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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자신을 긍정할 줄 아는 아이유…그 선 지켜줘 삐 ―

by경향신문

아이유 ‘삐삐’

 

데뷔 10년 여성 솔로 가수 아이유

타인의 삶 재단하려는 대중 향해

“이 선 넘으면 침범” 당당히 말해

자기 자신을 알아내기도

좋아하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그의 자의식 성장은 일종의 감동

자신을 긍정할 줄 아는 아이유…그 선

스물셋, 스물다섯, 스물여섯의 아이유 아이유가 2015년 발표한 ‘스물셋’(작은 사진 위)과 2017년 발표한 ‘팔레트’(작은 사진 아래). 최근 선보인 새 디지털 싱글 ‘삐삐’는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노래다(큰 사진). 아이유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찾아내 세상에 드러냈다. 뮤직비디오 갈무리

아이유는 지난 20일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했다. 그녀는 강호동이 던진 “우리는 아이유를 좋아하잖아. 그런데 아이유는 자기 자신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아는 형님>에서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받게 될 줄 몰랐다며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 자신한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았고. 그런데 최근 들어 내가 되게 좋아졌어. ‘아 내가 최고!’ 이런 것보다 이제 나는 다시 태어나도 꼭 나로 태어나고 싶고. 일단 부러운 사람은 없어. 내가 최고라서가 아니라 이제 (나 자신이) 만족스러운 것 같아.”

지난 10일 발표된 아이유의 새 디지털 싱글 ‘삐삐’는 온갖 음원차트를 장악하고 음원사이트 최고 이용자 수를 경신하고 있다. ‘삐삐’를 들어보면, 열다섯에 데뷔해 갖은 일을 겪고 이제 스물여섯이 된 아이유가 도달한 내적 만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노래에서 그녀는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마음대로 선을 넘나드는 세상의 무례한 사람들에게 “이 선 넘으면 침범”이라며 “거리 유지해”라고 깔끔하게 경고한다. 확실한 선 긋기는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기만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한 스타의 대중에 대한 개인적 경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편적 문제로 연결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관종’ 범람의 시대,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적절한 선을 지켜야 하는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재치 있는 선언.

자의식

아이유라는 캐릭터의 정체성 성장기를 확인하기 좋은 방법은 ‘스물셋’(2015), ‘팔레트’(2017), ‘삐삐’(2018)를 연속해서 들어보는 것이다. 그 전에, 그녀가 ‘아이돌’과 ‘국민 여동생’의 테를 벗고 ‘음악적 성장을 통한 성숙한 뮤지션’으로 나오고자 작정한 첫 음반은 2013년 발매한 <모던 타임스>였다. 그러나 이 컨셉추얼한 복잡하고 과잉된 앨범은 대중을 혼란스럽게 했다. 음악적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청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화려한 곡과 퍼포먼스는 검증된 노래실력과 잘 짜인 안무에도 불구하고 아이유와 동떨어져 둥둥 떠다녔다. 대중도 아이유 자신도 그녀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을 긍정할 줄 아는 아이유…그 선

아이유가 2015년 발표한 ‘스물셋’과 2017년 발표한 ‘팔레트’(작은 사진 아래).

그로부터 2년 후 발표한 ‘스물셋’(2015)에서 아이유는 혼란을 떨치고 가까스로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노래의 화자와 크게 분리하지 않고 좀 더 가까이에 붙여 놓았다. 거기서부터 성장은 빠르게 이뤄졌다.


그녀가 택한 전략은, 다름 아니라 혼란스러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스물셋’에서 아이유는 “I’m 23, 난 수수께끼”라며 자신에 대한 대중의 요구와 그와 상반되는 여러 가지 면을 가진 자신을 두고, 대중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그것을 갖고 노는 발칙한 여자애를 연기한다. 그것은 자의식을 갖게 된 여성 아이돌에 다름 아니었다.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어느 쪽이게?/ 맞춰봐” 그녀는 다 큰 척하기도 덜 자란 척하기도 하고,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기도 하고, 물기 있는 여자가 되고 싶기도 하며, 죽은 듯이 살고 싶다가도 다 뒤집어 보고 싶기도 하다. 아이유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여성 아이돌로서 겪는 이 혼란함 자체를 스물셋의 자신으로 정체화하고 정리되지 않은 그 마음 자체를 영리하게 노래에 담았다.


