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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김진의 나 혼자 간다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의 결정체

by경향신문

프랑스 몽생미셸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여행지 몽생미셸로 향하는 길, 너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들이 여행자를 먼저 맞이한다. 저 멀리 둘레가 고작 1㎞에 불과한 작은 섬이자, 유서 깊은 수도원 몽생미셸이 보인다.

1300년 된 수도원과 ‘영감을 품은 바다’ 노르망디 해안의 경이로운 풍경

“거긴 뭐 하러 가? 많이 봐서 이미 간 것 같은데….”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음악은 오디오로 듣고 책은 종이로 보는 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모바일 화면에서 느낄 수 없는 희열이 여행길엔 있고 그래서 가봐야 하는 것이다. 여행은 고단하고 지치는 일이다. 여행작가의 일은 더 그렇다. 그럼에도 상상이 현실이 될 때의 짜릿함이 다시 떠나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런 기분을 몽생미셸에 다가가는 길에서 느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바다와 섬과 하늘을 봤지만 몽생미셸은 성스러워서 달랐다. 해는 노르망디 해안을 물들이며 졌다. 붉은 노을을 마주하며 프랑스 여행에서 만난 것들을 떠올렸다. 프랑스에서 싫었던 경험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변해가며 그리워지고 있었다.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황금빛 미카엘 대천사는 수도원 첨탑 맨 꼭대기에 앉아 노르망디 해안을 굽어보고 있다.

프랑스의 북부 영불해협과 면해 있는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지방은 프랑스의 내륙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지니고 있어 많은 관광명소를 남겼다. 몽생미셸(Mont Saint-Michel)은 노르망디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섬이자 수도원이다.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초코과자를 떠올리지만 몽 쉘 통통(mon cher tonton)은 ‘친애하는 나의 삼촌’이라는 뜻으로 몽생미셸과 연관성은 하나도 없다. 프랑스어로 몽(Mont)은 산을, 생(Saint)은 성자를, 미셸(Michel)은 대천사 미카엘을 뜻한다. 이 세 가지 뜻만 이해한다면 몽생미셸의 서문을 읽은 셈이다. 몽생미셸은 아주 작다. 둘레가 1㎞밖에 안되고 상주하는 인구는 고작 40여명뿐. 그나마도 인구의 3분의 1 정도는 수사(修士)와 수녀가 차지한다.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몽생미셸의 갈매기들은 사람을 봐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해안의 안쪽에 위치한 마을에서 몽생미셸까지 걸었다. 관광객을 위한 무료 셔틀버스는 돌아오는 길에 타기로 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걸으니 섬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공기는 레몬처럼 상쾌했고 와사비처럼 톡 쏘았다. 갯벌에 햇살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바닷물이 빠진 너른 초원에서는 양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고기는 특별히 맛이 뛰어나 주변의 레스토랑에서 고급 요리로 팔린다고 했다.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관광마차는 정지화면 같은 풍경에 활기를 더했다.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성직자들이 벽과 창문만 바라보며 묵언 식사와 수행을 하던 곳.

몽생미셸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여행지다. 중세엔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았고 이젠 한 해에 수백만명의 여행자들이 오간다. 몽생미셸은 낮에 수많은 사람을 불러들였다가도 밤이 되면 모두를 토해 흩어낸다. 대부분이 일일투어로 오기 때문에 아침에 도착해서 오후면 다 빠져나간다. 하지만 몽생미셸이 주는 신비로운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는 새벽과 해질 녘을 놓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해무에 싸인 수도원은 성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어떤 느낌인지를 온몸으로 전한다. 평화와 안정, 여유 같은 걸 느끼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공간에 쑤욱 들어가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몽생미셸에서는 적어도 이틀은 머물러 보라고 조언을 하는 이유다.


몽생미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세기 초, 주교로 있던 오베르(Saint Aubert)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났다. “큰 돌 위에 예배당을 지어라.” 미카엘은 명령을 남겼다.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꾸고 나서는 미카엘의 명을 받아들여 모래톱 위에 솟아 있는 휑한 바위섬에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다. 996년 베네딕트 수도원이 건립되면서 건축물의 위용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12세기에는 성벽을 쌓아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요새 역할을 겸했다. 13세기까지는 집중적으로 규모를 키웠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70여년간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의 몽생미셸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이며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지금은 시대가 원하는 대로 유명 관광명소가 되었다.


대천사 미카엘은 꿈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곳에 성전을 지으면 그들이 오리라.” 수도원이 가장 부흥했던 중세시대에 순례자들이 줄을 지어 오르곤 했던 길을 이제는 한 해 4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간다. 미카엘의 계시는 어떤 식으로든 맞은 셈이다.


