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내버려두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경향신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경향신문

유럽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는 넘치지만 암스테르담은 독특하다. 운하와 크루즈,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섞인 도시 풍경은 암스테르담만의 매력이다.

네덜란드를 보여주는 네 가지 키워드

암스테르담의 봄. 하늘은 음침했고 바람은 맨살을 때렸다. 어쩌다 한 줄기 햇살이 쏟아질 때면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노천카페에 둘러앉아 하이네켄을 마셨다. 네덜란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큰 키를 가지게 된 것은 소중한 햇빛을 받기 위해 위로 솟은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은 귀했다.


암스테르담 출신인 나의 영어 선생님은, 이런 날씨는 암스테르담의 일상이라 놀랄 일도 아니라 했다. 흐린 날씨와 높은 생활물가 때문에 고국인 네덜란드에 약간 부정적인 그는, 믿을 수 없게도 서울의 ‘넓은’ 주택을 부러워한다.


튤립 - 어딜 가나 만나는 꽃…한적해서 더 좋았던 축제 ‘쾨켄호프’

경향신문

튤립은 향기가 없지만 봄의 향기 하나만큼은 물씬 풍긴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동네 장터에 들렀다. 한쪽엔 구근식물과 각종 꽃을 파는 상인이 있었는데, 치즈가게 다음으로 사람이 많았다. 네덜란드는 소 한 마리당 우유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치즈가 매우 발달했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파라핀으로 두껍게 감싼 치즈는 납작해진 축구공만 한데, 네덜란드 어딜 가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보다 흔한 건 꽃이다.


유난히 꽃을 좋아한다는 점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이네켄 양조장에서는 노란색 튤립 한 송이를 기념품으로 나눠주었다. 기념품 가게 정도 수준에 그쳐 피식 웃음이 나왔던 튤립뮤지엄에선 튤립에 대한 역사를 알기는 어려웠지만, 튤립에 대한 각별한 애정 하나만큼은 제대로 느꼈다. 신라면과 K팝 스타 얼굴을 양말에 새겨넣은 한국의 여행 기념품보다는 튤립이 훨씬 낭만적이지 않은가 싶어서 튤립뮤지엄에서 이것저것 사 모았다. 네덜란드엔 어느 도시, 어느 역, 어느 마트를 가든 꽃집이 있었고, 튤립이 들어간 기념품이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꽃이 흔한 나라는 봤어도 그저 꽃을 좋아해 꽃이 흔한 나라는 처음이었다. 플라워아트는 프랑스나 영국이 앞서지만, 네덜란드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꽃을 사랑한다.


튤립축제로 알려진 ‘쾨켄호프(Keukenhof)’의 첫날은 한산해서 좋았다. 유럽에 봄이 왔음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쾨켄호프는 3월에 시작해 5월까지 문을 연다. 입구에서부터 소시지나 츄러스가 반기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아우성치는 용인의 튤립축제와는 비교도 안 될, 한적하고 평화로운 축제였다. 바람은 나뭇잎으로 소리를 전했고 정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엔 윤슬이 반짝였다. 이른 봄이라 꽃들은 꽃잎을 오므리고 수줍게 웃었다. 촉촉한 염료가 톡 터져 나올 것처럼.


쾨켄호프는 부엌(Keuken)과 정원(hof)이 합쳐진 말로 ‘찬거리를 공급하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원래 귀족의 연회를 위해 야채와 허브를 재배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찬거리를 심어 키우지는 않지만 튤립을 포함한 구근식물들은 확실히 네덜란드를 먹여살리는 일등 공신임엔 틀림없다.


네덜란드는 꽃 수출 1위 국가이면서 세계 튤립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수입한 꽃을 개량해 더 비싸게 되파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6세기에 네덜란드에 전해진 튤립은 17세기에 이르러서는 투기의 대상이 됐다.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폭등한 역사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튤립에 대한 강한 집착을 말해준다.


자전거 - 인구 1700만명, 자전거 2300만대…도로에선 두 바퀴가 ‘갑’

경향신문

암스테르담 사람과 자전거는 한 몸. 남녀노소 어딜 가든 자전거로 이동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반드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전거. 자전거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발이다. 네덜란드 인구는 약 1700만명인데 자전거는 2300만대가 넘으니 자전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스테르담에서 1시간 이내 쓸 수 있는 대중교통 이용권은 3.2유로. 우리 돈으로 4000원이 넘는 무시무시한 교통물가를 보고 나는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됐다.


트램과 지하철, 버스가 암스테르담을 촘촘하게 연결하지만 그래도 도로의 주인공은 자전거다. 차로 옆으로 좁다란 화단이 있고 자전거도로와 인도는 서로 분리돼 있다. 횡단보도는 자전거용과 보행자용이 같은 폭으로 넓게 나눠져 있어서 서로 부딪칠 일 없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기 힘든 것도 자전거 때문이다. 자전거는 네덜란드 깊숙이 들어와 네덜란드 풍경과 문화를 만든다.


