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기후변화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컬처]by 경향신문

다큐멘터리 ‘빙하를 따라서’


빙하 따라다닌 3년간의 기록

거대빙산이 붕괴하는 장면은

기후변화에 관한 직관적 타격


온난화 심각성 알린 ‘불편한 진실’

이 영화에 더는 감흥이 없는 건

경고했던 재해 현실화 됐기 때문


폭염에 에어컨 끄지 못하는 우리

지구기온이 2℃ 상승한 후엔?

그때도 지금처럼 에어컨을 켜며

‘이 더위가 말이 돼?’라고 할텐가

 

제임스 발로그는 빙하를 찍는 사진가다. 그의 빙하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대해빙(BIG THAW)’ 기획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2005년의 이 사진 여행에서 아이슬란드의 빙하가 충격적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후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함께 ‘익스트림 아이스 서베이(EIS, 극지빙하조사단)’라는 프로젝트를 조직했다. 이들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알래스카 등 빙하지대에 40여대의 저속 촬영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빙하의 변화를 관찰했다.

빙하, 기후변화의  부인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 <빙하를 따라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거대한 빙하지대가 불과 3개월~3년의 짧은 기간 동안 수축하고 후퇴하며 지질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큰 충격을 안겼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빙하를 따라서>(2012)는 발로그와 그의 팀이 2007년부터 3년가량 빙하를 따라다닌 기록이다.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끝나기 15분쯤 전에 등장한다. 바로 그가 험난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손에 쥔 2300여장의 기록 사진을 각종 강연에서 발표하는 장면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거대한 빙하지대가 불과 3개월~3년의 짧은 기간 동안 수축하고 후퇴하며 지질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이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대단히 큰 충격이다. 그린란드 빙하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일룰리사이트 빙하의 사상 최대 빙산 분리 장면도 장관이다. 새하얀 아이스크림 같은 거대한 얼음 산맥은 마치 타이머를 맞춰둔 도미노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 맞춰 뒤집히고 붕괴한다.


실제 상황

<빙하를 따라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시각의 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실재를 본다는 것이 갖는 정직한 힘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후변화에 관한 여느 데이터나 기록, 이론적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대면하는 것과 또 다른 직관적 타격이다. 그의 사진은 지금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기후변화의 부인할 수 없는 시각적인 증거물이 된다. 또한 동시에 고대로부터 지구에 존재해온 빙하라는 자연에 신성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제임스 발로그는 ‘지구라는 탄광에 들어간 카나리아’인 빙하의 기록을 위해 4차례의 무릎 수술을 감행하면서 빙하지대를 기어오르고 가파른 빙산의 가장자리를 걷고 가느다란 줄에 의지해 빙하 사이로 내려간다. 그는 마치 소명을 띤 투사 같으며 그의 얼굴은 어딘지 시종일관 긴급하다. 이 기록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 인간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 말은 명백한 기후변화의 증거들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많은 인간을 향한다. 또한 인류의 문명이 끝장나고 어느 지적생명체가 이 기록을 발견한 다음을 상정한 냉소의 언어로 들리기도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 <불편한 진실>(2006)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이 영화는 구체적인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이슈에 익숙지 않았던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영화는 환경운동가로 나선 앨 고어의 슬라이드 쇼를 이용한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 거의 전부다. 마치 기후변화 관련 환경운동단체의 교육용 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그만큼 영화는 과학적 수치와 그래프와 당위적 계몽으로 가득하며 여기에 고어 개인의 가족사를 얄팍한 감상으로 병렬해놓았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의 목적은 단 하나다. 긴급상황에 빠진 지구에 관한 메시지를 지구인들에게 긴급히 전달하는 것. 영화는 시종일관 긴급한 태도로 앨 고어의 강의를 인터넷 강의 송출하듯 자세히 보여주고, 각종 데이터와 시각자료와 애니메이션을 동원해 설득하며,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엔딩 크레디트에까지 액션 플랜을 나열한다. 앨 고어는 영화에 등장하는 강의를 미국 전역과 세계를 돌면서 1000여회 반복했고,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무감각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면 이상할 정도로 그때만큼의 감흥이 없다. 2000년대 들어 수직 상승하는 지구 기온의 변화 그래프 같은 것은 이제 인상적이지 않다. 12년 전 충격을 주었던 빙하 소멸과 해수면 상승과 자연재해의 장면들은 무디게만 다가온다. 맨해튼 일부와 네덜란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경고에도 별 감각이 없다. 그것은 수많은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익히 보고 들어 온 것이다. 실제로 앨 고어가 예상한 허리케인, 홍수, 가뭄, 산불, 쓰나미, 유례없는 혹서기 등 수많은 자연재해들은 현실이 되었다.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목격했고 지금도 목격하고 있다. 지구는 그때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 않았고, 그렇다면 긴급성은 훨씬 더 커졌을 텐데 우리는 그와 비례해 이상할 정도로 더 무감해지고 있다.

