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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아이디어 낸 실무진
“도보다리에서 30분 넘게 얘기하실 줄은…”

by경향신문

화제의 ‘도보다리 벤치회담’

청 의전 파트서 답사 때 발견

유엔사 협조로 낡은 길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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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 오후 회담에 앞서 수행자 없이 판문점 내 도보다리를 산책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4·27 남북정상회담의 결정적 장면인 ‘도보다리 단독 벤치회담’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국방부·유엔사령부가 협의해 만들어낸 작품인 것으로 29일 전해졌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이 도보다리 산책 아이디어를 냈고, 국방부가 유엔사와 협의해 세기의 장면이 현실화되도록 했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들도 두 정상이 그곳에서 30분간 대화하면서 사실상 회담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와대 실무진은 지난달 정상회담 사전답사 과정에서 도보다리를 발견했다. 특히 도보다리에서 10m 떨어진 지점에 다 쓰러져가는 표지석을 발견했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그은 군사분계선 표식들 중 하나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화에서 “낡은 군사분계선 표지석을 걷어낸 자리에 두 정상이 앉아서 담소를 나눈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논의할 자리로 적격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 후 100년이 지난 미래에도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기념물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이 장소가 그런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다만 다리는 두 정상이 함께 걷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낡았다. 이에 도보다리에서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T자로 곁가지 다리를 만들어 테이블을 놓는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의 구조물 변경, 특히 정전협정의 표지석에 손을 대는 것에는 유엔사의 협조가 절실했다. 국방부 대북정책관실은 유엔사 참모장실과 협의에 들어갔다.

 

유엔사는 의외로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국방부 관계자는 “빈센트 브룩스 유엔사령관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의 사전 만남에서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만드는 데 할 수 있는 협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의중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는 회담 기간 중 무장한 유엔사 병력을 외부로 옮기면 좋겠다는 한국 정부의 요청도 수용했다. 하루 종일 생중계된 정상회담 당일 JSA의 모습에서 유엔사 병력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다만 공간을 마련한 청와대 실무진도 두 정상이 30분 이상이나 앉아서 얘기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담소 후에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사실상의 단독회담을 하셨더라. 그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은 알려진 바 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두 정상의 도보다리 대화는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며 “저도 내용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