 이처럼 인권행보에 나서는 것은 사실 정부가 추진중인 검찰개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출범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본격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개혁들에는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불기소권까지 포함) 등을 모두 갖고 있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을 축소하거나 경찰로 이전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자신들이 현재 갖고 있는 권한의 축소를 최소화하려 하고, 경찰은 최대한으로 많은 권한을 가져 오려는 조직의 논리가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조직이 이러저러한 막강한 권한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물론 정권과 국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권친화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권력기관 개혁 앞둔 검·경 수장들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월14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개혁을 놓고 검찰 내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데로 다 진행되면 “검찰은 망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경찰의 숙원을 풀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양 기관이 국민들보다는 자신들의 조직을 염두에 두고 검찰개혁을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관련기사 : [권력기구 개편]검찰 ‘1차 수사권’ 경찰로 대폭 넘긴다

 

현재 검찰개혁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의 반대 등으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검·경의 이해관계에 정치권의 정치적 의도까지 개입되면 검찰개혁이 산으로 가거나 또다시 흐지브지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정치권이든 국민들이 복리증진을 최우선에 두고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준기 기자 jk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