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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신세계', '마녀'···박훈정 감독이 말하는 '악이란 무엇인가?'

by경향신문

'신세계', '마녀'···박훈정 감독

영화 '마녀'의 박훈정 감독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있다. 박 감동은 '신세계', '브이아이피'등 한국형 장르·누아르물을 연출해왔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인간 본성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선하게 태어나는 것, 악하게 태어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또 그렇게 규정지어 태어나면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박훈정 감독(44)이 신작 <마녀>를 소개하며 언론 시사회서 한 말이다. “나답지 않게 철학적인 문제를 다뤘다”고 말했지만, 그의 전작을 살펴보면 박훈정이라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 특히 ‘악’에 대해 항상 관심 보여왔다는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을 지난달 27일 <마녀>의 개봉일에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마녀>는 지난 9일 기준 약 190만 관객이 봤다.

 

‘피와 복수로 얽힌 남자들의 세계’를 주로 그려왔던 감독은 <마녀>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 자윤(김다미)은 어린 시절 의문의 조직에 의해 뇌 개조 수술을 당한다. 신비한 힘을 얻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도망쳐 나온 그는 평범한 생활을 하던 중 다시 조직과 마주친다. 초반 보통의 여고생처럼 보이던 자윤이 후반부 죄책감 없이 살인하는 병기로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악인이 선한 여고생을 연기한 것인가. 선인이 복수심에 마녀로 돌변한 것인가.

 

박 감독은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믿는다”는 말로 답을 갈음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함보다는 악함에 치우쳐있다고 본다. 법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악한 인간을 선하게 기르려 하는 게 아닐까. 영화 속에서도 닥터 백(조민수)이 자윤에게 ‘너한테 폭력은 본성’이라고 말하지 않나.”

'신세계', '마녀'···박훈정 감독

'마녀' 스틸사진.

그는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2010년 개봉한 두 영화는 ‘박훈정’이라는 이름을 충무로에 각인시켰다. 특히 연쇄 살인범과 그에게 복수하려는 남자의 치열한 추격을 그린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도발적인 제목을 통해 영화는 ‘악마는 누구인가’ 묻는다.

 

박 감독은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다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선악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라 생각한다. 절대 선, 절대 악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상업 영화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말할 순 없지만, 영화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이 어떻다’는 부분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악’이라는 소재에 접근한 영화 중에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븐>이 좋았다고 말했다. “작품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7대 죄악에 관한 영화이지 않나. 영화의 분위기나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지옥의 묵시록>도 좋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그린 작품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나는 너무 착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긴 한가.”

 

액션과 스릴러 장르의 작품만 작업해왔을까 싶지만, 시나리오 작가 데뷔 전 각색 일을 할 때는 “주로 ‘나까 코메디(싸구려 코미디)’를 많이 맡았다”고 했다. 작업한 영화들을 묻자 “노코멘트”. 순수 창작물로 데뷔 이후의 작품 목록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당시 한국 영화는 휴먼 아니면 코미디였다. 각색 일도 그런 것밖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코미디 작품도 보지만 취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감독 데뷔는 2011년 <혈투>였다. 이후 <신세계>로 한국형 느와르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진 작품 <대호>와 <브이아이피>는 흥행면에선 아쉬웠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브이아이피>는 여성에 대한 과도한 폭력 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신세계', '마녀'···박훈정 감독

영화 '신세계' 스틸사진.

'신세계', '마녀'···박훈정 감독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사진.

박 감독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였다면 내 생각이 짧았다”고 했다. 그는 “대중에게 보이겠다고 만들었으면 당연히 (사회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싫으면 창작하지 않으면 된다. 사실 이 이상 세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해 감독으로 성장했고, 2016년에 영화 제작사 ‘금월’을 차렸다. 제작사 이름은 영화 <신세계>의 범죄 조직 ‘골드문’의 한자를 따왔다. “이름이 알려진 작품은 많은데 흥행한 작품은 별로 없다”는 감독은 “만들고 싶은 작품을 하기 위해서”, “흥행이 안 됐을 때 제작사에 미안하지 않기 위해”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제작사 대표까지 됐지만, 영화 만들기가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로 기획된 <마녀>는 시작부터 ‘파트 1’이라고 밝혔지만, 2부를 묻는 말에는 “결국 투자의 문제가 걸려있다”며 내심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감독은 “아직 악에 대해 아직 얘기를 다 못 한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