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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6명 장기기증 기석이,
부모의 긴 법정싸움

by경향신문

병원-환자 간의 정보 비대칭…“4시간 밝히려고 7년 싸웠다” 

7년 전인 2011년 12월 4일 당시 고등학교 1학년 김기석군(16·사진)은 세상을 떠나면서 6명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했다. 장기기증 소식은 많은 매체들에 미담으로 보도됐다. 김군의 아버지 김태현씨(57)는 “내가 지금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기석이가 6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김씨는 “멀쩡하던 내 아들이 왜 갑자기 쓰러져 다시는 깨어날 수 없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는 2013년 병원 재단을 상대로 기나긴 소송을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소송은 전부 다 했다. 결과는 원고 전부패소였다. 소송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김씨는 하던 무역업도 접었다. 온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은 2015년 소송비용을 대기 위해 처분했다. 인지세부터 각종 감정료로 수천만 원이 깨졌다. 김씨와 부인은 현재 작은 월셋집에 살고 있다.

6명 장기기증 기석이, 부모의 긴 법

소송비용 때문에 집 팔고 월세로 

아들이 숨지기 이틀 전인 2011년 12월 2일, 김씨는 수업을 마치고 학원으로 가던 기석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스스로 ㄱ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뒤늦게 병원에 도착한 김씨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을 살폈다. 15분 뒤, 기석군은 갑자기 구토를 하며 의식을 잃었다. 의사는 뇌출혈이라고 진단했다. ㄱ병원 주치의는 “개두술이 아닌 코일 색전술을 해야 한다”며 “그러나 병원 시스템 문제와 협진 문제로 수술은 3일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김씨는 “병원을 옮겨 당장 수술을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ㄴ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ㄱ병원 주치의와 ㄴ병원 주치의가 통화한 결과 기석군은 ㄴ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ㄴ병원으로 전원한 다음날 오전인 12월 3일 ㄴ병원 의료진은 “이미 출혈이 뇌 전반에 퍼졌다”고 했다. 아들이 뇌사상태라고 했다. 이미 뇌사상태에 빠진 기석군은 수술도 불가능했다. 기석군이 제 발로 응급실에 찾아간 지 11시간 만이었다.

 

김씨는 아들의 죽음이 의료사고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문이 생겼다. 김씨가 “ㄱ병원에서 코일 색전술이 안 돼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고 하자 그의 지인인 의사들은 “코일 색전술이 안 되는 3차 병원은 없다”고 말했다. 기석이의 CT사진을 본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이 정도로는 사람이 사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동 중 상태가 악화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씨는 가장 먼저 한국소비자원에 의료사고 민원을 제기했다. 소비자원은 “재파열을 방지하기 위해 침상 절대안정을 해야 하는데 ㄴ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에서 재파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소비자원은 다만 병원이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남은 건 소송밖에 없었다. 김씨는 ㄱ병원이 당시 코일 색전술이 가능했으나 하지 않은 점과 환자가 이동할 시에 발생할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쟁점으로 제기했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 의사의 설명은 병원 시스템과 협진 문제로 3일 후 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병원재단 측은 재판에서 “환자의 상태 때문에 3일 후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을 뿐 시스템 및 협진 문제를 들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을 이동함으로써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가 높아진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그리고 보호자가 망인의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해도 이동을 희망하였을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이동 중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주치의의 설명을 들었다면 전원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생업도 포기하고 소송자료 수집에 매달렸다. 병원이 당시 코일 색전술이 당장이라도 가능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코일 기구를 납품하는 회사를 찾아냈다. 그 결과 ㄱ병원에는 코일 기구가 구비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들과 같은 뇌출혈 환자는 이동보다는 침상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갖가지 논문을 찾았고 ㄱ병원이 자문한 의학드라마까지 뒤졌다.

6명 장기기증 기석이, 부모의 긴 법

재판 중 달라진 의무기록지 내용 

그는 아들을 이송한 ㄱ병원 응급차의 기록도 확인했다. 아들을 ㄴ병원으로 이송할 당시 차량이 심하게 흔들렸던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함께 응급차량에 탑승하고 갔던 ㄱ병원 전공의는 하차 후 구토까지 했다. 김씨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응급차 리스트를 뒤져 아들을 이송했던 차량을 찾아냈다. 이 차량은 아들을 이송한 지 6개월된 시점에 노후로 폐차된 상태였다. 그는 이를 토대로 재판부에 “침상 절대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노후화된 차량으로 이송함으로써 상태가 악화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의학 및 법률지식이 전무했던 김씨는 틈틈이 신경외과 전문의와 변호사, 병원 원무과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필요하면 술도 사고, 밥도 샀다. 조금씩 성과가 보였다. 병원 측이 최초로 작성한 의무기록지와 소송과정에서 법원에 제출된 의무기록지 작성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통상 판례는 진료기록부의 경우 의료행위가 종료된 후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자료로 사용되므로 실제 행한 자의 명의로 작성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의무기록지 내용에도 변경이 있었다.

 

김씨는 “의무기록지에 손을 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요 내용의 변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병원 의료진이 망인에 대해 응급수술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점만을 들어 망인의 뇌동맥류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를 실시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모든 소송에서 패소했다.

 

만약 병원이 김씨 가족에게 제때 모든 정보를 적절히 제공했다면 그가 5년이라는 세월을 법정싸움에 매달렸을까. 김씨는 “내가 원했던 것은 아들이 숨진 이유와 그들의 사과”라고 했다. 그는 판결문에 단지 한두 줄로 정리된 증거들을 수집하기 위해 수년을 매달려 왔다. 그러나 그가 품는 의문들은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했다.

 

현행법상 의료과실은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아무런 의학지식이 없는 피해자와 가족들은 알아보기도 어려운 갖가지 서류를 해석하는 것부터 소송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의료분쟁 소송의 현실이다. 강태헌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현재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조정중재원과 소송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대부분 소송까지 가지 않고 조정에서 그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유는 환자나 유가족이 조정 결과에 만족해서가 결코 아니다”라며 “전문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소송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조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강 사무처장은 또 “재판부가 대한의사협회 등에 감정을 의뢰해도 감정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회신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나 유가족은 기나긴 싸움을 해나갈 여력이 없는 게 의료소송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