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촬영에 대한 세 가지 풍경

[컬처]by 경향신문

일상의 공포가 된 불법 촬영…SNS 시대 시청자의 뒤만 좇는 예능

불법 촬영에 대한 세 가지 풍경

# 1 - 생활의 달인: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에몰카 탐지 전문가가 등장카메라 찾는 노하우 공유. 임계점 다다른 사회 반영

불법 촬영에 대한 세 가지 장면. 하나, 지난 10일 SBS <생활의 달인>에는 불법 촬영용 소형 카메라 탐지의 달인이 등장했다. 그는 공중화장실 같은 공간 곳곳에 어떻게 소형 카메라가 설치될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었고,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 의뢰인의 집 화재경보기 안에서 카메라를 찾아냈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붉은색 셀로판지를 붙이는 비법을 비롯해 그는 생활 속에서 소형 카메라를 찾아내는 달인의 노하우를 상당수 공유했다. 둘, 같은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학생임을 밝힌 한 유저가 자신의 학교에서 진행된 SBS funE <스쿨어택 2018>의 제작진이 소형 카메라를 숨겨놓았다며 “발견하기 전에 옷 갈아입은 애들 많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스쿨어택 2018> 측은 “학생들의 리액션 촬영을 위해 학교 측의 협조를 구한 뒤 교내 일부 교실에 거치 카메라를 설치”했으며 “촬영본 삭제 작업을 마쳤”다고 해명하며 “신중하고 사려 깊은 스쿨어택이 되겠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셋, 이 두 장면보다 한 주 전인 지난 4일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선 개그맨 윤정수의 카페 내 SNS 셀피 촬영 중 벌어진 일반인 여성 얼굴 노출 문제를 다뤘다. 해당 논란에 대해 출연자들은 어디까지가 불법 촬영인지에 대해 별로 영양가 없는 논의를 나눴는데, 배우 김가연은 “내가 범죄자가 아닌 이상 찍혀도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의견을 밝혔고, 연예부 기자 출신 패널은 “SNS 내의 인식이 너무 빨리 변하고 1~2년 전만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불법 촬영에 대한 세 가지 풍경

# 2 - 풍문으로 들었쇼: 개그맨 윤정수, 셀피 찍는 중일반인 여성 얼굴 노출 다뤄SNS 빠른 변화 언급 했지만사회적 맥락은 좇지 못해

이들 세 장면을 연결해보자. 한쪽에선 불법 촬영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이 과민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하는 탐지 전문가가 존재하고 그가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지난 8월 말 청와대 청원 2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던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과 ‘몰카 공화국’에 대한 여성들의 전방위적 공포와 사회에 대한 불신은 <생활의 달인>이란 의외의 장소에서 방증된다. 석고보드 천장 무늬에서 실제 불법 촬영용 구멍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달인은 실제 모 기업에서 발견한 적 있는 방식이라고 부연했다. 달인이 공유한 불법 촬영 탐지 비법은 여성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팁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또 다른 방식의 각자도생이기도 하다. 달인은 엉덩이를 살짝 왼쪽으로 해서 앉으면 화장실 변기 불법 촬영을 피할 수 있지 않느냐는 한 의뢰인의 궁금증에 대해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얼마나 서글픈 일이냐”고 말했다. 그동안 여성들이 수없이 불법 촬영에 대한 두려움과 대책의 미흡함에 대해 고발했던 내용들이 <생활의 달인> 속 황인용의 구수하고 다정한 내레이션과 함께 흘러나오는 순간은 한국적인 기묘함을 보여주지만, 더는 부정하기 어려운 공통의 경험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조금은 단단히 다져진 이 지점에서 출발하자.

