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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을 읽고 먹는다

by경향신문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걸그룹 마마무의 화사가 ‘곱창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방송 캡처

먹는 방송, 일명 ‘먹방’은 10여년 전 처음 등장했다. 인터넷 개인방송인 아프리카TV 등에서 BJ(방송 진행자)가 카메라 앞에서 음식을 먹으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형식이었다. 이같은 형식이 유튜브 등을 통해 해외로도 확산됐고, 먹방을 영어로 표기한 ‘Mukbang’은 고유명사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온라인뿐 아니라 지상파·케이블 방송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대중적 인기에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마구 생겨나면서 정점을 찍은 먹방들은 곧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먹방이 그릇(형식)을 갈아치우고 진한 사회성을 담아내면서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먹방’은 유죄, 무죄?

지상파·케이블 방송까지 확산된 먹방의 영향력은 사회 전반으로 커지고 있다. 최근 ‘곱창’ ‘김부각’ ‘간장게장’ ‘박대’ 등 음식이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상위권을 차지했다. 걸그룹 마마무의 화사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당 음식들을 먹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방송 이후 화사가 방문한 곱창집 곱창뿐 아니라 전국의 곱창집이 성황을 이뤘다.

 

양승용 한국축산부산물업중앙회장은 “방송 이후 곱창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 한 마디로 광풍이었다”며 “올해 들어 도축되는 소도 줄어든 탓에 전국적으로 수요를 맞추지 못해 대란이 일어났다”고 말했다.(화사는 곱창 판매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로 감사패와 곱창 상품권을 축산부산물협회로부터 받았다고 알려졌는데, 어느 단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강력해진 먹방의 영향력을 입증하듯 먹방은 정부의 건강 관리 대책에 포함됐다. 지난달 26일 보건복지부·교육부·농림축산식품부 등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가비만관리 종합대책(2018~2022)’을 발표했다. 내년까지 폭식을 조장하는 TV와 인터넷방송 등 미디어 프로그램과 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비만 대책으로 먹방을 왜 규제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고, 정부는 ‘규제가 아니라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둬 폭식을 유발하지 않도록 권장하겠다는 뜻’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일도 벌어졌다.

고민상담, 사회이슈 … 생각하는 먹방, ‘식방’

단순 먹방이 사회성을 담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고민과 사회이슈를 녹여내고 삶의 현장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들도 생겨나고 있다. 알 식(識)과 먹을 식(食)이 결합된 일명 ‘식방’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식방은 지난 6월 방송을 시작한 올리브TV <밥 블레스 유>다. <밥 블레스 유>의 캐치프레이즈는 ‘신개념 푸드테라픽(Pick)’이다. 푸드테라픽은 ‘테라피’와 ‘음식 추천’을 결합한 개념으로, 최화정·이영자·송은이·김숙 4명의 MC가 시청자들의 고민을 듣고, 고민해결에 적절한 음식을 추천해준다.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 했을법한 생활 밀착형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먹을 걸로 오빠랑 저를 차별했어요. 오빠는 닭다리, 저는 닭목. 오빠는 고기 반찬, 저는 남은 반찬. 이제와서 따지기도 그렇고 저만을 위한 음식을 추전해주세요’ ‘누가 봐도 마른 친구인데 “나 살쪘다 돼지같다” 얘기하는 친구가 있어요. 살 찐 건 저인데. 이런 저를 위로할 음식이 있을까요?’.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

올리브TV의 '밥 블레스 유'. 올리브TV 공식 홈페이지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

올리브TV의 '밥 블레스 유' 방송 장면.

시청자와의 공감을 내세운 <밥 블레스 유>는 방송 한 달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000만건을 돌파했다. MC들은 딱딱하게 음식만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 고민과 유사한 자신들의 에피소드를 꺼내놓는다. MC 자신들의 이야기로 고민 상담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지만, 혼자만 그런 상황에 처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MC가 모두 여성들인만큼 최근 사회 전반에 강화하고 있는 페미니즘, 탈코르셋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김숙이 지은 ‘밥 블레스 유’ 5행시는 큰 호응을 얻었다. 먹을 때만큼은 주변 시선 등을 신경 쓰지 않고 행복함을 만끽하자는 내용 안에는 여성주의 관점이 담겨있다. ‘밥 먹을 때는 요/ 블라자는 풀어야 되고요/ 레깅스 같은 건 벗어던지시고요/ 스타킹 같은 건 좀 찢어버리시고요/ 유(You)가 원하는 대로’.


방송인 박미선,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지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 MC들이 여성의 시각에서 시사·이슈·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KBS <거리의 만찬>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13일과 20일 파일럿 2부작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음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다. 음식은 MC와 출연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시사토크쇼와 먹방의 경계에 있는 셈이다. 지난달 19일 첫 방송한 MBC <구내식당 - 남의 회사 유랑기>는 회사 탐방과 음식을 접목한 프로그램이다. 대기업 홍보 일색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

KBS 파일럿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의 한 장면. 방송 캡처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

EBS의 '조식포함 아파트' 공식 포스터. EBS 홈페이지

EBS <조식포함 아파트>는 오는 9월11일부터 정규 편성된다. 프로그램은 개그맨 박명수, 요리 연구가 이혜정 등 출연자들이 아파트를 방문해 여러 주민들에게 아침밥을 제공하는 것이다. 출연진이 차린 조식 뷔페를 통해 ‘데면데면하던 이웃과 만나 공동체의 정을 느껴보는’ 자리를 만든다는 취지다.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연출을 맡은 최수진 PD는 “식자 자리에서 얼굴만 스쳐지냈던 옆집 사람이나 몰랐던 경비원, 관리소장 등을 만나고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가 되니, 방송 이후에도 모였던 사람들끼리 다시 주민 모임을 갖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 이후 출연 신청을 받고 있다. 최 PD는 “‘이사 온 지 2~3년 됐는데, 아파트에 아는 사람이 없다. 방송을 통해 주민들과 인사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좋겠다’는 의견 등이 올라온다”며 “특히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서 신청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먹방(식방)의 미래는?

식방은 예능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확장되고 있다. 국내 원조 식도락 드라마 tvN <식샤를 합시다>는 지난 16일 세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무한경쟁 속 지친 직장인과 청춘 등 주인공들이 음식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틀로 매회 다른 음식들을 소개하는 드라마다.

먹방의 변화 ··· '식방’으로 오늘

tvN '식샤를 합시다'의 한 장면. 티빙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먹방’ 혹은 ‘식방’의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은 먹방은 아니지만 이영자의 먹방이 화제가 되며 프로그램 인기도 높아졌다”며 “정준하 등 식신 캐릭터는 많지만 이영자는 단순 대식가만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영자는 먹방에서 얻고자하는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잘 표현했고, 시청자들이 호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여행과 결합한 <윤식당>, 상담과 결합한 <밥 블레스 유>처럼 계속 다른 요소와 결합한 다양한 형태의 먹방(식방)이 계속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취업 준비 기간과 1인 가구가 늘어나며 단절화된 관계가 많아졌다. 이런 가운데 누구나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콘텐츠가 바로 먹방(식방)”이라며 “시청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호응하며 사회성을 담아내고 있는 이들 먹방(식방)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경학·이유진·고희진 기자 gomgo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