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원짜리 영상·음향 장비를 225만원에 구매…‘의문투성이’ 대법 영상재판 사업

[이슈]by 경향신문
17만원짜리 영상·음향 장비를 225

2016년 11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원격 영상신문 공개 시연회에서 제주도에 거주 중인 증인(영상 왼쪽 큰 화면)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영상재판을 비롯한 전자법정을 추진하며 개당 225만원에 사들인 미국산 영상·음향 컨트롤러가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서는 159.99달러(약 17만원)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배송료를 따로 내고 1개씩 주문해도 개당 200달러에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시중가의 10배도 넘는 가격에 장비를 사들인 것이다. 이 제품들은 영상재판 사업 전에는 녹음·녹화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샀다가 지난해에는 영상을 중계한다는 이유로 다시 구매했다.


대법원은 또 비슷한 수준의 국산제품이 있는데도 다른 공공기관과 다르게 훨씬 비싼 외국산을 고집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같은 비용을 들이고도 영상재판을 제대로 하지 않아 건당 비용이 최소 1억5000만원을 넘을 만큼 예산 낭비가 심한 것으로 계산됐다.


경향신문이 1일 대법원과 정보통신업계 자료를 종합한 결과 대법원이 추진 중인 영상재판은 지난해 3월 시범사업 이후 1년6개월 동안 10건 실시됐다. 1년에 6.7건꼴이다. 시범사업 이후 접수된 1심 민사본안 150만여건만 기준으로 잡아도 영상재판은 전체의 0.000067%에 불과한 수치다.


40만원 국산 대신 400만원 미국산 프로그램…“업계서도 놀라”

20억원 원격 솔루션 입찰요청서에 특정업체 매뉴얼 문구

‘입찰비리 의혹’ 전 행정처 직원 관계사 대표, 해외로 출국

17만원짜리 영상·음향 장비를 225

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면서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영상재판에 쓰이는 전자장비 구입에 최근 2~3년 사이 대법원이 쓴 예산은 최소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집행된 ‘2017년 원격 영상증언 및 관련 장비 등 도입 사업’ 예산 52억6100만원만 비용으로 치고, 전자장비 내구연한을 5년으로 잡아도 영상재판 1건당 1억5785만원이 드는 셈이다.


또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전국 법정에 설치된 영상재판 장비 16개 가운데 6개만 국산인데, 절반은 이 장비 공급 사업에 관여한 전직 법원행정처 관계자와 관련된 업체가 조립한 물건이었다. 나머지 인터넷프로토콜(IP)카메라는 일본산, 케이블은 이스라엘산, 컨트롤러는 미국산 등이었다.


가격 불투명한 외국산 고집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2016년에 대당 220만원에 1000대 넘게 사들인 일본산 IP카메라는 100만원대 국산 한화테크윈 제품과 다를 게 없다”면서 “법정마다 6개씩 들어간 이스라엘 장비도 시중에는 나오지 않아 가격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인천중구청, 울산중구청, 파주시청 등에서 구입한 이력이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현재 공공기관들이 쓰는 전자제품은 거의 모두 국산이며 이를 위해 입찰에서 국산제품에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면서 “유독 대법원만 특별한 이유 없이 가격이 불투명한 외국산을 고집하는 것은 예산낭비임은 물론이고 특정업체와의 유착이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전직 행정처 공무원이 부인을 앞세워 설립한 업체가 전자법정 사업에 참여했다.


2017년 영상재판 예산 52억여원 가운데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원격영상 솔루션 사업에는 리베이트 의혹까지 제기된다. 대법원은 이 사업에서 사용자 500명용으로 미국산 프로그램을 20억원에 샀다. 사용자당 400만원꼴이다. 사용자당 40만~50만원 수준인 국산 프로그램의 10배에 이른다. 방위사업청과 행정자치부 등은 새하컴즈 등 국산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요 영업비밀을 다루는 기업도 무료인 스카이프나 국산제품을 쓰는데, 대법원이 본사 기술지원도 원활하지 않은 미국산을 구입해 업계에서 다들 놀랐다”고 했다.


이와 관련, 경향신문은 대법원이 2016년 작성한 ‘스카이프 영상재판 매뉴얼’을 확보했다. 아이디는 재판부가 행정처에 요청해 기일마다 새로 받아야 하고, 아이디 한 세트는 4개로 재판장, 원고, 피고, 감정인용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이와 함께 대법원이 2017년 ‘영상증언 솔루션 입찰요청서’를 배포하면서 미국 특정사 매뉴얼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도 확인했다. 당시 업계도 이런 사실을 알고 이런 스펙으로는 국산은 입찰이 불가능하다며 공식 항의했다. 이후 대법원이 사양을 완화했지만 결국 문제의 미국산이 낙찰됐다.


현행법상 영상재판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2007년 대법원이 발행한 민사소송규칙 해설은 절차협의만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재판장 등은 기일을 열어 절차협의를 할 수 있고, 또한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양쪽 당사자와 음성의 송수신에 의하여 동시에 통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절차협의를 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법원에 3자 간 통화방법을 활용하기 위한 시설이 구비되었으므로 양쪽 당사자가 원거리에 있거나 당사자가 참석할 필요가 없는 간단한 절차협의의 경우에는 3자 간 통화방법을 활용하면 편리할 것이다”라고 돼 있다. 형사재판의 경우 2017년도에 ‘영상재판’으로 분류된 것이 226건이라는 대법원 통계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전에 녹화한 영상자료거나 법정 옆 증언실에서 증언한 사례다.


입찰비리 관계자들 도피 의혹


대법원이 전직 법원행정처 공무원 가족이 설립한 회사와 2009년부터 올해까지 243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계약을 맺어 거래해온 의혹(경향신문 8월13일자 1·2면)의 핵심 관계자가 최근 출국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행정처 측은 “우리에게 출국금지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에 할 말이 없다. 검찰이 사건을 인지해 출국금지를 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입찰비리 의혹을 받는 이 관계자는 지난달 7일 대법원에서 조사받은 뒤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략 3주 전에 외국에 나갔으며 입국일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2018.10.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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