네덜란드인이 유럽에서 가장 날씬한 이유가 자전거를 많이 타기 때문이라는 말에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부근의 건물 하나는 전체가 자전거 주차장이다. 지하철 입구엔 자전거 이동이 편하도록 경사로를 만들어놓았다. 암스테르담 남북을 연결하는 페리에도 넓은 자전거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사람들은 자전거에 올라탄 채로 페리를 탔다. 자전거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나는 호찌민의 오토바이 행렬처럼 암스테르담의 자전거 행렬에 후들거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익숙지 않아 인도인 줄 알고 걷다가 가까스로 추돌을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좁은 집 - 운하 양옆 도열한 뾰족 지붕들…고풍스러움의 ‘완결판’

경향신문

지금은 박물관이 된 렘브란트 하우스.

암스테르담 도심의 집은 좁다. 도시를 휘감아 도는 운하 양 옆으로는 책을 엎어놓은 듯 뾰족한 지붕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박공지붕의 집들은 16세기부터 지어진 것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귀여운 암스테르담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과거엔 집의 앞 폭에 따라 세금을 매겼기 때문에 좁은 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집과 집 사이엔 개미 드나들 만한 틈새도 없다. 도시 외곽으로 가면 현대적이고 넓은 아파트가 많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넓은 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안쪽으로 깊어져서 방 한 개와 작은 거실 정도가 있고, 좁고 긴 창문으로 햇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나선형으로 이어진다. 불편했다. 서울 사람 입장에선 한숨이 나왔다. 너무 좁아서 가구는 어떻게 옮기느냐 물었더니, 집 바깥 꼭대기를 가리켰다. 박공지붕 세모 가운데엔 쇠로 된 굵은 갈고리가 매달려 있는데, 여기에 줄을 달아 도르래처럼 올린다고 했다. 그마저도 창문의 폭을 넘으면 들여올 수 없으니, 간소하고 깔끔한 암스테르담 가정의 인테리어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결국 파산하고 말았지만 부자이자 거상이었던 화가 렘브란트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빛의 화가이자 네덜란드의 국민화가,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부유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렘브란트의 집은 전통적인 암스테르담의 집 치고는 매우 넓은 편이지만, 한 층이 우리나라로 치면 20평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이 시대에 지어진 집은 5층이 넘지 않고 한 층에 창문이 3개 이상 되지 않는다. 5층이 넘고 창문이 3개를 초과하면 어마어마한 세금을 매겼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워낙 비싸 집을 구하지 못해 운하에 배를 띄우고 집으로 개조해 살았다. 지금 운하 가장자리에 줄지어 떠 있는 암스테르담의 명물, 하우스보트의 시작이다. 엄연한 주택이며, 그 숫자가 1만2000개를 넘는다. 지금은 부자들이 취미로 사들이거나 에어비앤비를 운영해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하우스보트 지붕 위에서 태닝을 즐기고(햇빛도 없는데), 작은 화단을 가꾸고, 주변을 백조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꽤 낭만적이다.


내버려두기 -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 사회’를 만든 원동력

경향신문

네덜란드의 상징, 하이네켄 맥주.

중앙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도심 중앙에 위치한 담광장 부근 좁다란 골목, 손짓으로 대마초를 거래하는 모습도 보였고, 홍등가는 여전히 투어로 북적였다. 홍등가는 2020년부터 관광객 투어가 전면 금지된다. 하루에 1000개 이상의 투어팀이 오갈 정도로 암스테르담의 성매매 지역은 관광의 큰 축이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음을, 가장 앞서가는 나라, 네덜란드가 왜 지금 알게 됐을까.


아무리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커피숍(coffee shop)’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입구부터 음침한 기운이 느껴져 발길을 돌렸다. 커피숍은 커피와 함께 마약을 파는 곳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반드시 카페(cafe)로 가야 한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거래하는 것은 엄밀히 불법이지만 커피숍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용인된다.


네덜란드의 ‘헤도헌(Gedogen)’ 정신은 네덜란드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 ‘불법행위가 없는 유토피아란 없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허용하는 것이 낫다’라는 의미다. 헤도헌은 관용을 뜻하는 프랑스의 ‘톨레랑스’와 비슷하지만, 개인의 자유에 대해 ‘내버려 두기’ 정신이 더해졌다고 보면 된다. 1976년 네덜란드는 다른 마약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마초를 합법화했고 이로 인해 헤로인 사용이 30%나 감소했다.


놀라운 것은 1811년에 이미 동성애를 허용했고, 1984년 세계 최초로 낙태를,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는 점. 이제서야 낙태죄에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린 나라에서는 네덜란드의 ‘세계 최초’ 타이틀이 낯설면서도 부럽다.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개척해 살아온 강한 의지는 내버려 둬도 되는, 낙천적인 에너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강한 통제에서 부작용을 많이 겪은 우리는 왜 아직도 내버려 두는 데 이리도 인색할까.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경향신문

담 광장의 버스커. 다들 바빠서 비둘기만이 관객이 되어주었다.

김진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