불법 촬영에 대한 세 가지 풍경

# 3 - 스쿨어택 2018: 당사자들에게 동의 안 구하고교실에 소형 캠코더 몰래 설치 학생들 “모르고 옷 갈아입어” 타인 노출에 무감각한 프로

그렇다면 <스쿨어택 2018> 측의 의도나 실제로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는 영상이 찍혔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불특정 다수 당사자의 동의 없이 학교 측의 협조만으로 소형 카메라를 거치해 영상을 찍는 건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지난해 8월엔 실제로 ‘공부 잘하는지 확인하겠다’는 명목으로 여고 교실에 소형 카메라를 몰래 설치한 남교사 문제도 있었다. <스쿨어택 2018> 측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방송이 되겠다는 애매모호한 말 대신, 프로그램의 성격이 변하더라도 이제 학생들의 동의 없는 교실 촬영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SNS 시대의 타인 노출 사진은 어떨까. <풍문으로 들었쇼> 패널 말대로 1~2년 전이었다면 윤정수의 게시물은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변화하는 SNS 트렌드” 때문이 아니라, 불법 촬영에 대한 두려움, 인터넷 어느 공간에서 벌어질지 모를 ‘얼평’(얼굴 평가), 포르노 사진 합성에 대한 두려움이 더는 극히 일부만의 문제로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그 짧은 시간 동안 훨씬 넓고 단단하게 공유됐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에 따른 부작용의 속도를 사회적 도덕 기준이 따라가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연예가 풍문 토크쇼에서 불법 촬영의 범주를 찍힌 사람의 기분에 따른 것으로 정의하는 건 한가한 동시에 시대착오적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방송 윤리는 사회적 논의의 맥락과 무관할 수 없다. 다만 언제나 늦을 뿐이다. SNS 유저들을 비롯해 사적 생활영역의 개개인은 새로운 문제 상황을 인식하거나 자신의 언어로 발화하는 데 있어 방송을 비롯한 공론장의 중심부보다 언제나 더 빠르고 민감하다. <풍문으로 들었쇼>에서 SNS의 빠른 변화를 언급한 건 타당하다. 다만 그것이 트렌드나 스타일, 유행의 문제가 아닐 뿐이다. 그 사적 언어들이 결집하거나 충돌하면서 논의의 윤곽이 만들어지며 어느 정도 타당성이 논증된 명제들이 정리되고 사회적 주변부에 공유된다면 이 논의는 정치적 공론장의 중심부로 진입할 추진력을 얻는다. 당연히 방송이 사회적 이슈를 다루거나 윤리적 질문에 대처하는 방식은 SNS 시대 시청자들의 눈에 지지부진하다.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건 어느 정도 감안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생활의 달인>이 달인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연출의 힘으로 달인을 만든다는 건 10여전부터 방송가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던 말이다. 그렇게 매주 달인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안에서 이제야 불법 촬영 탐지의 달인이 지상파 가족 시청 시간대에 등장했다는 건, 이것이 얼마나 미뤄져 오던 소재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이처럼 느리고 느린 변화의 와중에 <풍문으로 들었쇼>는 촬영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까진 알지만 왜 그런지 사회적 맥락을 미처 좇지 못하고, <스쿨어택 2018>은 학생들을 비롯한 동시대인들의 반응이 변했다는 사실 자체를 좇지 못했다. 다들 느린 중에 더 느린 것, 이것이 도태고 게으름이다. 요즘 사람들은 뭘 좋아한다더라, 요즘 SNS에서는 뭐가 유행이라더라, 같은 트렌드 개념의 여론 수렴으로는 이제 결코 사적 개인들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전선에서 옳고 그름에 대해 반응하고 치열하게 싸우는지, 어떤 공통의 경험세계를 구성해가거나 부정하는지 그 논의의 맥락을 좇고 재구성해내지 못한다면, 방송은 윤리적으로는 물론 트렌드에서도 동시대 시청자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10년 전 10대에게 인기 있던 예능 프로그램을 제목부터 형식까지 그대로 답습하거나(<스쿨어택 2018>), 2년 전에 이미 기사화됐던 박보검 부친의 빚 이야기를 마치 새로운 소식처럼 주고받는(<풍문으로 들었쇼>) 수준의 프로그램들엔 이미 소용없는 것일지 몰라도.


위근우 칼럼리스트

2018.09.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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