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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당갈' 입소문으로 뒷심

by경향신문

요즘 극장가를 장악한 영화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하 어벤져스 3)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전국 스크린 수는 2553개. 이전에 가장 높았던 <군함도>보다 500개 이상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상영 점유율은 77.4%. 극장에서 10번을 상영하면 7.7번은 이 영화였다는 이야기다. <어벤져스 3>를 제외한 다른 영화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극장가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며 오히려 상영관을 늘려가는 작품이 있다. 인도 영화 <당갈>이다.

 

<당갈>은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인도 여성 레슬링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당갈’은 힌두어로 레슬링이라는 뜻. 영화 <세 얼간이>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아미르 칸이 딸을 레슬링 선수로 키워낸 아버지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당갈' 입소문으로 뒷심

<어벤져스3>에 맞서 상영관 오히려 늘어 

이 영화가 개봉한 것은 4월 25일. <어벤져스 3>와 같은 날이었다. 예상대로 <어벤져스 3>가 파죽지세로 극장가를 장악했고 이 기세에 눌려 웬만한 영화는 맥을 못췄다. <당갈>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상영관 수가 줄었다. 흥행 실패로 2~3주 만에 상영관에서 사라지는 다른 많은 영화와 같은 길을 가나 싶었지만 <당갈>은 달랐다. 개봉 10일 만인 5월 5일을 기점으로 오히려 상영관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5일 43개 스크린에서 69회 상영된 이 작품은 7일 77개 스크린에서 122회로, 9일 92개 스크린 167회로 늘어났다. 관객층이 밀집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추가 상영관이 배정되고 있다. 시간대도 좋아졌다. 관객이 많이 몰리지 않는 영화는 새벽시간이나 심야 등 관람이 쉽지 않은 시간대에 배정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당갈> 역시 그런 ‘운명’이었으나 스크린이 늘어나면서 프라임 시간대 상영이 확대됐다. CGV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의 경우 11일 현재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해 전 시간대에 고루 편성돼 있다. CGV 왕십리도 주말인 12일과 13일 이틀간 상영예정표를 보면 오전 11시, 오후 4시, 7시, 10시 등 편리한 시간대에 편성돼 있다.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관객이 늘어나고 상영관이 확대되는 것은 전형적으로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한 것이다. <당갈>을 관람한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상영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현장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성장 서사에 담긴 가족 간의 사랑, 인도영화 특유의 경쾌한 뮤지컬적 요소, 레슬링 경기가 주는 박진감 등 매력적인 요소와 재밋거리가 많다.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밀도가 높고 몰입도도 크다.

 

단순히 재미와 감동을 넘어서 이 영화가 남다른 관심을 얻는 이유는 영화 속에 녹아 있는 페미니즘적인 의미 때문이다. 열악한 여성인권의 나라 인도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성취해낸다는 이야기는 많은 여성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마음을 자극했다. 영화에서는 이 같은 메시지를 직접 언급한 대사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너희 아빠는 적어도 너희들을 생각하시잖아. 반대로 우리 현실은 딸이 태어나면 요리랑 청소나 가르치고 모든 집안일을 시켜. 그러다 열네 살이 되면 처음 보는 남자에게 넘겨버리잖아. 인도에서 여자는 치워질 뿐이야. 너희 아빠는 세상과 싸우고 있는 거야.”

 

“너의 승리는 너만의 것이 아니야. 너는 여자를 하찮게 보는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거야. 네가 진다면 수많은 인도 여자아이들이 지는 거야.”

 

CGV 리서치센터가 이 영화 개봉일부터 5월 7일까지 관람객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 기간 중 전체 영화를 관람한 여성관객의 비중은 53.7%였지만 <당갈>을 본 여성관객의 비중은 63.7%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당갈>에 대한 호평과 함께 상영관 확대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영화 감상평을 올리거나 감상할 것을 추천하는 글부터 전국 극장의 <당갈> 상영시간표, 단체관람 신청을 알리는 공지 등도 쉽게 볼 수 있다. 웬만한 추천글들은 수백~1000회 이상씩 리트윗되며 공감을 얻었다.

 

‘여성시대’ ‘쭉빵카페’ 등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나 카페에서도 영화 <당갈>은 주된 화제로 떠올랐다. “이 영화가 어벤져스에 묻히는 게 안타깝다”며 감상할 것을 제안하고 추천하는 글이나 “당갈을 n번째 보고 있다”는 식의 ‘간증문’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댓글을 통한 공감도 활발하다.

'당갈' 입소문으로 뒷심

여성 커뮤니티나 카페에서 화제로 

중견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김선아씨(33)는 “친구의 추천으로 영화를 본 뒤 만족스러워 회사의 또래 동료들과도 한 차례 더 봤다”며 “문장 끝에 ‘~했습니당갈당갈’ 하는 식의 말놀이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인 김윤희씨(26)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대화명을 ‘당갈’이라는 단어를 넣어 바꿨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면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같은 ‘영업법’을 공유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딸들을 레슬링 선수로 키우는 아버지 마하비르 싱 포갓의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교육방식, 혹은 폭력적으로 느껴질 법한 행동을 두고 불편하다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편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기준에는 이르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성역할의 불균형과 불평등, 그에 따른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중요한 결과물이고, 그 부분에 관객들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갈>은 예술적·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하는 예술영화 인정 필증도 발급 받을 예정이다. 이 작품을 배급한 NEW 양지혜 팀장은 “앞으로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도 추가로 개봉될 예정”이라며 “관객 입소문의 힘을 통해 장기상영이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6년 인도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당시 360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인도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다. 중국에서는 할리우드가 아닌 제3세계 영화 중에서 처음으로 수익 1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