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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김진의 나 혼자 간다

762개 커브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토피아? 유토빠이!

by경향신문

태국 빠이

 

치앙마이 북서쪽 산골 ‘느림’의 본질을 유지한 마을

강원도 양구가 떠오르는 이곳엔 허름한 식당·오토바이 렌털숍들이 ‘옹기종기’

여기선 헐렁한 티셔츠·바지·슬리퍼면 충분…

맥주 한 잔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고 싶을 땐 여기 빠이로

762개 커브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

빠이에서는 별다른 활동이 필요없다. 노천 카페에 앉아 태국 맥주를 하나 주문한 후,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책을 보고 그조차도 번거로우면 멍하게 있어도 충분하다. 그게 빠이의 보통 정서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빠이로 가는 길은 험하고 거칠어서 지금껏 했던 여행 중 가장 괴로운 여정으로 꼽는다. 3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가파른 산길에 커브길이 무수히 이어진다. 가이드 말로는 무려 762개나 된다고 한다. 완만히 휜 것이 아니고 거의 180도에 가깝게 꺾이는 길이다.


덜컹거리는 낡은 승합차에 열댓 명 정도가 탔고 운전사가 핸들을 돌릴 때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은 차창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빈약한 에어컨은 제 맘대로 작동했다. 웃음기는 점점 사라졌다. 이쯤하면 다 왔겠지, 싶어도 꼬부랑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폐가에 가까운 집을 개조해 만든 휴게소에서 몇 사람은 구토했고, 나머지는 창백한 얼굴에 풀린 눈으로 그늘에 앉아 들숨 날숨을 반복했다. 콜라나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싶었지만 앞으로 이런 산길을 한 시간 반이나 더 달린다고 하니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 300개의 커브가 남아 있다니. 굴곡이 심한 도로 옆으로는 집 몇 채가 모인 작은 마을이 있었지만 생기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남국의 원시적인 정서만 남아 있었다.


웬만하면 산을 관통하는 터널 하나는 만들지 싶은데, “빠이 주민이 반대했어요”라는 운전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빠이는 ‘느림’이라는 본질을 유지하길 원했고, 국왕까지 나서 개발계획에 반대했다. 도대체 왜일까.

태국에서 만난 강원도 산골 풍경

762개 커브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

렌트비가 너무 싸서 스쿠터를 빌리지 않는 것이 손해라고 느껴질 정도.

빠이의 위치가 어딘가 하니, 치앙마이에서 북서쪽으로 150㎞ 벗어나 있는 매홍손주 산골 마을이다. 왜 빠이에 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왕 태국의 내륙지역으로 왔으니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워낙 시골이라 중심지를 ‘읍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읍내엔 작은 여행사 사무실과 허름한 식당, 오토바이 렌털숍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양구 읍내가 생각나는 풍경.


빠이는 해변가도 아니고 치앙마이처럼 유적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압도적이거나 인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태국 북부 고산족들이 모여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였다. 여기에 히피들과 자유로운 성향의 배낭여행자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숙소가 생기고 음식점도 생겼다. 수공예 상점에선 조악한 열쇠고리나 팔찌처럼 뻔한 기념품을 파는 게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판다. 예술가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상점 한쪽에서 주인이 거친 천을 잘라 수를 놓고 티코스터를 만들고 있었다.


버튼만 누르면 작동이 되는 스쿠터를 하나 빌렸다. 빠이 명소인 대나무 다리나 도시 외곽의 유명한 카페에 가려면 스쿠터 말고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 게다가 24시간에 100바트, 우리 돈으로 4000원밖에 안 하니 부담이 없고 초보인 나도 도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토매틱 미션은 생각보다 쉬웠고 이틀째부터는 빠이의 여느 배낭여행자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빠이엔 이름 있는 호텔이나 대형 리조트가 없다. 호텔이라고 해야 대부분 호스텔 수준이고 싸구려 민박도 넘친다. 그럴 듯한 리조트가 있지만 읍내에서는 먼 곳에 있는데, 이 역시 빠이 사람들이 대형 리조트를 그다지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읍내에선 우리 돈으로 3만원 안쪽이면 깨끗한 방 하나를 쓸 수 있으니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곰팡내를 견딜 수 있다면 1만원에도 가능하다. 계산해보니 하루에 6만원이면 자고 먹고 노는, 보통 수준의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국적 기업의 프랜차이즈도 없다. 많은 가게가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로 요리를 해 판다. 태국 북부 고산지역에선 커피도 많이 재배하는데, 여느 동남아 지역과 다르게 아라비카종이 생산된다. 지역주민이 원두 피킹부터 로스팅까지 수작업으로 만드는 커피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로부스타종과는 풍미가 다르다. 좀 더 가볍고 시큼하다. 터널도 반대한 주민들이 반길 일도 없겠지만, 설령 스타벅스가 들어온다 해도 이 커피의 신선함을 따라가기가 힘들어 철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둔감함이 부럽다

762개 커브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

빠이의 개는 아무 데나 누워있으니 앞만 보고 걷다간 개를 밟을 수 있다.

