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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강원 고성 5일장

지역 경제 도우려,
장터·맛집 다녀오겠습니다

by경향신문

강원 고성 5일장

 

속초 IC 나오니 바로 화재 현장

흩날리는 벚꽃잎 보며 간성으로

 

씹는 맛 일품인 북방계 미역

6000원에 상품 한 다발 ‘득템’

 

작은 포구마다 회센터와 시장

저도 어시장엔 문어가 한창

㎏에 3만원이니 배불리 먹고

 

거진항선 매일 오전 경매

팔딱팔딱 뛰는 임연수어 구경

다리 떨어진 홍게, 가성비 최고

 

주변 골목엔 맛집 즐비

봄 소풍서 보물찾기하는 기분

홍게라면·문어육개장 ‘강추’

지역 경제 도우려, 장터·맛집 다녀오

산불 피해를 입은 고성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동해 바다를 낀 고성의 작은 포구마다 봄의 생기를 담은 먹거리들이 관광객을 반긴다. 현지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큰길보다 작은 골목을 잘 살펴보자.

강원도 고성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최근의 산불이 마음에 걸렸다. 십 몇 년 전, 내가 살던 아파트가 전소된 적이 있다. 그것도 추석날 말이다. 꽤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불났다는 뉴스만 봐도 그때의 암울함이 생생히 떠오른다. 속초IC를 나오니 바로 화재 현장이다. 불기운에 무너져 내린 창고, 뼈대만 남은 집, 타버린 교회 등 당시의 참혹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을 정리하던 2005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피해자들이 기운 내시기를 빌며 고성으로 차를 몰았다.


강원도엔 높은 산이 많다. 겨울이 빨리 오고 늦게 간다. 강원도에서도 추운 쪽은 태백산맥 너머의 평창, 태백, 영월, 화천 등 서쪽이다. 동해를 품고 있는 고성, 양양, 속초는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한겨울에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미시령이나 한계령을 넘어 바닷가가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올라 영상권에 접어든다. 봄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벚꽃이 한창이다. 바닷가에 성급히 핀 벚꽃은 이미 꽃잎 날리며 지고 있었다. 벚꽃 너머 설악산 꼭대기는 여태 하얗다. 며칠 전 내린 폭설의 흔적이다. 곳곳에 만개한 벚꽃을 보며 고성의 중심, 간성으로 갔다.

씹는 맛 있는 동해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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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미역

간성장은 2·7일장이다. 오전 10시, 서서히 장이 들어선다. 다른 오일장은 동틀 무렵부터 장터에 사람이 가득하나 이곳은 점심 무렵이 돼야 사람들이 몰린다. 쑥, 머위, 두릅 등 봄나물이 대부분이지만 장터 한가운데에 몇 무더기 쌓아올린 미역이 눈에 띄었다. 미역이야 어디서든 살 수 있지만 고성의 미역은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나는 미역과 결이 다르다.


동해안에서 나는 미역은 완도에서 나는 미역과는 종이 다르다. 완도 미역은 남방계 미역으로 보드랍다. 동해에서 나는 미역은 북방계 미역으로 줄기가 억세서 완도산과 달리 씹는 맛이 있다. 노끈으로 대충 묶은 미역 다발이 정겹다. 부들부들한 미역보다 씹는 맛이 있는 미역을 좋아하는 노모 생각이 불현듯 나 한 다발 샀다. 파도에 휩쓸려 나온 것과 바위 근처에서 난 것을 채취해 반암해수욕장 한편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말린 것이라 했다. 미역 파는 할머니가 미역 부스러기를 건네셨다. 씹으니 짜다. 짠맛에 침이 고이며 딱딱했던 미역이 이내 부드럽게 씹혔다. 은근한 단맛을 살짝 내비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오랜만에 맛있는 미역을 샀다. 6000원이라는 가격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미역이다. ‘득템’을 외칠 수 있는 오일장만의 매력이다.


동해안을 품고 있는 고성은 몇 ㎞ 거리를 두고 작은 포구가 이어진다. 포구마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회센터와 어시장이 있다. 1층엔 싱싱한 횟감과 수산물이 있다. 가진항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물회센터와 문어 집산지인 대진항의 회센터가 나름 유명하다. 오일장 구경을 끝내고 고성 최북단 항구인 대진항으로 갔다.


4월엔 엎드린 돼지 모양으로 생긴 저도(猪島) 어장이 열린다. 고성군 앞바다 지역으로 북방한계선(NLL)에서 불과 1㎞ 떨어진 동해안 최북단 어장이다. 4~12월에 한시적으로 조업을 허용한다. 한겨울 3개월 동안 조업을 쉬었던 바다는 다양한 어종과 풍부한 어획량을 선사한다. 특히 문어가 많이 잡힌다. 새벽에 조업 나간 배들이 점심시간 지나면서 한두 척씩 항구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면 문어 경매가 열린다. 전설 속의 괴물 크라켄의 손자인 듯싶은, 10㎏이 넘는 대문어부터 1㎏ 정도 나가는 작은 문어까지 다양한 크기의 문어가 경매에 부쳐진다. 저도 어장이 열리기 전에는 문어 가격이 비싸지만 어장이 열린 다음부터는 풀리는 날씨만큼 빠르게 가격이 내려간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수산시장에도 문어가 가득하다. 수산시장에서 팔리는 문어 가격은 ㎏당 3만원이다. 문어를 고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쪄 준다. 회센터 2층 초장집에서 먹을 수도 있다. 식당에서 얇게 저민 문어숙회 한 접시에 몇만원씩 하는데, 그 돈이면 대진항에서는 문어로 배를 채울 수 있다. 대진 수산시장 6호 해녀 세자매(010-8733-1848).

