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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김창길의 사진공책

흔해빠진 풍경사진

by경향신문

흔해빠진 풍경사진

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ondo, South Korea. 2007 / 공근혜갤러리 제공

그 섬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모래톱이었다. 세월의 퇴적에 따라 비옥해진 모래톱에는 아름다운 해당화가 피기도 했다. 동네 소년은 소를 끌고 와 꼴을 먹이고, 가난한 농부들은 농작물을 심었다. 바람과 강물을 따라 떠내려 온 소나무 씨앗도 보금자리를 틀고 하늘 높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자연은 심술을 부렸다.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는 섬의 반 이상을 쓸고 지나갔다. 뿌리 깊은 소나무 숲만 살아남았다. 모래톱은 온전히 소나무 차지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 숲이 된 모래톱에 ‘속섬’이라는 이름을 달아 주었다. 늘 물속에 잠겨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섬으로 승격된 속섬은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됐다. 한국을 유난히도 많이 찾았던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는 자기가 찍은 속섬 사진에 ‘솔섬(Pine Trees, Study 1. 2007.)’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몽환적인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하는 케나의 솔섬 사진에 열광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강원도 삼척시 월천리 속섬에 몰려들었다. 케나의 솔섬 사진을 찍기 위해 그의 밴티지 포인트(좋은 위치)를 찾고, 조리개, 감도, 셔터속도 등을 연구했다. 이른바 ‘마이클 케나 따라하기’ 열풍이었다. 속섬은 케나의 솔섬 사진과 비슷한 모습으로 무한 복제됐다. 모래톱이 섬이 된 사연은 모래 속에 묻히고 (케나의) 솔섬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솔섬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케나가 솔섬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던 2007년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가 솔섬 부근에 액화천연가스 저장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차례의 태풍을 견뎌낸 솔섬에 또 한 번의 태풍이 예고된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의 일이라 손을 써야 했다. 월천리 이장은 솔섬을 찾는 사진가들에게 저장기지 건설계획을 알렸다. 사진 동호회를 중심으로 솔섬의 안타까운 사연은 삽시간에 퍼졌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솔섬을 찍기 위해 더 많은 사진가들이 월천리로 모여 들었다. 솔섬 지키기 캠페인의 한 방법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사진에 담긴 슬픈 소식을 알리는 솔섬 지키기 운동은 효과가 있었다.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가 솔섬을 살리는 방향으로 저장기지 건설계획을 변경했다. 사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사연이었다.

 

그렇게 솔섬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정작 솔섬을 구해낸 케나의 사진은 시련을 겪었다. 2011년 대한항공이 케나의 솔섬과 비슷한 사진을 자사 광고에 사용했다. 케나와 그의 한국에이전시 공근혜갤러리는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소송을 걸었다. 대한항공은 자사 여행사진공모전에 당선된 솔섬 사진을 광고에 사용한 것이고, 그 사진은 마이클 케나의 모작이 아니라고 응수했다. 법원은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재판부는 “촬영대상이 자연물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피사체의 선정은 창작성이 없고, 구도의 설정과 카메라 각도의 설정은 창작성이 없거나 미약하다”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특히 마이클 케나가 선택한 촬영장소가 독창적인 노력에 의해 발견된 장소라고 보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풍경은 만인의 것’이라며 사진작가를 외면했다.

흔해빠진 풍경사진

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입상작 ‘아침을 기다리며’ / 사진작가 제공

판결은 정당했을까? 지난 5월29일 카메라를 들고 솔섬을 찾았다. 가곡천 하류에 솔섬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뒤로 작은 소나무 숲이 희마하게 보였다. 동해바다에서 올라온 안개가 솔섬을 자욱하게 덮고 있었다. 한 무리의 염소들은 풀을 뜯고, 섬의 터줏대감인 양 왜가리 한 마리가 꺼억꺼억 울어댔다. 솔섬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다만, 솔섬 뒤로 건설된 액화천연가스 저장기지 때문에 고즈넉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었다. 관광객이나 사진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변해버린 풍경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솔섬을 찾지 않으리라.

 

솔섬의 맵시를 찾아 섬 주변을 돌았다. 한참을 뒤져봐도 저장기지가 나타나지 않는 좋은 구도는 찾을 수 없었다. 저장기지가 없다고 상상하며 솔섬의 밴티지 포인트를 찾아보았다. 케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하얀 한지 위에 먹물을 한껏 먹은 붓으로 한 획을 그은 듯한 솔섬의 모습은 오로지 한 곳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케나의 솔섬 밴티지 포인트는 법관들의 판단처럼 창작성이 없거나 미약한 것일까?

 

그는 카메라를 통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카메라가 그의 시선이 찾아낸 것을 기록한다.

