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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백발의 은퇴 법의관은
오늘도 부검실로 출근한다

by경향신문

국과수 ‘법의관 가뭄’이 불러낸 원로 학자

 

1세대 법의학자 강신몽 교수 포함 예순 넘긴 은퇴 학자 5명 객원 활동

일주일 3일 이상 부검 관련 업무, 현장의 절반 해결 ‘정직원 버금’

“법의관에 수사 재량권 부여해야”


20년 교수 생활 중 법의학 택하는 학생 단 2명

제자들에게 사명감만 들고 법의관의 길 권하긴 어려워

백발의 은퇴 법의관은 오늘도 부검실로

“제 2 인생 살고 싶지만…” 1세대 법의학자인 강신몽 가톨릭대 명예교수를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은퇴 후 부검과 상관없는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했지만, “사람이 없어 힘들다”는 후배 법의관들의 요청으로 지금도 일주일에 사흘은 부검 가방을 챙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백발의 노법의관은 1주일에 한 번,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현장을 누빈다. 부검실에서 사망 원인 ‘불명’의 시신에서 생전 이야기를 뽑아낸다.


강신몽 법의관(66·가톨릭대 명예교수)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대학에서 은퇴하고 다시 부검실로 돌아왔다.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미뤘다. 도와달라는 후배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부검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해원이라는 신념에다 피치 못할 다른 사정도 있다. 만성적인 법의관 부족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올해부터 객원 법의관 제도를 도입했다. 법의관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소장급으로 은퇴한 5명에게 객원 부검을 의뢰했다. 강신몽, 이원태(65), 정낙은(62), 서중석(62), 이한영(61) 법의관이 객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1주일에 하루 서울, 대전, 원주 등지에서 부검한다. 한 번에 약 3~4건을 맡는다. 1년으로 치면 150건 정도다. 국과수에 근무하는 법의관 1명이 1년에 300건 정도를 부검하니 그 절반가량이다. 은퇴 후 다시 시작한 법의관 생활을 이들에게 들어봤다.


강 법의관은 경향신문과 만난 지난달 29일 아침 일찍 두 건의 부검을 진행하고 나왔다. 강 법의관은 “부검 관련 사건 일지를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지금도 1주일에 사흘은 국과수 부검에 온 신경을 쏟는다”고 했다. 말이 객원이지 정직원에 버금가는 노동량이다. 그가 처음 국과수에 들어간 1989년에도, 2019년에도 법의관은 부족했다. 강 법의관은 “후배들이 사람이 없어 힘드니 도와달라 하는데 안 한다고 할 도리가 없어 다시 부검을 시작했다”고 했다. 한 현직 법의관은 현재 업무 강도를 “살인적인 업무량”이라고 말한다.


서중석 법의관은 부검이 있는 날엔 오전 5시에 일어난다. 평소 잘 먹지 않는 아침밥도 챙겨 먹는다. 경기 성남시 분당 집에서 오전 8시까지 부검실이 있는 원주나 대전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서 법의관은 “부검은 그냥 시신을 해부하는 게 아니다”라며 “사건 기록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현장 사진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53명이다. 올해 5월 기준 현원은 32명이니 정원에서 21명이나 미달한다. 대전 등 일부 사무소에는 근무 인원이 1~3명 사이를 오간다. 병가나 출산휴가 등이 겹치면 사무소에서 법의관 1명이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낙은 법의관은 2017년 국과수를 퇴임했다.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근무 중이지만, 국과수 일은 2017년 이후에도 쉬지 않았다. 촉탁 법의관으로 서울 지역에서 부검을 이어왔다. 그는 “특히 대전 지역이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 부검 업무는 늘어나는데 현직 법의관들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은퇴한 우리에게 부탁이 왔다”며 “후배들의 업무 밸런스가 무너진 상황을 객원 다섯 사람이 분배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국과수는 늘어나는 부검 의뢰를 감당하려 비교적 간단한 사건에 한해 촉탁 법의관들에게 부검을 맡겨왔다. 하지만 갈수록 사건이 복잡해지고 서울 외 지역 사무소에서 처리할 일도 늘어나며 촉탁 법의관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객원 법의관들은 촉탁직과 달리 지역 사무소 출장이 잦다. 비교적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검도 처리한다.


법의관이 되려면 의사면허증을 취득한 뒤 일정 기간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병원에 들어가거나 개업의사가 되는 것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개업의사에 비해 소득도 높지 않기 때문에 의과대 학생들 중 ‘법의관’을 진로로 삼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약 20년의 교수 생활 동안 강 법의관이 대학에서 법의학을 진로로 삼겠다고 한 학생을 본 일은 ‘두 번’뿐이다. 강 법의관은 “색다르고 흥미로운 분야니까 학생들이 관심은 많이 갖는데 결국 다 병원으로 빠진다”고 말했다. 정 법의관은 “소명의식이나 사명감 없이 하기는 힘든 일”이라고 했다. 서 법의관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선호한다”며 “후배들에게 왜 법의관은 진로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1955년 당시 정부가 대통령령 제1021호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제’를 제정·공포하면서 생겼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과학수사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낯설었다. 강 법의관은 1989년 국과수에 들어와 1999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당시엔 보따리장수처럼 지냈다. 아침에 한 곳에서 부검하고 밤늦게 또 다른 곳으로 가 부검했다”며 “그래도 당시엔 젊고 사명감도 높아서 사건이 있으면 현장에도 자주 나가 살펴봤다”고 말했다.


사건이 증가하고 서류 업무도 늘어나면서 현직 법의관들이 현장에 나가 사건 검토를 하는 일은 줄었다. 사건 현장에서 법의관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이들이 부검실과 보고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미국 등 일부 국가의 경우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관에게 일부 수사권을 주고 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한다. 한국 국과수는 경찰 등 수사기관 협조 요청에 응하는 방식으로 변사 사건에 대응한다.


정 법의관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 있을 때 원칙적으로는 법의관들이 현장에 나가 부검 등 상황을 정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지금은 인력도 부족하고 법의관의 권한도 제한적이라 문제”라고 말했다. 서 법의관은 “법의학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공무원법에 묶여 있어 아쉽다”고 했다.


이들 객원 법의관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강조한 건 부검의 의미다.


강 법의관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가수 신해철씨 등 화제나 논란이 된 여러 변사 사건 부검에 참여했다. 그는 1980년 삼청교육대 사건을 접하면서 법의관의 꿈을 키웠는데, 당시엔 경찰에서 변사를 확인도 안 하고 처리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거나 아무 이슈가 안되거나 사람의 죽음은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죽음의 원인을 밝혀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죠.”


정 법의관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당시 약 30명의 신원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고 그간 달려왔다. 단순한 인원 충원 외 국가적으로 변사 처리를 어떤 체계를 가지고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라며 이렇게 말했다. “법의학(변사 부검)의 질은 결국 국가의 총괄적인 인권 존중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