포구에서 현지인처럼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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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어

고성의 최대 항구 거진항에선 매일 오전 주변 바다에서 잡아올린 수산물 경매가 열린다. 대구, 광어, 우럭부터 홍게, 대게까지 배에서 꺼내 진열하면 곧바로 경매 시작이다. 임연수어가 가장 많이 경매에 올려진다.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임연수어의 비늘은 빛난다. 죽는 순간 빛나던 비늘은 사라지고 이내 줄무늬가 몸통에 나타난다. 횟감으로 최고인 돌참치, 청어도 눈에 띈다. 팔린 생선은 속속 주변 식당으로 간다. 경매장 한편에서는 잡아온 임연수어를 바로 손질해 염장한다. 일반인들도 살 수 있으며 식당으로 갈 수 없는 다리 떨어진 홍게나 대게를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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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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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게라면

거진항 경매장 옆에는 난장이 있다. 경매가 끝난 수산물이 여기서 팔린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홍게도 있지만 다리가 떨어지거나 죽은 홍게가 열댓 마리씩 수북이 쌓여 있다. 가격을 물으니 대게 한 마리 가격과 같은 7만원. 대게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홍게의 가성비는 대게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살맛도 좋거니와 대게 한 마리 가격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여럿이 간다면 대게보다는 홍게가 좋다. 가진항 난장 민수네(010-5361-3481).


작은 포구에서 현지의 맛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가 포구 주변 골목 탐색이다. 버스가 다닐 정도의 큰 도로에는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식당들이 많다. 작은 골목이나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선착장 주변에는 뱃일을 끝낸 이들이 찾는 작은 식당들이 있다. 식당에서 동네 사람들이 술병 앞에 두고 권커니 잣거니 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도 기본 이상을 한다.


포구에 있는 작은 식당 메뉴에는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외지인들이야 비린내를 찾아 포구를 찾지만 현지인들은 기름진 육고기를 더 선호한다. 동네분들 몇몇이 고기 안주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거진항 해양파출소 옆 쉼터 포장마차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메뉴 고민 없이 홍게라면을 주문했다. 경매에 올리지 못하는 홍게로 끓인 라면이다. 비록 B급이지만 그래도 홍게는 홍게인지라 제법 게 향과 맛이 난다. 꽉 찬 속살은 아니지만 게다리의 살 빼먹는 맛도 괜찮다. 여름에 오면 회국수 맛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감과 촉으로 찾은 문어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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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

식당 이름에 배 이름이 붙어 있으면 기본 이상의 음식을 기대할 만하다. 메뉴가 단출하다면 더욱더 기대감을 높여도 좋다. 강성호식당은 가자미물회와 회덮밥, 그리고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아침 장사는 하지 않아 오전 11시 넘어야 식당 문을 연다. 물회냐 회덮밥이냐 잠시 갈등했다. 대식가는 둘 다 선택하면 그만이겠지만 작은 위장 크기를 원망하며 물회를 선택했다. 눈앞에 잡힐 듯 보이는 눈 덮인 설악산 모습에 마치 다시 겨울이 온 듯싶지만 내리쬐는 햇볕이 덮밥보다는 물회의 손을 들어줬다. 아들과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가 가득한 수족관에서 안주인은 실한 가자미를 꺼내 손질하고는 이내 물회로 뚝딱 만들어 내왔다. 가자미 손질하는 사이 삶은 국수가 같이 나왔다. 국수 타래 몇 개를 넣고 잠시 육수를 머금도록 시간을 잠시 준 다음 국수를 말았다. 쫄깃한 면발과 탱탱한 가자미살 맛에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동네에서 농사지은 매운 고춧가루로 만든 육수는 윤활유가 되어 젓가락에 가속도를 붙였다. 물회는 육수도 중요하지만 역시 회가 맛있어야 한다. 강성호식당(033-68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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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육개장

작은 포구가 많은 지역을 여행할 때 따로 맛집을 검색하지 않는다. 포구 여기저기를 다니며 메뉴를 선택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포구에서 식당 찾기는 소풍 가서 보물찾기와 같은 재미다. 애써 찾은 보물 쪽지가 꽝인 경우도 있지만 쏠쏠한 선물을 안겨주는 쪽지처럼 맛있는 집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포구를 헤집고 다니는데 ‘문어육개장’이 눈에 띄었다. 재미난 이름에 고민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감과 촉으로 선택해 실패한 경험도 꽤 있지만 실패 또한 여행의 재미인지라 항상 감과 촉을 믿는다. 문어육개장 국물을 먼저 맛보니 얼큰한 맛이 괜찮다. 토란대, 고기, 문어 등이 꽤 들어 있는 건더기도 마음에 쏙 들었다. 오랜만에 촉이 제대로 발동했다. 봉포맛집(033-635-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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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조림

아야진 어부밥집은 포구에서 나오는 다양한 생선을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요리한다. 싱싱한 생선이 가볍고 청량한 맛이라면 반건조 생선은 묵직하고 깊은 맛이 있다. 아야진에서 동해산 조개를 전문으로 파는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 도루묵, 대구, 가자미, 장치 등 동해에서 나는 생선을 매콤하게 조렸다. 반건조해서 쫀득해진 살에 매콤한 양념장을 듬뿍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말랑말랑한 대구는 반건조하면 코다리보다 맛있다. 생긴 것은 무섭게 보여도 살맛 좋은 장치는 대구 말린 것보다 한 수 위다. 도루묵, 가자미도 “밥 한 공기 더”를 호기롭게 외치는 데 일조한다. 어부밥집(033-633-4237).


필자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