빠이에 고작 일주일을 머물렀다. 한 달 이상 묵는 사람이 워낙 많은 빠이에서 일주일이면 스쳐가는 수준이다. 빠이에 캐리어를 끌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배낭여행자들은 자기 덩치만 한 백팩을 메고 구부정한 자세로 낡은 숙소를 찾아간다. 빠이에서 챙이 큰 모자에 드레스를 입거나 세미 포멀 슈트를 입는다면, 그런 사람도 하나 없지만, 시선을 대번에 끌 수 있다. 여기서는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 슬리퍼면 충분하다.


요란한 스쿠터만이 빠이 마을에서 소음을 내는 존재다. 작열하는 태양은 모든 생명체를 느긋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카페 그늘에 앉아 태국 맥주 창(Chang)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관광안내책자를 들여다보거나 아,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개는 특히나 무기력의 상징 같은 존재다. 전봇대나 나무 아래, 식당 입구,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부근, 레스토랑 한 구석 등 아무 데나 개는 누워 있다. 짖을 일 없는 빠이 개는 길바닥의 열기가 식으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녁이란 뜻이다. 개는 식당으로 가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먼지떨이 같은 꼬리로 맨다리를 훑으며 말한다. 먹던 소시지 하나만 다오. 얻어먹은 개는 또다시 엎드려 잠이 들었고 웬만한 소음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둔감함이 부럽다.


필사적으로 서울 생활, 아파트 생활에 적응해온 나도 시골로 들어오면 영락없이 강원도 시절이 생각난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선 흔히 개를 묶어 키웠다. 개는 ‘집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했고, 가끔 목줄을 풀어주면 개들은 나무뿌리까지 땅을 파놓아서 아버지에게 혼나곤 했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두 달 된…강아지가 대문 밑으로 기어들어와 우리 집 진돗개가 물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난히 사나운 개이기도 했다. 학교를 다녀오니 진돗개가 집에 없길래 어찌된 일인지 물으니 시골집으로 보냈다고 했지만 나는 그 개가 음식의 재료로 팔려갔다는 것을 직감했다.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큰 개는 집을 지키는 가축이자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식재료였을 것이다. 느긋한 개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유토피아 대신 ‘유토빠이’

762개 커브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

북쪽으로 더 가면 원시적인 자연이 펼쳐지는 매홍손 지역에 닿는다.

치앙마이에서 쿠킹클래스를 들었는데 가장 만들기 쉬우면서도 입맛에 맞는 태국음식은 ‘쏨땀’(태국식 파파야 샐러드)이었다. 밥이나 생선, 고기요리에 곁들여 먹는, 말하자면 김치나 피클 같은 서브메뉴인데 그린파파야를 무생채처럼 가늘게 썰어서 피시소스와 마늘, 고추, 라임, 설탕으로 간을 한다. 빠이엔 쏨땀을 만들어 테이크아웃으로 파는 노점상이 있었는데, 나는 더위에 입맛을 잃을 때마다 쏨땀을 한 봉지 사다가 퍼먹다시피 했다. 아주머니와 친해지고 나서는 “오이를 추가해달라” “고추를 더 넣어달라” 단골답게 특별 요청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린파파야를 구할 수 없어 대관령 무에 까나리 액젓으로 맛을 냈더니 얼추 비슷하긴 했어도 태국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없어 아쉬웠다.


빠이에서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자 미얀마와 맞붙어 있는 매홍손으로 투어를 나섰다. 선사시대 동굴을 탐험하고 계곡처럼 흐르는 자연온천에 몸을 담갔다. 뭐 하나 제대로 된 시설이 없는 관광 명소에서 그나마 영어를 좀 구사하는 고산족들이 안내를 하고 옥수수를 구워 팔았다.

762개 커브길을 지나면 나타나는 유

카메라와 친숙한 빠이의 어린이들.

하늘은 내내 뿌옇게 흐렸는데 충격적이게도 미세먼지라 했다. 고산족들은 화전(火田)을 일구며 옥수수를 재배하는데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2~4월이면 기존 옥수수밭과 숲을 태워 경작지를 넓힌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재가 거름이 되니 지력이 좋아지고, 또 경작이 끝나 지력이 약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경작한다. 이 원시적인 농업 방식은 태국 북부와 미얀마, 라오스에서는 흔하다. 미세먼지가 다국적 식품기업과 계약한 이후 악화되고 있다는 점은 슬프다. 산악지대라 관리와 규제도 쉽지 않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세먼지는 남쪽 치앙마이까지 날아와 전 세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 1위로 꼽히는 불명예를 자주 얻는다.


10년 후에 와도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여행지가 있다. 빠이가 그런 곳이다. 그리고 그러길 바란다. 현지 농산물을 먹고 현지인의 집에서 자며 고산족이 지은 공예품을 몇 점 사게 되는 여행지. 그것이 요새 말하는 공정여행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천진무구한 아이들의 눈에서, 쏨땀을 만들어주던 미소에서, 커피 한잔을 내밀던 거친 손에서 단순한 삶이 느껴질 때면 자유 비슷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릴없이 어슬렁거리고 싶을 땐 ‘유토빠이(UTOPAI)’로 가시길. 이건 유토피아의 I와 A를 바꿔 만든 빠이 주민들의 마을 슬로건이다. 멋지지 않은가. 스스로 마을을 유토피아에 비한다는 것이.


김진 | 여행작가