 

보먼트 뉴홀이 생각한 사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한 평가다(최봉림 지음, <서양 사진사 32장면>, 아카이브북스). 뉴홀은 사진을 최초로 예술의 한 분과로 인정한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다. 다시 부연하면 사진의 주체는 작가이지, 결코 카메라가 아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미적 감각에 따라 천차만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대한항공 여행사진공모전에 당선된 솔섬 사진의 사진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솔섬 사진을 찍기 전 케나의 사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케나의 사진을 따라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맞는 말이다. 그가 찍은 솔섬 사진은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선호하는 일출과 여명의 시간을 그대로 담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의 구도다. 솔섬이라는 피사체를 표현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밴티지 포인트는 같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마이클 케나가 선택한 촬영장소가 독창적인 노력에 의해 발견된 장소라고 보기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증거를 내밀어야 충분했던 것일까? 사진의 부인할 수 없는 속성이 증거로서의 능력일 터인데…. 대한항공 여행사진 당선 작가는 이미 케나의 사진을 보았다. 한번 본 이상적인 사진의 구도는 사진가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각인된다. 해당 피사체를 표현하는 더 아름다운 구도가 오로지 하나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이상의 미적인 구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유명 출사지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그들의 창조적인 미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본 멋진 풍경사진과 비슷한 사진을 얻기 위해서다. 사진을 배우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흔해빠진 풍경사진

10여년이 지난 2018년 5월29일, 마이클 케나가 서 있던 그 장소에서 솔섬을 촬영했다. 궂은 날씨로 가곡천에 반영된 솔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 김창길 기자

솔섬 사진 저작권의 쟁점은 사진 구도를 넘어선다. 존 버거는 ‘창작의 과정을 고려해서 어떤 대상을 예술로 분류했던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고 말했다(<사진의 이해>, 열화당). ‘어떤 것을 예술로 분류할 때는 그 사회적 기능이 무엇이냐에 따르는 것이 유용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존 버거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면 케나의 사진은 갤러리에 전시되며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미술 애호가의 수집품이 된다. 즉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반면 대한항공 여행사진공모전의 수상작들은 공모요강에서 밝히듯이 자사의 광고 활용을 전제로 수집된다. 수상작들의 포상도 자사 항공권뿐이다. 아마추어 작가 중에서 역량을 갖춘 사진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려는 노력은 공모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대한항공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진 아카이브 구축만을 위한 공모전이다.

 

풍경은 만인의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걸작으로 칭송받는 한 사진을 대기업이 우회 도용했다는 의혹이다. 케나의 솔섬 사진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도 다 아는 명작이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구도의 사진이 대한항공 여행사진공모전에 당선된 것이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대한항공 광고 내용 또한 케나의 냄새가 풀풀 피어오른다. 공모전 입선작 제목은 ‘아침을 기다리며’였다. 하지만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카피가 나온다. ‘바람이 솔솔’, ‘강물이 솔솔’, ‘구름이 솔솔’, ‘감동이 솔솔’, ‘솔섬 삼척’,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 당시 대한항공 광고 마케팅을 총괄한 사람은 한진가의 막내딸 조현민 상무였다. 조상무의 광고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 편은 우리나라의 숨겨진 비경과 그에 걸맞은 이야기들을 간결한 문구로 아름답게 풀어냈다며 2011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TV부문 금상을 받았다.

 

솔섬 사진을 탐냈던 것은 대한항공만이 아니었다. 2013년 출시된 갤럭시S4 광고 시안에는 원래 케나의 솔섬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갤럭시 광고를 담당한 제일기획은 공근혜갤러리에 사진 사용을 문의했다. 문제가 됐던 것은 비용이 아니라 사진이 사용된 광고 형태였다. 제일기획 측은 스마트폰 액정에 반영된 솔섬의 이미지를 컬러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만약 제일기획이 마음대로 케나의 솔섬 사진에 색을 입혔다면 저작권자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공근혜갤러리는 원본이 흑백이라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고, 협상은 결렬됐다.

 

마이클 케나의 한국인 사진 동료 배병우 작가도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소나무와 제주 몽돌은 배작가의 단골 피사체였다. 배병우 따라하기도 유행했다. 경주 남산 소나무숲은 한때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실습 교실이 될 정도로 붐볐다. 배 작가의 소나무 작품은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있어 미국 팝가수 엘튼 존이 수집할 정도였다.

 

지난해 제작된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광고에 두 장의 사진이 나온다. 사진 작품을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는 우수한 품질의 모니터를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광고에 등장하는 두 장의 사진이 배 작가의 단골 피사체인 소나무와 제주 몽돌이었다. 대한항공 광고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사진은 아니지만 배 작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비슷한 사진이었다. 하나도 아닌 두 장의 사진이었기 때문에 의혹은 더 컸다. 배 작가는 올해 초 LG전자 측에 ‘저작권 침해 중단 등 요구의 건’ 내용증명을 보냈다. LG전자 측은 두 사진이 게티이미지코리아에서 구입한 것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배 작가의 저작권 논쟁은 그의 어두운 개인사 때문에 중단됐다.

흔해빠진 풍경사진

서울 삼청동 공근혜 갤러리에서 공동 전시를 여는 마이클 케나와 배병우 작가 / 이준헌 기자

풍경 사진의 대가 공동 사진전이 2015년에 한국에서 열렸다. 마이클 케나와 배병우 작가의 풍경사진전이다. 두 작가 모두가 피사체 소나무에 얽힌 남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진전의 제목은 ‘흔해빠진 풍경사진’. 갤러리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자연 풍경사진은 누가 찍어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얼마 전 한국 법원이 판결을 내린, 그 흔해 빠진 “풍경사진”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왔다.

 

논란에 휩싸였던 대기업들의 광고에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이 정당한 절차를 걸쳐서 사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한항공 광고에 마이클 케나의 솔섬 사진이 나왔다면, 솔섬 지키기 캠페인을 벌였던 많은 사진가들이 환호하지 않았을까? 대한항공은 여행뿐만 아니라 자연과 환경을, 그리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범적인 기업이라고. 요즘 폭로되는 한진가의 갑질 파문들을 지켜보자니 괜한 상상을 했나보다. 온 가족이 포토라인 앞에 모여 찍는 한진가의 가족 기념사진을 떠올려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한 상상이겠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