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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패키지여행 갔는데
인솔자가 되라고?

by경향신문

강모씨는 최근 국내 최대 여행사 중 한 곳을 통해 중국 장가계 패키지 여행을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현지에서 만난 조선족 가이드로부터 가짜 인솔자 행세를 하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말이 부탁이지 강제나 다름없었다. 가이드는 강씨의 사전 허락도 없이 이미 그의 여권사진을 도용해 가짜 위조자격증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바로 ‘국외여행 인솔자 자격인정증(TC)’이었다. 위조자격증은 강씨의 사진과 이름을 제외하고는 전부 가짜였다. 주민등록번호부터 출신대학, 자격증 발행일 등이 모두 거짓으로 기재돼 있었다. 강씨는 “이게 뭐냐”고 따져물었지만 가이드는 “여행 내내 이것을 목에 걸고 다녀라”고 했다. 강씨가 “왜 이런 것을 내가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느냐”고 하니 가이드는 다른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 팀들을 가리키며 “원래 패키지 관광을 오면 한 명은 이것을 차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같은 지역을 여행 온 다른 팀들 가운데 한 명은 전부 강씨와 같은 TC를 목에 걸고 있었다. 가이드가 TC를 준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 갔는데 인솔자가 되라고?

국내 여행사에 항의하니까 현금 보상

 

패키지 여행 관광객들을 인솔하는 역할을 하는 국제 인솔자들은 모든 입장료가 무료다. 가이드들은 이 점을 노렸다. 15~30명가량의 패키지 여행객들은 인솔자가 최대 2명까지 배정될 수 있다. 한 명의 가이드가 패키지팀을 관리하면서 이 중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을 찍어 ‘가짜 인솔자’로 둔갑시킨 뒤 이 사람이 이미 지급했거나 지급할 입장료를 모두 개인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강씨가 3박4일 동안 입장료로 지급한 비용은 한화 20만원가량이었다. 선택관광을 모두 할 경우 최대 40만원까지 가이드가 가져갈 수 있었다. 강씨는 일정 내내 위조자격증을 갖고 다니면서 매표소 앞에서 매번 이 자격증을 제시해야 했다. 또한 다른 일행들이 모두 들어간 후에야 마지막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여행 내내 인솔자 행세를 한 셈이다. 강씨는 “가이드에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금세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식으로 대해 더 이상 항의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3박4일 가이드 비용으로 이미 1인당 미화 40달러를 현지에서 받은 상태였다. 패키지 여행에 참가한 인원은 16명이었다. 강씨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계약을 맺었던 여행사 대리점에 항의했다. 대리점 측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현금 20만원을 이체했다. 강씨는 “나와 같은 위조자격증을 매고 있는 여행객들을 많이 봤는데 매번 이런 식으로 항의하면 돈을 주고, 항의하지 않으면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패키지 여행상품이 늘어나면서 각종 사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외여행 인솔자 자격증을 위조해 입장료를 편취한 사기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명백히 공문서 위조 및 사기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속할 법이 없다는 데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현재 관광진흥법상 국외여행 인솔자 자격증 위·변조 및 오·남용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며 “적발이 돼도 처벌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여행업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위탁 받아 관리하는 ‘국외여행 인솔자’는 내국인의 해외관광을 인솔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행사가 기획하고 주최하는 단체관광에 동행해 여행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국외여행 인솔자가 되기 위해서는 협회가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취득자의 국적은 상관없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일정 교육만 이수하면 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외 6만9000여명이 이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딸 수 있는 자격증인 셈이다. 이 자격증은 이미 한때 위조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여행업협회 관계자는 “위조문제가 한 차례 있었는데 그 이후(2011년) 코팅 형태가 아닌 홀로그램이 들어간 카드 형태로 바꿔 현재는 접수된 위조사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카드 형태로 바꾼 이후 기존 자격증 소지자들에게 ‘카드형으로 전환하라’고 여러 차례 알렸지만 여전히 2011년 이전 자격증을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중국 현지 가이드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짜 자격증은 바로 2011년 이전에 만들어진 코팅형 자격증이다.

 

패키지여행 갔는데 인솔자가 되라고?

 

물론 중국 현지인들이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더라도 국내 여행사들이 철저히 관리·감독을 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몰랐던 일이고 이것은 연합상품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실제 중국에서 벌어지는 위조자격증 사기는 대부분 소위 ‘연합상품’이라 일컫는 패키지 관광에서 벌어지고 있다. 연합상품이란 소규모 여행업체에서 특정 지역에 대한 관광상품을 만들어내면 국내 여행사들이 대리점이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계약 대행을 해주는 것으로, 국내 여행사들은 이 과정에서 연합상품을 제작한 업체에 일종의 계약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해외 패키지 여행을 원하는 내국인이 국내에 잘 알려진 유명 여행사를 통해 계약을 맺어도 실제 이 상품들이 전부 각 여행사들이 자체 개발한 상품은 아닌 셈이다.

 

명백한 공문서 위조, 처벌 규정 없어

 

관리·감독 또한 허술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연합상품이 여행지 현지 제작 상품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벌어지는 각종 물건 강매 및 입장료 편취 등의 불법행위는 피해자들의 신고가 없는 한 적발하기도 어렵다. 같은 일정의 동일한 상품인데도 여행사마다 가격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터키 패키지 관광을 다녀온 김혜선씨(62)는 “나는 A업체를 통해 계약을 했는데 공항에 가보니 B, C, D여행사를 통해 온 사람들과 8박9일 동안 함께 여행을 다녀야 했다”면서 “화가 났던 건 나는 400만원 가까이 주고 왔는데 다른 일행은 나보다 50만원이나 적게 주고 왔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귀국 후 여행사에 항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각 여행사마다 프로모션이나 이벤트가 제각각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연합상품은 계약서에 ‘연합’이라는 문구를 기재해야 한다. 그러나 60~70대 여행객들은 여행사를 통해 연합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해당 상품이 여행사 자체 제작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가 어렵다. 겉으로는 국내 굴지의 유명 여행사가 진행하는 패키지 상품 같지만 실상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이용해 소규모 여행업체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아 챙기며 이름장사만 하는 셈이다.

 

한편 ㄱ여행사는 <주간경향>의 취재가 들어간 직후인 지난 11일부터 해당 지역 연합상품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ㄱ여행사 영업총괄 관계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른 여행사들과 함께 연합상품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겠다”면서 “현지에 본사 직원을 파견해 자체 확인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13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과 ㄱ여행사 측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내용을 한국여행업협회에 전파한 상태”라며 “협회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 회원사에 안내문을 발송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