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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쥐 화석이 들려주는…
6만년 전 사라진 ‘호빗의 비밀’

by경향신문

미 연구진, 분석 결과 발표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의 동굴 지역 6만년 전 급격한 환경 변화 일어나

소만 한 코끼리·거대한 황새 등 그 지역의 큰 동물들 자취 감추자 호빗도 사냥감 따라 이동 가능성

그 섬에 살고 있는 피그미족과는 유전적으로 아무런 연관성 없어

쥐 화석이 들려주는… 6만년 전 사라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발굴된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동부 리앙부아 동굴 현장에서 고인류학자들이 현재 이 지역에 서식하는 쥐를 들어보이고 있다(왼쪽).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거대한 쥐를 사냥한 모습의 상상도(오른쪽). 인류진화저널·고생물예술가 피터 샤우텐 제공

2003년 인도네시아 동부 플로레스섬의 리앙부아 동굴에서 키 110㎝ 정도인 ‘호미닌’이 발견됐다. 침팬지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인 426㏄의 뇌용량에 체중은 25㎏ 정도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호미닌을 발견한 호주 울런공대의 인류학자 마이클 모우드 교수는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키가 작은 종족에서 이름을 따 ‘호빗’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모우드 교수는 이듬해인 200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마침 <반지의 제왕>이 2001~2003년 3편의 연작 영화로 개봉돼 전 세계에서 흥행몰이를 한 시기였으니 호미닌의 정체에 학계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호미닌이란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해 사람과에 속하는 초기 인류 모두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쥐 화석이 들려주는… 6만년 전 사라

그러나 ‘호모플로레시엔시스’라 불리게 된 호미닌이 6만년 전부터 급격히 감소해 결국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섬에는 현재 키가 140㎝가량인 피그미족이 살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호모플로레시엔시스 유전자의 영향으로 피그미족의 키가 작아졌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피그미족과 호모플로레시엔시스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약 19만년 전부터 5만년 전까지 존재했던 이 호미닌이 멸종한 것인지, 집단이주를 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연구진이 이 동굴에서 대량으로 발굴된 설치류 화석을 통해 호빗들의 행방을 추적할 만한 단서를 찾아냈다. 미국 에머리대학 연구진은 ‘인류진화저널(Journal of Human Evolution)’에 지난 13일 게재한 논문에서 이 동굴에 서식했던 다양한 쥐 화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약 27만5000개의 설치류 화석을 분석한 결과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줄기 시작한 시기인 약 6만년 전 이 동굴이 있는 지역에 급격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동굴을 떠나 섬 내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구진이 이 동굴 주변의 환경변화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체 발굴된 화석의 80%가량을 차지한 설치류 화석에서 다양한 종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초원에 서식하는 종과 숲에 서식하는 종이 있었는데 이들이 서식한 시기가 각각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동굴 주변에 살았던 시기에는 이 지역이 초원이었고, 이들이 사라진 시기에는 숲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이 섬에는 현재도 소형견만 한 크기의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섬은 호모플로레시엔시스뿐 아니라 소만 한 크기의 코끼리로 현재는 멸종한 스테고돈, 코모도왕도마뱀, 거대한 황새 등 독특한 생물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그런데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사라진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스테고돈, 코모도왕도마뱀 등도 동굴 주변 지역에서 같이 자취를 감췄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초원에서 숲으로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크기가 큰 동물들이 동굴 주변을 떠나자 이들을 사냥감으로 삼던 호모플로레시엔시스도 같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약 5만년 전부터는 호모플로레시엔시스뿐 아니라 스테고돈, 코모도왕도마뱀 등의 흔적은 완전히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호모플로레시엔시스와 플로레스섬에 대해 연구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캠퍼스 연구진은 이처럼 크기 면에서 특이한 동물들이 존재했던 이유에 대해 섬에 적응한 결과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닫힌 생태계인 섬에서는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큰 동물은 작아지고, 포식자가 없다보니 작은 동물은 커지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주장대로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6만년 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을 뿐이라면 현생 인류와도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생 인류가 이 섬에 도착한 것이 약 4만6000년 전이니 그때까지 생존해있던 호모플로레시엔시스와 현생 인류가 섬 어딘가에서 조우했을 수도 있는 셈이다.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어디로 갔는지도 오리무중이지만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해서도 학계에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호주국립대학 연구진은 2017년 ‘인류진화저널’에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고대 아프리카에 존재했던 호모하빌리스로부터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도구를 쓰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하빌리스는 약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 나타난 초기 인류이다. 호주 연구진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호모하빌리스가 플로레스섬에서 식량 부족으로 인해 작아졌거나 아프리카에서 작은 몸집으로 진화한 뒤 이동해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는 달리 플로레스섬에 도착한 호모에렉투스들이 섬에 적응하면서 몸집이 작아졌거나 질병으로 인해 다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직립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에렉투스는 약 100만년 전 인류의 조상과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플로레시엔시스가 어느 쪽으로부터 진화했는지에 따라 초기 인류 가운데 호모에렉투스가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했다는 설이 뒤집힐 수도 있다.


다만 플로레스섬의 피그미족과 호모플로레시엔시스는 유전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캠퍼스의 리처드 그린 부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플로레스섬에 거주하는 피그미족 32명의 혈액과 타액을 유전자 분석한 결과 호모플로레시엔시스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피그미족의 키가 작은 것은 호모플로레시엔시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화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에머리대 연구진은 호모플로레시엔시스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리앙부아 외의 플로레스섬 내 다른 동굴에서 발굴을 계속할 계획이다. 또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쥐 화석의 추가 분석을 통해 환경변화에 대해서도 살펴볼 예정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