그리고 스물다섯이 된 지난해 발매한 ‘팔레트’에서 아이유는 뭔가를 한 차례 내려놓은 듯했다. 그녀는 한결 여유롭고 관조적인 태도로 지금 스물다섯의 자신이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고 읊조린다. 대중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저울질하려는 영악한 ‘어른아이’의 마음을 가졌던 혼란스러운 스물셋과 달리, 스물다섯의 그녀는 보다 명확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짚어내고 진솔한 태도로 그런 자신을 긍정할 줄 안다. 이제 그녀는 ‘좋은 날’을 부르던 어린 시절을 명백한 과거로 명명할 정도로(“좋은 날 부를 땐 참 예뻤더라”) 성숙했고, “오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이 자신을 좋아해도 미워해도 “괜찮다”고 말하며 남들이 뭐라든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만들고 감독한다.


아이유는 지난해와 올해 이 음반으로 음악 인생의 정점을 거의 찍었다. 2017년 멜론뮤직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고,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상’을 수상했으며, 여성 솔로 가수로는 11년 만에 2018년 골든디스크 ‘디지털음원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BEEP-!

최근 데뷔 10주년 기념 싱글로 나온 ‘삐삐’는 그렇게 누군가 자기 자신을 긍정한 뒤에야 벌일 수 있는 세련되고 짓궂은 장난이다. 아이유는 당당하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모든 ‘오지라퍼’들에게 “에이 아직 모를 걸/ 내 말 틀려? 또 나만 나뻐? 어?”라며 “잘 모르겠으면 이젠 좀 외워”라고 약을 올린다. 귀엽고 발랄한 차림과 작정하고 정색한 새침떼기의 표정으로 웃음기 섞인 안무를 춘다. 단단한 정체성을 음악 안에서 스스로 구축해낸 아이유는 이제 ‘분홍신’ 때와 달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세계에 녹아든다.


그러고 보면 ‘삐삐’는 이제까지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던 많은 이들에게 더 이상 그런 식의 관심은 끄라는 완곡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애정이라도 다 자란 어른을 언제까지나 ‘여동생’ 취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아이유에게 ‘성장’ 같은 말을 (이 글처럼) 남용하는 것은 점점 더 선을 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이유는 지난 6월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 특집에 출연해 “잘 커준 보‘상’”을 받았다(재미로 하는 어워드). 유희열은 상장을 전달하며 말했다.

“귀하는 2009년 7월3일 스케치북 첫 출연 이후 9년간 스스로 혼자 무럭무럭 자라나 훌륭한 뮤지션이 되어 시작을 지켜본 우리들을 흐뭇하게 만들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잘 커준 보상이라니, 다소 뜨악한 기분으로 지켜보던 중 아이유는 의연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마침 스케치북 첫 출연한 날 일기를 찾아봤어요. 그때 무대를 망쳤다고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400회 특집에 초대받아 나간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어요.” 그녀는 당당하고 여유롭다.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이 좋다.

 

최근에 아이유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팬 서비스로 만들어 공개한 ASMR(‘귀르가슴’을 자극하는 기분 좋게 소름 돋는 작은 소리. 심리적 안정과 쾌감을 유도하는 소리) 영상을 봤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ASMR이 자칫 성적 대상화의 위험성을 띠고 있는 콘텐츠임에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인형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간임을, 자아를 가진 인식의 주체임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음흉한 기획자의 관리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이 모든 계획의 설계자다. ‘삐삐’의 곳곳에서 구슬을 굴리는 듯한 ‘팅글’ 사운드, 아이유의 특기인 속삭이는 입소리 ASMR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우리는 자신을 알아내기 힘들다. 좋아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아이유가 자신의 음악 속에서 엄숙하지 않게 제 나이에 맞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일은, 지금의 자기 자신을 바로 보기 힘든 많은 이들에게 이상한 감동을 준다. 남들이 자신을 좋아해도 미워해도, 나는 지금의 나를 알 것 같고, 그래서 좋고, 그래서 당신들이 뭐라든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뮤지션. 그리고 이제는 그런 자아를 갖고, 예의 없이 선을 넘는 타인들에게 “선을 넘지 마”라고 확실히 그러나 어디까지나 현대 음악 안에서 재치있는 방식으로 경고하는 여성 솔로 가수. 아이유의 여정은 독립적인 자의식을 갖게 된 여성 아이돌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는지 함께 지켜보는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연예인이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 중 최상 레벨의 서사일 것이다.


이로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