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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드렁큰 타이거로 증명해온 20년, 멋있게 마무리 짓겠다”

by경향신문

‘마지막’ 10집 앨범 발표…타이거JK로 새 출발

“자신에게 중요했던 이야기 들려준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BTS의 RM이 피처링한 곡 등…앨범 활동은 이제부터 시작

“드렁큰 타이거로 증명해온 20년,

‘드렁큰 타이거’로서의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 타이거JK. 필굿뮤직 제공

타이거JK(44·서정권)는 그간 “증명”하기 위한 20년을 살았다. DJ샤인과 결성한 ‘드렁큰 타이거’라는 그룹 이름은 당시 대중음악 기획자들에게 “레슬링 선수 이름이냐”는 지적을 들었다. “서봐, 한 바퀴 돌아봐, 춤춰봐, 뛰어봐.” 랩이 특기라는 그에게 돌아온 요구에 타이거JK는 당황했다. 1999년 발표한 1집 'Year of The Tiger(이어 오브 더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그가 한국 음악계에서 받은 인상에 대한 답이었을지 모른다. 20년이 지나, 이달 중순 그는 10집 'X: Rebirth of Tiger JK(X: 리버스 오브 타이거JK)'를 발표했다.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발매하는 마지막 앨범이다.

 

한국 힙합의 전설로 불리던 이름 ‘드렁큰 타이거’를 타임캡슐에 묻고 ‘타이거JK’로 새로 태어나려는 그를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은 이제 마지막이 되어야 할 때라고 느꼈다고 했다.

 

타이거JK는 “앨범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과거엔 내 표현이 별로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욕하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럼 나도 ‘아,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느끼고 다른 걸 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런 여유가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며 “말 하나로 위험해질 수 있는 때인데, 이제 나는 아기 아빠고, 남편이고 어른이다. 아티스트 ‘타이거JK’로만 남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다듬어진 표현만이 담긴 채로 드렁큰 타이거 앨범을 계속 발표한다면, 팬들에게도 우리의 추억이 별로 멋지지 않을 것 같았다.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을 멋있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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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타이거 10집 'X: Rebirth of Tiger JK' 표지. 표지 그림은 김정기 작가가 그렸다. 필굿뮤직 제공

이번 앨범은 두 개의 시디(CD)로 나눴다. ‘시디 01’에는 붐뱁 사운드 위주로 드렁큰 타이거 고유의 음악색을 담았다.

 

그냥 끄덕이고 즐겨달라는 뜻을 담은 타이틀 곡 ‘끄덕이는 노래’를 비롯해 도끼와 함께 작업한 ‘이름만 대면’,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피처링한 ‘Timeless(타임리스)’ 등을 수록했다. 타임리스는 공개 후 스웨덴, 이집트 등 18개국 아이튠즈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아이튠즈에서는 힙합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는 “이번 앨범에 피처링하겠다고 처음 결정한 게 RM이다. 콜라보를 결정하고 BTS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 사실 함께 작업하기 어렵겠다 생각했는데, RM이 먼저 연락을 줬다”며 “콜라보를 요청한 다른 지인 중에서도 함께 못한 이들이 있는데, RM은 먼저 적극적으로 해줘서 고맙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시디 02’에서는 재즈, 펑크,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힙합과 함께 풀어냈다.

 

스스로 “히트한 적 없는 가수”라고 표현했지만 ‘난 널 원해’ ‘하나 하면 너와 나’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심의에 안 걸리는 사랑 노래’ 등은 힙합 팬이 아닌 대중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그는 “100만장이 흔했던 시대에 우리는 회사에서 망한 가수로 불렸다. 하루 2500원으로 생활하고 음악 방송에 가도 대기실이 없어 화장실 옆에서 준비했다”며 “어차피 망한 거 미친 음악 해보자고 생각했다.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대우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4년 DJ샤인이 탈퇴했다. 홀로 팀을 지키며 6집 '1945 해방' 7집 'Sky is the limit(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 등을 발표했다. 2008년 한국 힙합계의 손꼽히는 래퍼 윤미래와 결혼했다. 2013년 9집 '살자' 즈음 고비가 찾아왔다.

 

아버지(국내 1호 팝 칼럼니스트 서병후)의 투병, 소속사와의 분쟁이 겹쳤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2014년 이후로는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최근 5년간은 방황기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롤 모델이자 친구였던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폐인처럼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땅바닥에서라도 사는데, 윤미래라는 가수가 나와 함께하겠다고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걸 보니 미칠 것 같았다”며 “음악 접고 떡볶이집 해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고 말했다.

 

2013년 윤미래, 비지와 함께 결성한 그룹 ‘MFBTY(엠에프비티와이)’는 먹고살기 위한 방도였다. 그는 “당시 ‘MFBTY를 왜 만들었나’라는 질문에 ‘다른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어서요’라고 했지만, 사실 먹고살 길이 없었다. 소속사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셋이서 먹고살 수 있는 건 이 그룹으로 행사를 다니는 것뿐이었다”며 “당시엔 인터뷰도 마네킹처럼 했다. 가식이었다”고 했다.

 

5년 만에 음악계로 돌아온 기분은 설레면서도 낯설다. 국내 음원 사이트 인기 차트에서 그의 이번 발표곡을 찾기는 힘들다. 발매한 앨범이 팬들에게 비판과 칭찬을 들으며 지속적으로 논의되길 바랐던 건 “달라진 시간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미스”라고 받아들였다. 비록 차트에선 사라졌지만, 앨범 활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팬들이 ‘드렁큰 타이거’를 자신에게 중요했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며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드렁큰 타이거와 팬들이 느꼈던 감동과 추억의 기억은 굉장히 위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준비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