빙하, 기후변화의  부인할 수 없는

그들도 속편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지난해 <불편한 진실 속편: 권력에 진실을>(2017)을 내놓았다(한국에선 개봉하지 않았다). 기후변화는 헛소리이며 쓰레기 과학이라고 외치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던 해였다. 앨 고어는 좀 더 늙고 살이 쪘을 뿐 여전히 전 세계를 돌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강연에 나서고 있다. 속편은 10년 전의 지루한 데이터의 나열이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 인식한 듯, 시각적으로 충격적이며 다양한 영상들을 동원한다. 기후변화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으로 진화한 앨 고어의 강연 역시 “우주에서 최초로 찍은 지구 사진입니다.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폴로 8호에서 촬영했죠”라는 똑같은 대사로 시작하지만, 기후변화의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예시와 자료들은 눈에 띄게 풍부해졌다. 눈을 의심케 하는 증거와 그 영상이 전 세계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매일 밤 요한계시록이 현실화되는 듯한 뉴스들이 있다.

폭염 속에서

폭염의 한가운데에서, 이 다큐멘터리들을 보는 시간만이라도 에어컨을 켜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자동차도 없잖아. 늘 걷고 자전거도 많이 타고. 일회용 컵 안 쓰려고 텀블러도 갖고 다니는데. 여기서 트는 에어컨쯤이야 저 밖의 거대한 대기업 프랜차이즈에서 틀어대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라고 안위하면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마크 라이너스가 <6도의 멸종>(2008)에서 설명한 ‘행동을 바꾸기보다 부인의 메커니즘에 빠지는’ 이들의 전형적인 방어적 태도다.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를 부인하고 사고와 행동의 불일치를 합리화한다. 대체 얼마나 더 크고 많은 충격이 필요한 것일까?

기후변화의 위협을 경고하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은 모두 절실하고 긴급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똑딱이는 시계를 보며 초조해한다. <6도의 멸종>은 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 기온이 6도까지 상승할 것을 가정하고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재앙의 시나리오를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0.5~1도 정도의 기온 상승은 이미 시작됐다. 이미 인간이 대기 중에 쏟아낸 탄소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내일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하더라도 1도 상승의 세상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한 1도 상승의 시나리오는 대략 이런 것이다. 세계 곳곳의 극심한 가뭄, 국제 식료품 가격 폭등, 킬리만자로 정상의 만년빙 소멸, 희귀 동식물의 멸종…. 익숙하지 않은가? 모두 아주 최근에 국제 뉴스도 아닌 국내 뉴스에서 본 일들이다. 책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 모두가 거주 가능한 구역을 찾아 떠도는 ‘기후 유목민’이 될 것이며,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빙하, 기후변화의  부인할 수 없는

결국 티핑포인트를 지나 지구 기온이 2도 상승하고 아마존 숲까지 붕괴한 뒤 모든 것이 가속화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때도 지금처럼 ‘이 더위가 말이 되는가?’ 정도로 생각하며 다큐멘터리나 보고 에어컨을 켜면서도 내일부터 실천하자고 생각할 수 있을까?

2018.08.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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