언덕을 올랐다. 입구를 지나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하지만 섬이 워낙 작아서 길을 잃을 일은 절대 없다. 초입에는 촌락이 형성돼 있다. 이웃의 숟가락 개수를 알고도 남을 만큼 건물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주택과 호텔, 레스토랑과 기념품 상점이 이어진다. 마을을 지나면 광장이 펼쳐지고 곧 수도원이 나타난다. 수도원은 또 3층으로 나누어진다. 1층은 서민, 2층은 왕과 귀족, 3층은 성직자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중세시대의 봉건적 계급사회를 잘 보여주는 건축학적 배치다. 성직자가 이용하는 계단은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성직자들에게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천국의 계단을 쓸 일이 별로 없었고, 사는 동안 몽생미셸을 벗어나지 못했다.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밤의 ‘몽생미셸’.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몽생미셸은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고 나중엔 고딕 양식으로 마무리했다. 아케이드가 줄지어 서 있는 회랑은 고딕 양식의 정수로 꼽힌다. 그러나 로마네스크니 고딕이니 하는 건축 양식을 따지고 보는 것은 몽생미셸에서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몇 백년 동안 부침을 거듭하면서 차곡차곡 지어진 건축물인데도 탄생 시기가 다른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얽혀 있는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돌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골목길 귀퉁이는 손길로 닳아 반들거린다. 예배당 내부는 소박하다. 회색 벽돌로 투박하게 마무리한 벽과 바닥에서 금욕과 절제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다. 감정보다는 이성에 충실했던 성직자들은 예배와 수행이 아니면 아름다운 글씨로 성경을 베끼고 책을 만드는 일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빛조차 사치로 여겼는지 창은 좁다랗다. 햇살은 그 사이로 조심스럽게 스며든다. 그 앞에 꾸부정하게 앉아 필사를 거듭하거나 창만 바라보고 가난한 식사를 하던 성직자들의 묵언수행이 떠올라 엄숙해졌다.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수도원으로 음식을 실어올리던 도르래. 이 아래 구멍으로 시신이 버려졌다.

더 어두운 기억을 간직한 것은 수도원으로 음식을 올려 보내던 도르래다. 평생 수도원을 벗어날 수 없었던 성직자들은 필요한 음식이나 물자를 도르래로 올려서 받아야 했다. 수도원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직선으로 연결된 쇠줄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도르래에 사람이 들어가 구르듯 돌려야 했다. 용서받지 못한 죄수가 도르래의 노동을 담당했다. 워낙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많은 죄수들이 이로 인해 죽었다. 시체는 바로 옆 우물처럼 깊은 구덩이에 던져졌다. 단지 한 접시의 빵과 과일을 먹기 위해 이 일을 택한 죄수는 용서도 받지 못한 채 내버려졌다. 신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계급의 선은 명확했다. 물론 지금 사는 우리 세상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둘레 1㎞…이 작은 섬은 ‘성스럽다’

고딕양식의 정수로 꼽히는 몽생미셸의 회랑.

성직자들도 그나마 하늘이 뻥 뚫린 회랑에서는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었다. 물이 십수㎞나 빠져버린 바다는 퇴적물이 드러나 온통 잿빛이다. 시선의 끝엔 지평선과 수평선만 있다. 노르망디 해안은 그 크기가 얼마나 넓은지 1944년 2만4000명이 넘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던 거대한 파노라마가 절로 떠오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은 바다를, 섬을, 하늘을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지방에 몰려가 그림을 그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중세시대 순례자의 마음과 화가의 마음, 21세기 여행자의 마음이 겹쳐졌다.

여행 정보

1년에 6~7번뿐…대만조를 만난다면 ‘대만족’할 거예요

  1. 몽생미셸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파리에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중교통으로 한 번에 갈 방법은 없고 한 번 이상 갈아타야 한다. 몽파르나스 기차역에서 TGV를 타고 렌(Rennes)까지 간 다음 몽생미셸행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기차는 2시간, 버스는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는 자주 있는 편이어서 환승시간은 길지 않다.
  2. 마을과 몽생미셸을 다리가 잇고 있지만 해수면이 상승하면 다리가 모두 바닷물에 잠겨 몽생미셸은 완벽한 섬이 된다. 12.85m 이상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을 대만조(big tide)라고 하는데, 이런 대만조는 1년에 예닐곱 차례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를 맞춰 방문한다면 일생일대의 행운인 셈. 그 시기야말로 포토그래퍼들의 성지가 된다.

김진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